‘자신과의 약속’ 등에 지고 2천릿길
  • 박병출 부산 주재기자 ()
  • 승인 2000.07.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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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종종 고행의 방편으로 ‘걷는 고통’을 택한다. 김영묵씨(49·장로회 합동총회 신학교 3년)도 사서 고생길에 나섰다. 지난 7월12일 부산을 출발한 그는, 마산 진주 보성 광주 전주 대전 수원을 거쳐 서울까지 자기 키보다 훨씬 큰 십자가를 메고 걷는다.

장장 1천7백 리가 넘는 길에 동행하는 사람 하나 없다. 걷다가 날이 저물면 교회 문을 두드려 잠자리를 해결하고, 그마저 어려울 때는 처마 밑에서 밤이슬을 피할 생각이다. 풍찬 노숙(風餐露宿)이 그가 세운 유일한 여행 계획인 셈이다.

그는 왜 이런 길을 걸을까. 스스로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라는 것이 그 대답이다. 그는 험한 삶을 살았다. 아홉 살에 아버지를, 열 한 살에 어머니를 잃었다. 결혼한 누나 밑에서 초등학교 졸업하기를 기다려 ‘결행’한 일이 가출이었으니, 세상살이가 수월했을 리 없다. 폭력·공갈·공무원 사칭·절도 등 전과 9범이 되도록 교도소를 들락거리다가, 1998년 청송교도소에서 검정고시로 고교 과정을 마치고 신학 공부를 시작했다. 지난해 6월 출소한 직후 맨 먼저 한 일도 행진이었다. 어릴적 던져지듯 들어갔던 세상에, 이번에는 ‘바른 걸음’으로 돌아가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려고 했던 것이다. 그후 이삿짐센터 날품팔이, 관광버스 새벽 세차 등을 하며 목회자 수업을 받고 있다.

“과거에는 불우한 환경이 아이들을 빗나가게 한 경우가 많았지만, 요즘은 너무 유복한 환경이 문제다. 부족함을 모르고 자라다 보니 막상 어려움을 만나면 인내도 극복도 못해 비뚤어지게 된다”라고 말하는 김씨는 ‘십자가 사랑 선교회’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선교와 함께 청소년들이 하루 이틀 십자가를 메고 걸으며 인내와 극복을 배울 수 있는 체험 프로그램을 마련할 계획이다. 그는 오는 8월15일쯤 서울에 도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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