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냐 환경이냐, 이산화탄소의 딜레마
  • 金相顯 기자 ()
  • 승인 1995.03.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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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환경회의 CO2 배출량 동결 압력…경제냐 환경이냐 갈림길에
에너지 다소비형 경제 구조 바꿔야

이산화탄소량 증가는 강수량에도 영향을 미친다. 연구 보고서는 이산화탄소량이 지금보다 2배 늘 경우 강수량은 15% 정도 늘게 된다고 추정했다. 그렇게 되면 한국의 주요 하천을 흐르는 물의 양은 평균 25%나 증가한다. 특히 한강(28%) 섬진강(26%) 영산강(24%) 낙동강(23%)을 흐르는 물의 양은 크게 늘게 되며, 그에 따른 홍수 피해도 크게 늘 수밖에 없다.

지구 온난화 현상을 부추긴다거나 지구 온난화가 기상 재난을 초래한다는 것은, 심증만 있을 뿐 아직 구체적인 증거는 없는 형편이다. 이 연구 보고서가 시나리오를 근거로 80년 뒤의 상황을 ‘예측’하는 데 그친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확증을 찾지 못했다고 해서 엄연한 현실을 부인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1백61개 나라가 서명하여 94년 3월 공식 발효한 기후 변화협약도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하루빨리 억제하지 않으면 지구 생태계가 걷잡을 수 없이 교란되리라는 엄연한 현실적 위기감에서 나온 것이다.

박원훈 박사는 “이산화탄소 배출 문제는 곧 에너지 소비 문제”라고 말한다. 지금과 같은 에너지 다소비형 구조로는 한국 생태계를 유지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여러 환경 규제가 무역 조건으로 대두하는 세계 교역 환경에도 적응할 수 없다는 것이다.

국내에서 금방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방법은 간단하다. 이산화탄소 전체 배출량의 절반을 차지하는 화력발전소·제철소·시멘트 업체 들을 가동하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비현실적이다. 국가 기간 산업이기 때문이다.

화석 연료를 대체할 만한 에너지 기술을 개발하려는 노력도 있다. ‘대체 에너지 기술 개발법’까지 만들었다. 그러나 당장 쓸 수 있는 석유가 훨씬 경제적이고 효율적이었다. 결국 ‘연구’에만 그치고 실용화·상용화에는 이르지 못했다.

박원훈 박사는 “현단계에서 가장 현실적인 대안은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길밖에 없다. 산업 분야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거의 고정된 상태이다. 생활 수준이 높아질수록 주거·교통 분야에서 배출량이 급증하고 있다. 에너지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여러 규제 조처를 강구해야 할 것이다”라고 촉구했다.
이화탄소(CO2) 배출량을 줄일 것인가, 말 것인가. 기상 이변을 초래하는 지구 온난화 현상의 주범이라는 점에서 보면 당연히 줄여야 한다. 그러나 경제성장이나 산업화라는 관점에서는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인간의 ‘문명’을 일궈온 석유·석탄 같은 화석 연료가 바로 이산화탄소의 최대 배출원이기 때문이다.

오는 3월28일부터 4월7일까지 독일 베를린에서 열리는 ‘기후 변화 협약 제1차 당사국 총회’(당사국 총회)는 이산화탄소를 둘러싼 그같은 딜레마 때문에 더욱 큰 관심을 끈다. 92년의 리우 지구환경회의 이후 가장 큰 규모의 국제 환경회의가 될 이번 총회의 주제가 바로 지구 온난화 현상의 주범으로 꼽히는 이산화탄소의 배출량 감축 시간표를 짜는 것이다.

지난해 말부터 최근까지 전세계를 휩쓴 기상 재난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90년 수준으로 동결해야 한다는 선진국들의 주장에 큰 힘을 얹었다. 그러나 한창 경제성장을 추구하는 개발도상국이나 후진국 들은 선진국 수준으로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것은 사실상 경제성장을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90년 수준으로 동결하려는 선진국(북)과, 이미 공업화를 이룬 선진국들에 ‘누적 책임’이 있으므로 나라별 특수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개도국·후진국(남) 사이의 갈등은 이번 당사국 총회에서도 불가피할 듯하다.

한국, 배출량 세계 16위

국가별 이산화탄소 배출량에서 세계 16위에 올라 있는 한국도 안심할 상황이 아니다. 더욱이 한국은 중국·브라질·멕시코·싱가포르 등과 함께 선진국과 동일한 의무를 져야 한다는 압력에 시달려 왔다.

에너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한국이 선진국 수준의 규제를 받는 ‘의무 국가군’에 포함될 경우 연간 GNP 감소량은 10조원에 이른다. 70년대의 중화학공업 정책, 80년대의 에너지 저가 정책으로 에너지 다소비형 경제 구조를 갖게 된 한국으로서는, 적어도 에너지 소비 구조를 바꿀 때까지는 후진국 입장에 설 수밖에 없는 처지이다. 그런 면에서 한국은 딜레마에 빠져 있다.

한편으로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을 모색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OECD 회원국들에 부과된 이산화탄소 배출 규제를 피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한국이 OECD 회원국이 되기에는 에너지 낭비가 지나치다는 점이다. 93년의 경우 국내 에너지 소비량은 92년보다 13%나 증가했으며, 94년에도 9% 많아졌다. 당연히 이산화탄소 배출량도 급증하고 있다.
이산화탄소가 지금처럼 해마다 1%씩 늘어난다면 어떤 결과가 일어날까. 적어도 80년 안에 대기중 이산화탄소량은 2배가 되며 평균 기온도 1~4℃ 높아지게 된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 환경연구센터 박원훈 박사팀은 최근 과학기술처에 제출한 연구 보고서 <기후 변화가 한반도에 미치는 영향과 지구 환경 관련 대책 연구(Ⅱ)>에서 이렇게 밝히고, 연평균 기온이 2℃ 정도 높아질 경우 대규모 홍수 피해는 물론 생태계에도 심각한 위협이 우려된다고 경고했다.

기후 변화가 한반도에 미치는 영향을 예측하고 그에 대한 대응 방안을 모색한다는 취지에서 93년부터 진행되어 온 이 연구는, 93년에 기상청이 보고한 기후 변화 예측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국내 수자원에 미치는 영향 △농·임업 식생대에 미치는 영향 △해수면·해안 구조물에 미치는 영향 등을 구체적으로 분석했다. 이 연구 보고서는 이산화탄소 증가에 따른 기후 변화 영향을 처음으로 예측했다는 점에서 주목되는데, ‘기후변화협약’ 규정에 따라 내년 3월까지 제출하도록 되어 있는 국가 보고서의 기후 영향 평가 분야에도 포함될 예정이다.

기후 변화로 가장 심각한 변화가 예상되는 부문은 역시 농업 생태계이다. 농업 생태계는 그 지역 특유의 기후와 토양에서 오랫동안 점진적으로 발달해 왔기 때문에 기후 변화에 어느 정도 적응성이 있지만, 연평균 기온 2~4℃ 증가와 같은 급격한 외부 충격에는 견디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박원훈 박사는 “70~80년 내에 2~4℃ 오르는 것은 단순한 온도 변화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급격한 생태 환경 변화, 에너지 수지가 전반적으로 교란될 것이다”라고 말한다.

지구 온난화에 의해 그동안 농업 생산성 저해 요인으로 꼽혀온 짧은 작물 생육 기간이 길어진다 하더라도 거기에는 파악하기 어려운 위험 요인이 너무 많이 내재해 있다는 것이다.

산림 생태계에도 큰 변화가 올 것으로 예측된다. 연평균 기온이 2℃ 오를 경우 동백나무·신갈나무·서어나무 같은 난온대 수종은 생육 범위가 확장되는 반면, 주목·분비나무 같은 냉온대 및 아한대 수종들은 현저히 감소할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한국의 지형이 대부분 산악형인 데에도 원인이 있다고 여겨진다.

기온 상승과 해수면 높이의 증가가 밀접한 상관 관계를 갖는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지구 전체의 평균 기온이 약 0.5% 높아진 지난 백년간 지구 평균 해수면은 10~20㎝ 높아졌다. 그러한 계산대로라면 평균 기온이 2~4℃ 높아질 경우 해수면은 40~1백60㎝나 높아진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는 지난 1세기 동안 높아진 것보다 4배가 넘는 규모다. 박원훈 박사는 “한국의 경우 해안 지역은 대체로 인구가 많고 경제 활동이 활발할 뿐 아니라 환경학으로도 퍽 민감한 지역이다. 해수면이 그렇게 높아진다면 특히 해안선이 발달한 남해와 황해는 막대한 경제적 피해를 면할 수 없게 되고, 환경과 생태계도 돌이킬 수 없이 파괴되고 말 것이다”라고 걱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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