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특집] 축구의 사회심리학/인간은 왜 축구에 열광하는가
  • 이성욱 (문화 평론가) ()
  • 승인 2001.01.25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월드컵은 20세기가 발명한 최대 '환각 장치'…TV중계에 40억 인구 '몰입'

사진설명 "축구 없으면 못살아" : 월드컵을 펠레·마라도나·지단 같은 영웅 호걸의 이야기를 내장한 '판타지'이다. 관중들은 그드르이 플레이션에서 '환간'의 한 극치를 경험한다.

인류는 지구의 생물체 중에서4년마다 한번씩 주기적으로 격렬한 몸 떨림과가쁜 호흡을 동반한 발작 및 환각 체험을반복하는 유일한 포유류이다. 몸 떨림과 호흡 곤란은 개인의 성생활에서도 수시로 일어나지만 그것이연인원 100억을 넘는 숫자를 동원하는 거대한 집단 규모로 수행되는 일은 단 한 가지뿐이다. 월드컵이 그렇다. 인간은 원래 환각을 좋아하고 월드컵은 그것의 촉매 정도에 그치는것인지 아니면 월드컵이 그런 사상 초유의환각을 불러일으키는 어떤 본질적인 그 무엇을내장하고 있는지는 아직 밝혀진바 없다.현상으로 보면 양 측면이 서로 그렇게잘 어울릴 수가없는 것이다.

사실 인류의 역사를 더듬다 보면인간은 지독한 환각의 동물임을 알 수 있다. 바퀴벌레·공룡 등 영장류 이전 지구를 자기 구역으로 삼던 수많은 '선배'들이 존재했지만그것들이 자발적으로, 조직적으로 그리고 무엇보다 과학적으로 환각의 매체를 발견하고 발명한적은 없다. 환각과 마약의역사에 관한책자를 읽어 보면 아메리카 원주민을 비롯해아프리카·유럽 등 세계 각처의 인간들은 언제나 환각의 매개 물질과 장치를 잘도 만들어냈다. 왜 그렇게 환각 장치를 찾으려 했는지는 여기서논할 일이 아니로되, 단 한가지 자명한 사실은 인간이라는 포유류는 창세이래 지금까지갖가지 환각을 쫓아 이동하는 유목민이라는 점이다. 현대에 들어오면 그 환각의 양상과장치의 수준 그리고 양적 차원은 더욱 증대된다. 우리가 영화에 빠져들고, '가정 파괴'의 장본인이 될지도 모른다는 위험 경고에도 불구하고 카바레라는 금줄을 용맹하게 넘어서서 오늘도몸의 살을 해방하는 중년여성들, 10대힙합 그룹의 노래와 춤에 목을 매는것, 나아가 춤을 추면 세상 모든 것이 잊혀지고 오로지나 자신에게만 집중되는, 달리 말해 순도 100%로 자기속에 잠수해 들어갈 수있다는, 그것이 너무 좋다는 아이들의 고백 등속도 모두나름의 환각 체험들이다.

이런 게 의미하는 바는 간략하다. 인간은 원래 이성만으로 살 수 없게 생겨 먹은 존재라는 말이다. 삶에서 명징한이성이 필수 불가결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것만이사람을 압도할때 각종 신경망에는 장애가 발생하고 혈관에는 울혈이 자리잡는다. 인간은영리하게도 그런 예상되는 문제에 대한 각종 해결책을 개인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 만들어왔다. 무엇에의 몰입에서 오는 카타르시스가 전자와 관련된다면 카니발 등은 후자와 관련된다.물론 둘 다 환각 체험을 기반으로 한다.

환각은 환각을 불러일으키는 그 무엇이 있어야 성립한다. 월드컵은20세기 인류가 스스로의 환각 체험을 위해 고안해낸최대의 발명품이다. 월드컵이 왜 최대의 환각 장치일까?

월드컵은 축구만 가지고있는 것이 아니다. 다른 구기 종목도 가지고있다. 하지만 그 중요도나 가치는 비교가되지 않는다. 배구에도 월드컵이 있고 테니스에도 국가간 경합이 있지만 축구처럼 배구 공이나 테니스 공 하나 때문에 대리전이 아닌 실제 전쟁이일어났다는 이야기는 아직 없다. 또 단지 패배에 일조했다는 이유 때문에 총 맞아 죽었다는 다른 종목의 선수 소식은 들어본적이 없다.하지만 우리는 1969년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의 전면전이축구 공 하나가 불러온 불가측의사태였음을 기억한다. 또 1994년미국 월드컵에서 콜롬비아의 수비 안드레스 에스코바르가 자책골로 미국에 2 대 1로 패하고 귀국한 뒤 7월 2일 12발의 총탄을 맞아 살해된 사건은 아직생생하게 기억된다. 1996년 유럽축구선수권대회 지역 예선에서 전쟁 중인 크로아티아가이탈리아에 2 대 1 승리를 거두자 전방 참호속의 크로아티아 병사들이 목놓아 울었다는전언(정말 그랬는지 안 그랬는지는 우리의관심사가 아니다) 앞에서 우리는 축구라는기호의 어떤막강한 힘을 감득한다.


전세계 '환각 공동체' 형성하는 글로벌 스포츠

축구 관련 기사를 보면 창간 100주년을 넘겼고 유럽에서 가장 권위 있는 종합 스포츠 잡지인 이탈리아의 <가제타 델로 스포츠> 같은 경우는 약 50쪽에 달하는 기사 중 축구관련 기사가 48쪽이고 나머지가 다른 스포츠 기사라고 한다. 이런 현상은 유럽에서 대개 일반화된 관례이다. 물론 유럽만이 아니다. 남미 또한 그에 뒤지지 않는다.

축구의 장악력은 미국을 뺀 나머지지구 전체를 덮고 있다. 축구의 인기 비결을 설명하는 담론 또한 여러 가지이다. 비교적 경기 규칙이 단순하다는 것, 그에비해 전략·전술 운용이 다채로워 다양한 즐거움을 맛볼 수 있다는 것, 또 그런 전략·전술은 군사 작전의 응축이기에 일종의 시뮬레이션 게임으로 간주될 수 있다는 점, 보는 스포츠에 그치는것이 아니라 공 하나만 있으면 어디서나 할 수 있는 직접 수행의 용이성이 높은 스포츠이기 때문이라는 점 등등이 그런 설명을이룬다. 하지만 축구가'글로벌' 스포츠가 되고 지금처럼 견고한 대중 장악력을 지니게 된 것은 다름 아닌 텔레비전 때문이라는 점을 추가하지 않고서는 충분한 설명이 되지 않는다.

텔레비전 녹화 중계는 1966년 영국 월드컵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나그때는 기술 초기 단계였고 우리나라나 제3세계의 경우 텔레비전 보급률이 아주 낮았기에 월드컵은 기록 필름을 통해 극장에서 보여지는정도였다. 그러나 그런 방식을 통해서나마 축구는 서서히전 세계인을 위한 '지상 최대의쇼'로 진군해 나갔다. 그러다 1970년 멕시코대회부터 드디어 '글로벌' 차원의 텔레비전 중계가가능해진다. 텔레비전 위성 중계의실현은 월드컵이라는축구 경기에 40억 인구의 눈을 가두어놓는 장치로 전환된다. 대중적 관심의집중과 증대는 당연히 돈놀이의 급증을파생한다. 1978년 아르헨티나 대회 이후에는 대회 수입이평균 54%씩 증가하면서 1978년 당시 3천6백86만달러였던 대회 수입이 1994년 미국 월드컵에서는 2억2천 5백만 달러로 폭증했다. 미국 대회조직위는 미국 월드컵이 관광객과고용 창출·광고효과 등으로 40억 달러 이상의 생산 유발 효과가 있었다는 분석을 내놓은 바 있다.

텔레비전 중계는 전세계를 한 덩이의 그물로 엮어 놓는 네트워킹을 가능하게 했다. 그 그물은 근래의 영화 <컵>에서처럼라마 승려에서부터 영국의 훌리건까지 한데 묶어내고 촘촘히 연결시키는 조직 체계이다.그 묶임과 연결을 잇는 바늘은 당연히 월드컵이다. 이제 세계 어디에 있든지 간에 세계인들은 축구라는 동시적 관심 영역을 통해 일종의 공동체가 되어 갔다. 한데 그 공동체가 환각 공동체라는점에서 다른 공동체와 성격을아주 달리한다. 이리하여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시·공간의 한계를 훌쩍 월장해 버리는 최초의, '글로벌'한 그리고 동시적 환각 체험이 20세기 중반에 출현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동시성의 출현이야말로 월드컵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월드컵이 올림픽보다 한수 위인 까닭

텔레비전을 통해 세계 규모의 동시적 환각이 가능해졌다는 말을 할 때 우리는얼른 올림픽을 떠올리면서 월드컵만의 독자성을 부인할 수 있는 근거를 찾은 듯이 생각한다. 하지만 월드컵은 올림픽과 다르다.우선 올림픽은 잡다한 상품을 어지럽게 진열해 놓은 슈퍼마켓형이다. 그에 비해 월드컵은 단일 품목이기에그 집중도가 한길 위이다. 게다가 올림픽은 환각 지속 시간이 2주일인 데비해 월드컵은 한달이나 된다. 이것으로도 납득이되지 않는다면 다른설명을 들 수도 있다.

올림픽은 경험을 통해 알 수있다시피 대개 백인들의 자위용 이벤트인 반면 월드컵은 상대적으로 전세계인이 고루고루개입할 수있는 개방형 이벤트이다. 그렇기에그 평등성에 있어 올림픽보다 한수 위이다. 고쳐 말해 백인들의 인종주의적 편견이 끼어들기 힘들다는 말이다. 스포츠에무슨인종주의를 운운하느냐고 지청구하시는 분에게는 1936년 베를린올림픽 때 히틀러가 백인인 1회 그리스 올림픽 마라톤우승자는 정중히 초대한 반면100미터 우승자인 흑인 제시 오웬스와는, 기존 관례를 무시하고 아예 얼굴조차 마주하지 않았다는사연 하나만 말씀드리겠다.

텔레비전 중계는 또한 영웅 신화등을 낳는 위대한 생산자였다. 텔레비전중계를 통해 대중들은신화 속의 영웅들을다시 만났다. 달리 말해 축구 스타들을 영접하고경배하기 시작했다. 스타들은 대개자기만의 캐릭터를 형성한다. 검은 진주 펠레,축구 신동 마라도나,그라운드의 발레리나요한크루이프, 카이저베켄바워, '문어손' 레프야신(옛 소련골키퍼), 폭격기 게르트 뮐러, 독일 전차마테우스,그라운드의 노동자 보비찰튼, 폭풍의 사나이 리바(이탈리아 공격수) 등등, 그들의 별호가 그들의 캐릭터를 응축한 기호이다.

스타 시스템은 영화에만있는 것이 아니다. 스포츠에도 그것은 부족할것 없이관철되기 시작했다. 영화에서스타시스템이 가능했던 것은 카메라 기술 때문이다. 멀리서 보아야 하고 그래서 연기자의 얼굴이나 전체모습과 밀착되지 못했던 연극과 달리 영화는 클로즈업을비롯한 다양한 카메라기술을 통해연기자에대한 대중들의 동일화감정을 고양시켜놓았다. 클로즈업이라는것은정서적인 밀착감과 동일화를 분만하는 시각 체제이다.

본부석 쪽에 놓인 카메라 한 대로 좌우로 패닝하는 수준에 그치던 과거의 축구중계는 멀리찍기를 주 화면구성으로 잡았었다. 멀리찍기는 클로즈업과 달리 감정의 거리를 유도하는시각 체제이다. 하지만28대∼36대 이상의 카메라가 경기장 곳곳에 탑재되기 시작하면서 축구 선수들의 일거수 일투족, 나아가 그들의 숨소리조차 남김없이 대중의 시각에 나포되기 시작했다. 들어오는 태클을 가볍게 뛰어 넘은 크루이프의 날씬한 허벅지는 그런 밀착형 카메라기술이 없이는 대중들에게보여질 수 없었다.시속 150km로 앞의 벽을 휘어감아 돌아가면서 골문에 박히는브라질의 카를로스의캐논 슛 역시 마찬가지이다. 카메라 기술을 통해 기술은 그냥 기술이 아니라 비술이 되고 그 비술의 현장에서 대중이 선수들과 같이뛸수 있는 조건이 탄생한 것이다.월드컵은 환각 체험에 중요한 요소, 다시 말해 판타스틱한 경험을 가능케 하는 영웅 호걸의 이야기를 내장한, 근사한 한편의 서사이기에도부족함이 없게되었다. 펠레·보비찰튼·요한 크루이프·마라도나·지단 등은 가히 영웅 호걸에다름 아니었으며 그들의 불꽃 튀는 각축은 보는 이로 하여금 환각의 한 극처를 체험케 하기에 충분했다.주인공 한 인물 중심으로 편제되는영화 서사및 스타 시스템과 달리 여러호걸과 영웅들이목줄을 건 쟁패를 벌이는 서사라는점에서 월드컵은 영화의 스타 시스템보다 가차없으며 그런 만큼 맥박을 더 빠르게 뛰게 만드는 시스템인 것이다.

하지만 월드컵이 가지고 있는 거대한 빨판의 힘의 본질은 다른 곳에 있을지도 모른다. 그것을 우리는 철 없는 내셔널리즘 혹은 인간의 경쟁 본능, 제압 본능이라는말로 설명할 수 있을는지.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