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 살림 '원터치' 시대 열린다
  • 안은주 기자 (anjoo@e-sisa.co.kr)
  • 승인 2001.01.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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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전제품끼리 소통하는 '홈네트워킹' 눈앞에…단말기 하나로 저녁 식탁 '뚝딱'

사진설명 가전제품이 대화를 한다 : 집안의 모든 가전제품을 네트워크로 연결하여 서로 '대화'를 나누게 하는 홈네트워킹이 3~4년 후에 구현된다.

"요즘처럼 춥고 눈이 많이 내릴 때 바깥일을 모두 집안에서 처리할 수 있으니까무척 편해요." 최근 사이버 아파트에입주한 주부 정선영씨(39·서울 중림동)는 홈네트워킹 덕분에 집안일이 한결 쉬워졌다고 말한다.

정씨는 쇼핑은 물론 은행 일에서부터 아파트 관리 문제까지 집안에서해결한다. 정씨가 집을 비워도 배달된 물건이 아파트단지에 마련된 물류 창고에 보관되기 때문에 걱정이 없다. 또 PC가 놓여 있는 책상에 붙어 있지 않고 침대에 눕거나 거실을거닐면서도 바깥세상과 소통할 수 있다. 무선 인터넷으로 연결된 단말기 '웹 패드'가 바깥세상과의 커뮤니케이션을 가능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맞춤 뉴스 전하는 TV, 식단 짜는 냉장고

하지만 정씨가 체험하는 홈네트워킹은아직 초보 수준이다. PC 또는 인터넷 단말기를 통해 가정과 집 밖을연결하는 것이홈네트워킹의 전부는 아니다. 과학자들이 꿈꾸는 홈네트워킹의 완벽한 형태는 집안의 모든가전제품을 네트워크로 연결해 서로 '대화'를 나누게 하는 것이다.

이처럼 텔레비전·비디오·디지털카메라·게임기와 같은 가전제품,프린터와 같은 주변기기, 냉장고·세탁기·전자레인지등 부엌 가전제품이 하나로 묶여 스스로 작동하면서 최적의 환경을 구현하는 것이 진정한 홈네트워킹이다. 일부 산업 전문가들은 PC와 통신을 중심으로 한 정보 혁명이 제1차 디지털 혁명이었다면, 제2차 디지털 혁명은 홈네트워킹을 중심으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전망한다.

홈네트워킹이 완벽하게 구현되면 우리생활은 어떻게 달라질까.정선영씨는 아침마다 디지털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오는 케니 지의 <실루엣>을 들으며 잠에서깨어난다. 그음악은 얼마 전 텔레비전에서라이브 공연이방영될 때 마음에 들어 디지털 텔레비전하드 디스크에 저장해 놓은 것이다. 정씨가 거실로 나서며 '오늘 뉴스는 뭐지?'라고 물으면 디지털 텔레비전이 밤새 인터넷을 검색해 맞춤뉴스로 가공한 정보를 방송한다.평소 정씨가관심 갖는 분야의 뉴스들만 알려주는 것이다.

아침 식사를 준비하기위해 부엌으로 가면, 냉장고가 아침 식단을알려준다. 냉장고에 보관된 식품 재료의 종류와 양을파악해서 가능한 요리를 알려주는것이다. 식품이 떨어지면 알아서 주문하는 것도냉장고 몫이다. 냉장고가 추천하는 식단대로재료를 준비해서전자 레인지에 넣으면, 냉장고와 커뮤니케이션을 마친 전자 레인지가 스스로 음식을 조리한다. 정씨가 외출했다가 늦는 경우에는 밖에서 '웹 패드'로 조작해 전기 밥솥과 전자 레인지를 작동해 식사를 준비한다.시간에 쫓기지않고 웹 패드만 조작하면, 집에도착하자마자 식사 준비가 끝난다. 보일러나에어컨도 식구들의 귀가 시간에 맞추어 밖에서 미리 켜놓을 수 있다.

세탁기 역시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어 귀가 시간에 맞게 맞춤 세탁을할 수 있다. 물감으로 범벅된 아이들의 빨래는 따로손질하지 않아도 세탁기가 스스로 얼룩 지우는 프로그램을 내려받아 깨끗하게 빨아 준다.

아이가 아플 때에는 화상 전화를통해 원격 진료를 받고, e메일로 처방전을받아 약을 지을 수 있다. 오랜 시간 집을 비울 경우에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카메라가 집안의 변화를 모두 녹화해 놓는 등 경비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런 형태의 홈네트워킹은 언제쯤 구현될 수 있을까. LG전자 이인규 부장(디지털어플라이언스 기술전략팀)은 "완벽한 홈네트워킹은 3, 4년 이후에 가능하다"라고 전망한다. 당장 실현되는 데에는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남아 있기 때문이다.

홈 네트워킹을 완벽하게 구현하려면디지털 정보 가전제품 개발과 함께 각각의 정보기기를 연결하는 네트워크 장비,그리고 이들을 묶어줄 소프트웨어 기술이 필요하다. 이 가운데 디지털 정보 가전제품 생산은 현단계에서도 어려운 일이아니다.가전업체들은 홈네트워킹에 이용할 제품 기술을 확보하고, 일부 제품을 이미 출시하고 있다.

LG전자와 삼성전자는 지난해부터 인터넷 냉장고와 디지털 텔레비전을 내놓고 있다.LG전자의 인터넷 냉장고는LCD 모니터를채용해 인터넷은 물론 텔레비전 시청과 동영상 전화까지 할 수 있다. LG전자는 인터넷에 연결해프로그램을 내려받는세탁기도판매하고 있다. 이어 올해 안에 인터넷 에어컨과 전자 레인지, 인터넷 드럼 세탁기를 선보여'인터넷 가전'의 영역을 확장해갈계획이다.삼성전자도 올해 안에 인터넷 세탁기와인터넷 VCR를 출시할 계획을 갖고 있다.


국내 가전업계도 '인터넷 가전' 속속 개발

또 삼성전자는 최근 미국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의디지털 가전제품전시회인 'ICE쇼'에서 디지털 텔레비전·웹 폰·웹 카메라·냉장고·조명기기·전자 레인지 등 14개 제품군을 네트워크로 연동하는 홈네트워킹기술을 시연한 것을 발판 삼아올해부터 본격적인 상용화에 나설방침이다. 삼성전자의 홈네트워킹 기술은 무선 인터넷 단말기를통해 집안 어디에서든 이동하며 네트워킹이가능하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 삼성전자 전옥표 부장(디지털가전사업그룹 마케팅팀)은 "2001년 입주 예정인 서울 도곡동 삼성아파트에DVD, 인터넷 텔레비전, 인터넷 냉장고 등을 설치하여 가전제품끼리 대화가 통하는 홈네트워킹을최초로 구현할 예정이다"라고 밝혔다.

세계적인 가전업체들도 홈네트워킹을 염두에 둔 정보 가전제품을각종 전시회에서잇달아 선보였다.

미국에서는 지난해 인터넷 냉장고와오븐을 선보인 데 이어,마이크로소프트 사가 디지털 비디오 레코더와 웹텔레비전을 하나로합친 개인용 텔레비전'얼티미트 텔레비전'를최근 개발했다. 스웨덴의 일렉트로룩스, 일본의 마쓰시타도 지난해 인터넷 냉장고와 세탁기를 선보이며 홈네트워킹에 이용할 디지털가전제품을 양산할 수 있는 기술을 공표했다. 일본 샤프는 전자 레인지에 메모리 박스를 부착해 인터넷에서 요리법을 내려받는 모델을 출시해 한정적으로 판매하고 있다.

이처럼 네트워킹이 가능한 제품이 속속 선보이고 있는데도 홈네트워킹이 제대로구현되지 않는 까닭은, 제품보다는네트워킹 기술이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자부품연구원 멀티미디어연구센터 홍태의 책임연구원은 "디지털 가전제품을 한 몸으로엮어줄 네트워킹 기술의 표준 규격이 정해지지않은 데다가 네트워킹 기술 비용이 대중화할 만큼싸지 않은 실정이다"라고말했다. 손과발이라고 할 수 있는 디지털제품들은 채비를마친 반면, 손과 발을 엮어 필요한 용도에따라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게하는 신경망은 아직준비 중이라는 것이다.


네트워킹 기술 표준 규격 정해지지 않아 '걸림돌'

네트워킹 기술의 표준 규격을 마련하기 위해 가전과 컴퓨터 통신업체들은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디지털가전제품을 연결하는 네트워크 장비와 소프트웨어를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를 놓고 '물밑 전쟁'이한창이다. 미국 시장 분석기관들에따르면, 홈네트워킹 시장은 2000년 10억 달러에서 2002년 20억달러 규모로 가파르게 성장할전망이어서, 특정 업체가 이 시장을 선점하기위해서는 자사에유리한 방식으로 표준 규격을정하는 것이무엇보다 중요하다.

표준 규격은 제어 시스템을 PC로 할 것인지 가전제품으로 할 것인지를 놓고 업체들의 진영이 나뉘어 있고, 전송 기술 유·무선에 따라서도 지지 업체가 다르다(위 상자 기사 참조). 최근 열린 ICE쇼에서도 홈네트워킹 기술의 국제 표준 경쟁이 전시회 최대 이슈로 떠올랐다. 소니·마이크로소프트·삼성전자 등 세계적인 기업들이 자사에 유리한 홈네트워킹 기술로 표준화를 이루기 위해지지하는 기술의우수성을 적극 홍보했다.

현재까지는 각 진영이 내세우는 기술의 장단점을 명쾌하게 평가하기가 쉽지 않아모든 진영이 팽팽하게 맞서고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결국은 하나로 통합되거나 양쪽 모두를 만족시키는 호환 장치를 마련하는 등 올해 안에 해결책을 내놓을 것이다.또 무선기술이 괄목할 수준으로 발전하고 있어 올해 안에표준 규격이 마련되면 정보 가전제품간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한 수준의 홈네트워킹 실현이 더 앞당겨질 수 있을 것이라고 업계는 전망한다.

과학 기술자들은홈네트워킹실현을 '시간 문제'로 간주하고, 관심의 폭을인간의 감정을 읽고 반응하는감성공학전자제품, 후각·미각·촉각까지도 생생하게 전송하는 오감정보통신 분야로 돌리고 있다(아래 상자 기사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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