펄펄 뛰는 광우병 공포, 설설 기는 정부 대책
  • 안은주 기자 (anjoo@e-sisa.co.kr)
  • 승인 2001.02.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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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적 조사·분석 소홀한 채 수입 금지 등에만 치중

사진설명 괜찮을까? : 한국에서도 소에게 동물 성분이 첨가된 음식 찌꺼기를 먹인 사살이 밝혀졌다.

유럽에서 전세계로 확산되는 광우병 공포가 한국을 급습했다. 수입 쇠고기 판매량은 뚝 떨어졌고, 수입 쇠고기를 이용하는 외식업체에도 사람들의 발길이 줄었다. 광우병 관련 관공서는 시민과 언론의 문의 전화로 몸살을 앓고 있다.

광우병 공포에 떨고 있는 국민들의 최대 관심사는 '과연 한국은 광우병으로부터 안전한가'이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적어도 현재까지 한국에서는 광우병(소 해면상뇌증)에 걸린 소와 인간 광우병이라 불리는 변종 크로이츠펠트-야콥 병(vCJD) 환자가 발견되지 않았다.

농림부 가축위생과 이상진 사무관은 "우리나라는 1996년부터 광우병에 철저히 대비해 왔기 때문에 광우병으로 인해 불안해 할 필요가 전혀 없다"라고 잘라 말했다. 1996년부터 영국산 쇠고기 수입을 중단하고, 매년 축산 농가를 대상으로 광우병 검사를 하는 등 예방을 철저히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발표에도 불구하고 광우병에 대한 국민의 공포감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그 배경에는 광우병이 유럽에서 전세계로 확산되는 조짐을 보이고 5∼10년의 잠복기를 갖고 있는 데다, 현재로서는 아무런 대책이 없는 가장 위험한 전염병이 될 징후가 크다는 인식이 자리하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의혹을 말끔하게 씻어내지 못하는 근본적인 원인은 광우병을 둘러싼 온갖 추측과 의혹에 미온적으로 대처하는 정부 태도에 있다. 우선 크로이츠펠트-야콥 병(CJD)으로 의심되는 한국 환자에 대한 태도를 꼽을 수 있다. 국립보건원은 지난해 11월 이후 43개 병원을 대상으로 CJD 또는 유사 증세 환자 사례를 조사한 결과 26명의 환자를 보고받았다고 최근 발표했다.

이 가운데 5명은 뇌 조직 검사를 받아 3명이 CJD 환자임이 최종 확인되었다. 그러나 나머지 21명에 대해서는 뇌조직 검사를 하지 못해 확진이 불가능한 상태이다. 국립보건원 역학조사과 양병국 과장은 "환자나 보호자가 원치 않아 뇌조직 검사를 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증세가 의심되는 전염병이라면 확진한 뒤에 사실 여부를 발표해야 하는데, 정부의 발표는 '의혹은 있지만 확인할 수 없다'에 그쳐 오히려 불안감을 부채질하고 있다.


"사망한 환자 부검할 시스템 전혀 없다"

김상윤 교수(서울의대·신경과)는 "크로이츠펠트-야콥 병 증세를 보이는 환자가 있다면 조직 검사를 할 수 있도록 국가가 조처해야 한다. 사망한 환자의 경우 부검이라도 해서 국민의 의혹을 말끔히 씻어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김교수는, 한국은 이 질병 환자를 부검할 시스템조차 갖추지 못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전염력이 강한 질병인 만큼 안전하고 특별한 부검 시스템을 갖추어야 하는데, 이를 갖춘 병원이 없어서 의사들이 부검을 꺼리는 현실이라는 것이다.

동물성 사료 유통 경로에 대한 정부 발표 역시 명쾌하지 않다. 농림부는 지난 2월1일, 한국은 동물성 사료 원료인 골분과 육골분을 1988년부터 지난해 11월 말까지 수입했지만, 모두 러시아·미국·중국·방글라데시 등 광우병이 발생하지 않은 국가로부터 들여온 것이어서 안전하다고 발표했다. 게다가 수입된 동물성 사료는 가격이 비싸서 소와 양 같은 되새김질 가축이 아닌 개나 닭 등의 사료 원료로만 쓰였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축산 농가들이 실제로 동물성 사료를 개나 닭에게만 주었는지에 대해서는 확인할 길이 없다. 최근 미국에서 양계장으로 가야 할 육골분 사료가 소 사육 농가로 잘못 가서 육골분을 먹은 소를 전부 폐기 처분했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정부 발표를 액면 그대로 신뢰하기에는 꺼림칙하다.

사진설명 안전 지대는 없다 : 광우병 앞에서는 한국도 안심할 수 없다.

게다가 이 발표 직후인 2월4일, 영국 <선데이 타임스>는 소 육골분 사료가 1988년 7월부터 1996년까지 한 영국 업체에 의해 해외로 대량 수출되었으며, 한국도 주요 수입국 중 하나였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농림부는 "1992년부터 1995년까지 영국에서 수입한 것은 뼈를 1000도 이상에서 가열해 재로 만든 골회여서 사료 원료인 육골분과는 다르며, 도자기 원료로만 쓰였다"라고 설명했다. 골회 가격이 육골분의 5배가 넘기 때문에 사료로 이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정부의 확언에도 불구하고, 먹거리에 대한 정부의 정책을 불신하고 있는 국민의 의혹은 좀처럼 가시지 않고 있다.

여기에 한국에서도 동물 성분이 포함된 음식물 찌꺼기를 소 3백여 마리에게 먹이는 실험이 실행되어 왔다는 사실이 전해지자 불안감이 더욱 증폭되고 있다. 농촌진흥청 산하 축산기술연구소 대관령 지소는 수입 사료 원료값이 급상승하던 1999년부터 지난해 11월까지 소 40마리에게 음식물 찌꺼기로 만든 사료를 실험적으로 먹였다. 또 경남 하동·경기도 안성·전북 무주·경기 남양주 등에서도 음식물 찌꺼기 사료를 실험적으로 먹였다. 이 가운데 40마리는 지난해 말 모두 도축되어 판매되었다.


정부, 광우병 알려진 뒤에도 동물성 사료 먹여

광우병이 동물성 사료 때문에 발생한다는 사실이 오래 전에 알려졌는데도, 정부는 동물 성분이 첨가된 사료를 소에게 먹여 왔던 것이다. 이에 대해 농림부는 "이 실험은 광우병 예방을 위해 음식물 찌꺼기 사용을 금지하기 전에 시행했던 것이다. 그러나 만의 하나에 대비해 음식물 찌꺼기를 먹은 소를 즉각 추적해 격리하고, 임상 검사를 실시하겠다"라고 발표했다.

결국 정부는 광우병에 관한 정책에서 광우병에 대한 철저한 조사나 분석 없이 선진국들이 하는 대로 수입 금지나 조사, 단속 등에만 치중해 온 셈이다. 사전에 이 병의 기전이나 실태를 정확하게 파악해서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국민에게 적극 알려 왔다면 '음식물 찌꺼기 파동'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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