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톡 쏘는 즐거움을 누가 알리
  • 신경숙 (소설가) ()
  • 승인 2001.03.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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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시사저널 윤무영

홍어 하면 나는 시골 우리집 우물이 생각난다. 우물에서 쬐그만 나와 큰 엄마가 마주 앉아 홍어껍질을 벗기고 있다. 제상에는 무조건 하고 홍어찜을 올리는 지방에서 자란 탓에 홍어맛을 알기도 전에 생물 홍어 껍질 벗기기 먼저 했다. 장에 가서 홍어를 사온 엄마가 우물에서 다듬는 걸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집에 숫제 남자들뿐으로 여자라고는 엄마 다음에 나였다.

지금 엄마 같으면 남자가 대수냐 하면서 일을 부려먹었을 것이나 그때 엄마는 그러지 못했다. 그나마 손이 조금씩 커지고 있는 내가 엄마 앞에 마주 앉을 수 있었으니 다행이다. 홍어껍질 벗기기란 얼마나 섬세한 일이던지. 엄마가 칼질을 해서 껍질을 얇게 벗겨내면 내가 껍질 밑에 두 손을 넣고 누르고 있다. 맞은편에서 엄마가 껍질을 잡아당기면 힘이 센 엄마에게 딸려가기 일쑤였어도 그래도 끝까지 마주 앉아 홍어껍질 벗기는 일을 같이 했다. 그런 노동이 있던 밤에는 홍어탕이 저녁상에 올라왔다. 제상에 올릴 것을 껍질을 벗겨 채반에 올려 잘 마르게 간수한 다음으로 남은 것들, 말하자면 뼈와 대가리와 내장 들을 가지고 끓이는 홍어탕. 그 국물을 한술 떠 먹으면 뱃속 저 아래까지 싸한 맛이 당도했는데, 얼마나 시원한지 이마에 땀이 밸 지경이었다.

잘생긴 생물 홍어 한 마리를 꼬챙이로 뒤집는 생선가게 아주머니의 홍어 예찬과 엄마에 대한 추억에 혹해서 홍어를 반 마리 구했다. 아주머니 말씀에 따르면 올해는 홍어가 좀 잡혔단다. 맛있는 부위는 알아서 회를 쳐주었다. 홍어회는 먹어본 적이 없으므로 처음엔 시큰둥했다. 집에 돌아와 언젠가 찜을 해보겠다고 넓적한 쪽은 골라내 씻어 놓은 뒤(나는 절대로 껍질을 벗기지 않겠다, 다짐하며) 홍어탕을 끓여볼까 하는데 이런. 이걸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할 수 없이 엄마한테 전화를 걸었다. 생전 가야 뭘 묻는 법이 없는 딸의 전화를 받은 엄마는 신이 났다. 먼저 큼직큼직하게 토막 낸 무와 다시마를 넣고 폭폭 끓여 육수를 내라. 육수를 내는 동안에 양파를 두어 개 강판에 갈고 거기에 마늘은 많이 생강은 조금 넣고, 고춧가루를 넣고 비벼서 다대기를 만들어 놓아라. 육수에서 무와 다시마를 꺼내 버려라. 끓는 육수에 홍어를 넣고 해물간장 있냐? 간은 그걸로 맞추고. 잠시 말씀을 멈추시더니 꽃게 있냐? 육수 낼 때 꽃게도 한 마리쯤 넣으면 좋은데… 하신다.

옛날엔 꽃게 안 넣었잖아? 반박했더니 엄마 말씀, 그땐 없어서 못 넣었지야! 그렇든 말든 나는 꽃게는 안 넣겠다 맘먹으며 그 다음엔? 했더니 끓는 육수에 홍어를 넣고 홍어는 홍어 속을 넣고 끓여야. 징그럽다고 안 챙겨왔지야? 하신다. 그렇다 하니 에고, 그 아까운 걸 혀를 끌끌 차신다. 홍어를 넣고 한번 팔팔 끓인 뒤에 다대기를 풀고 대파는 있냐? 잘게잘게 말고 큼직하게 썰어 넣고… 뒤끝에 무심히 꺼낸 한 말씀에 나는 다시 시장엘 가야 했다. 보리순은 없겄지야? 옛날엔 논에서 싹 베어다가 씻어 넣으면 파란 것이 보기도 좋고 맛도 그만인데 대신 쑥갓을 넣어라 하셨다.

보리순? 이건 웬 충동인가. 꽃게는 안 넣어도 그만일 것 같은데 보리순은 꼭 넣어보고 싶었다. 보리순? 보리순? 뇌까리며 슈퍼에 가서 보리순을 찾았으나 없어서 불광동 재래 시장엘 갔더니 거기 소쿠리에 파란 보리순이 소복하게 담겨 있었다. 그것이 끝물이라 했다. 보리순을 찾아낸 만족감에 홍어탕을 끓이는 게 신이 났다. 홍어와 보리순이라. 어느 순간인가 슬쩍 회를 한 점 집어 먹어 봤더니 어마, 부드러운 게 혀에서 그냥 녹는다. 뭐 본 김에 어쩐다고 홍어탕을 끓이다 말고 언젠가 마시다 닫아둔 포도주병 콜크를 열고 유리잔에 따라서 혼자 한잔 마시는 재미. 그 톡 쏘는 즐거움을 남자들은 모르리.

*신경숙 음식 이야기는 격주로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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