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본 메이저 리그 한국 선수 성적표
  • 기영노 (스포츠 해설가) ()
  • 승인 2001.04.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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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만의 덫' 피하면 박찬호 20승 가능,
김병현은 1∼2점대 방어율, 최희섭은 메이저 '진입'에 주력


야구는 스피드 싸움이다. 투수에게 빠른 스피드가 필요 조건이라면 제구력과 변화구는 충분 조건이다. 한국 프로 야구 투수들의 평균 스피드는 약 135km이고, 일본 프로 야구는 140km, 메이저 리그는 145km(약 90마일)로 5km 정도씩 차이가 난다. 일본 프로 야구에 진출했던 투수 가운데 선동렬만이 성공했던 이유는, 그의 스피드가 메이저 리그에서도 통하는 평균 145km이었기 때문이다.

일본으로 건너간 이종범이 고전하는 이유도 따지고 보면 135km 스피드에서 천재 소리를 듣다가 140km를 상대하자니 만만치가 않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메이저 리그에 진출한 한국 선수 24명 가운데 박찬호만이 완전한 성공을 거두고 있다. 박찬호의 투구 스피드가 초 메이저급인 150km를 넘나들기 때문이다.


김병현 단점은 경험 부족과 체력


사진설명 다승 1위? : 미국 프로야구 전문지는 박찬호가 올 시즌 18승을 올려 다승 부문 1위를 차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자만심·사생활 등 장애물도 없지 않다. ⓒ나명석

올 시즌 메이저 리그에서는 박찬호(LA 다저스)와, 145km 스피드에 언더핸드라는 장점을 갖고 있는 김병현(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지난해 중간 계투 요원으로 활약한 이상훈, 2년여 마이너 리그 생활을 거친 김선우(이상 보스턴 레드삭스) 그리고 메이저리거급 파워를 갖추고 있는 최희섭(시카고 컵스) 등 5명이 뛰게 될 것 같다. 올 시즌에 이들은 과연 어느 정도 성적을 올릴 수 있을까.

월간 <베이스볼 다이제스트>와 더불어 가장 권위 있는 야구 전문지 <베이스볼 위클리> (3월14일자)는 박찬호가 올해 랜디 존슨(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과 케빈 밀우드(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 더불어 18승을 올려 다승 부문 1위를 차지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베이스볼 위클리>는 박찬호의 방어율을 2.87로 보았다. 지난해와 승수는 똑같지만 방어율이 3.27에서 0.4나 좋아지리라고 예상한 것이다. 박찬호의 현재 구위와 컨디션, LA 다저스의 타선, 중간 계투 요원과 마무리 요원의 능력 등을 감안하여 메이저 리그 98년 역사의 통계(메이저 리그는 1903년에 시작)를 바탕으로 하여 산출한 것이다.

다만 지난해보다 넓어진 스트라이크 존, 박찬호의 심리 상태와 부상 같은 돌발 사태는 감안하지 않았다. 예를 들면, 지난해보다 스트라이크 존이 공 3개 정도 위로 올라가 박찬호의 라이징 패스트 볼(떠오르는 직구)과 낙차 큰 커브가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을 확률이 높아지는 것이다. 하지만 장애물도 없지 않다. 박찬호가 '이쯤이면 성공했다'고 자만하며 매너리즘에 빠지거나, 사생활에 문제가 생겨 한눈을 판다면 20승 문턱은 넘을 수가 없다. 이런 상황을 모두 감안할 때, 박찬호는 올해 최소 15승, 최대 20승을 올릴 것으로 보인다.

사진설명 발동만 걸리면 : 잠수함 투수 김병현은 한번 불이 붙으면 아무도 못말린다. 최근 시범 경기에서 5타자를 연속 삼진 처리했다. 체중 조절과 경험이 관건이다. ⓒAP연합

<베이스볼 위클리>는 또 김병현을 내셔널리그 구원투수 부문 랭킹 20위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경험을 무엇보다도 중시하는 메이저 리그 전문가들이 보기에, 메이저 리그 3년 차에 접어든 김병현은 아직 중하위권 투수이다. 김병현의 가장 큰 단점이 바로 경험 부족이다. 김병현은 더 많은 시행 착오를 거쳐야 메이저 리그 강타자들을 상대할 수 있다. 또한 잦은 부상과 여름부터 체력이 떨어지기 시작하는 단점을 극복해야 하고, 좌타자에게 약한 잠수함 투수의 '운명'도 슬기롭게 헤쳐 가야 한다.

그러나 김병현은 한번 발동이 걸리면 무시무시한 투수가 된다. 지난 3월19일 애리조나 피닉스에서 열린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전이 대표적인 경우다. 김병현은 이 경기에서 2 대 3으로 뒤진 6회 말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의 네 번째 투수로 나가 어슬레틱스의 4번 타자 존 자하를 투 스트라이크 투 볼에서 떠오르는 커브로 삼진 처리했다. 5번 타자 제이슨 하트와 6번 타자 레미 지암비는 아예 3구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6회 세 타자를 모두 삼진으로 처리한 김병현은 7회 첫 번째 타자인 7번 타자 애덤 파이어트를 바깥쪽으로 휘어지는 슬라이더 3개로 허수아비로 만들었고, 8번 타자 마크 벨혼 역시 헛스윙을 유도해 다섯 타자를 연속해서 삼진으로 처리했다.


최희섭, 빠르면 7∼8월에 메이저 리그 합류


사진설명 '가을 남자' : 최희섭은 늦어도 9월에는 메이저리거가 된다. 왼쪽 투수 공략법을 습득한다면 좋은 기록을 낼 것으로 보인다. ⓒAP연합

김병현은 오클랜드전에서 K퍼레이드를 벌이고 난 후 "문제는 체력이다. 지금 체중은 지난해보다 5kg 정도 늘어난 84kg 안팎이다. 지금 정도의 체중이 공에 실리면 내가 봐도 공 끝이 날카롭게 들어가는데, 체중이 떨어지면 얻어맞는다"라며 올 시즌 관건이 체중을 유지하는 데 있다고 보았다. 김병현은 마무리 전문 매트 맨타이 앞에서 오른팔 셋업맨(중간 계투) 역할을 맡게 된다. 따라서 승패보다는 방어율 1∼2점 대를 유지하는 데 주력하게 될 것 같다.

시카고 컵스의 최희섭은 시범 경기에서 홈런 1개를 포함해 13타수 5안타를 기록해 메이저 리그에서도 통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 그러나 왼쪽 투수에 약점을 드러냈다. 오른쪽 투수에게는 9타수 5안타를 기록했지만 왼쪽 투수에게는 4타수 무안타에 그쳤다. 최희섭은 올 시즌 트리플 A인 아이오와에서 제리 루스 코치로부터 왼쪽 투수 공략법을 집중적으로 배우게 된다. 시카고 컵스는 최희섭이 트리플 A 아이오와에서 실전 경험을 쌓는 동안 쿠머와 스테어스가 번갈아 가며 1루를 보게 된다. 최희섭은 빠르면 7∼8월, 늦어도 엔트리가 25명에서 40명으로 늘어나는 9월에는 메이저 리그에 올라가게 된다.

보스턴 레드삭스의 김선우는 메이저 리그와 마이너 리그 사이에 끼여 있다. 보스턴의 선발은 세계 최고 투수 페드로 마르티네즈와 일본인 노모 히데오, 오카 도모카스 그리고 팩슨 크로퍼드와 프랭크 카스티요 등 5명이다. 그리고 마무리는 데릭 로가 맡는다. 문제는 중간 계투인데, 중간 계투 요원을 5명으로 가져가면 김선우는 마이너 리그로 떨어지고, 6명으로 시작하면 메이저 리그에서 출발할 가능성이 높다.

만약 김선우가 메이저 리그에서 뛰게 된다면 2∼3년 전 조진호보다 더 좋은 성적을 올릴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밖에 이상훈이 팀의 사정에 따라 시즌 도중 왼손 원 포인트 릴리프 요원으로 메이저 리그로 올라갈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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