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용택 국회 국방위원장
  • 남문희 기자 (bulgot@e-sisa.co.kr)
  • 승인 2001.04.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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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노동미사일 개발 포기 약속했다"

"지난해 말 북·미 협상에서 중요한 진전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북한이 미사일의 포괄적 수출을 중단하기로 한 것이고 또 하나는 사정거리 500km 이상 미사일을 신규 개발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것입니다."

한·미 정상회담 하루 전인 지난 3월6일 콜린 파월 미국 국무장관은 '클린턴 정부가 남겨 놓은 데서부터 북·미 협상을 시작하겠다'고 밝혀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그의 발언은 곧 클린턴 정부 말기 북·미 간에 있었던 미사일 협상을 지칭하는 것으로 해석되었던 것이다. 그동안 베일에 싸여 있던 이 미사일 협상의 진상에 대해 천용택 국회 국방위원장이 입을 열었다. 북한이 당시 노동 미사일 개발 포기까지 약속했다는 것이다. 천위원장은 이 밖에도 주한미군의 위상을 재검토하는 작업이 한·미 군사 당국 간에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도 새롭게 밝혔다. 현정부에서 국방부장관과 국가정보원장을 역임하고 현직 국회 국방위원장인 그의 증언은 신뢰성이 매우 높은 것으로 판단된다. 그와의 인터뷰는 4월2∼6일 서울에서 '한국 퍼그위시 그룹'(회장·천용택) 주최로 열리는 '제1회 퍼그위시 서울 국제회의'를 계기로 이루어졌다.

사진설명 천용택 국회 국방위원장. ⓒ시사저널 이상철

북·미간 미사일 협상이 당시에 어디까지 진전되었습니까?

미세한 실무 차원의 문제 외에 큰 틀에서는 거의 합의가 되었다고 봅니다. 구체적으로 보자면, 미국은 그동안 북한에 미사일 수출을 중단하라고 요구해 왔는데, 이에 대해 북한측이 '미사일의 포괄적 수출을 중단하겠다'고 약속했다는 점입니다. 두 번째로 중요한 점은, 북한측이 사정거리 500km 이상 미사일에 대해서는 신규 개발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이미 배치된 미사일 문제에 대해서도 앞으로 북·미간 협상을 통해 해결하자는 것이었지요.

우선 미사일의 '포괄적 수출 중단' 문제부터 짚어 보았으면 합니다.

그것은 모든 미사일의 수출을 중단하겠다는 뜻입니다. 그동안 북한은 미사일 수출을 중단하는 대가로 3년간 매년 10억 달러씩 지원해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런데 지난번 합의 때 미국측은 현금 보상 형식이 아니라 국제 기구를 통한 경제 지원 형식의 보상을 제시했는데, 북한이 여기에 응했다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지난해 미사일 협상의 표면적인 쟁점은 미국을 겨냥한 장거리 미사일(대포동 미사일) 개발 중단과 중·단거리 미사일 중동 수출 중단 문제였습니다. 당시 일본 전체를 겨냥하는 노동 미사일(사정거리 1000km) 문제는 표면화되지 않았는데, 지금 말씀하신 대로라면 북한이 노동 미사일 개발도 포기하겠다고 약속한 게 되는데요?

그렇지요. 사정거리 500km 이상을 개발하지 않겠다는 말은 바로 노동 미사일을 개발하지 않겠다는 것이지요. 다만 한반도를 권역으로 하는 500km 이내 미사일에 대해서는 앞으로 남북간 경쟁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해 계속하겠다, 이것만 허용되면 그 이상은 안하겠다, 이런 뜻입니다.

일본의 요구 사항인 노동 미사일 문제까지 해결됐다는 것은 일본의 미사일 배상금 지원이 가능해졌다는 뜻으로 보이는데요.

유엔 산하 기구 등 국제 기구를 전면에 내세우더라도 어차피 경제 지원을 위한 자금을 펀딩하는 과정에서 관련 국가들인 한·미·일 3국이 주축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래도 미국이 주가 되고, 미사일 협상의 최대 수혜국이라 할 수 있는 일본도 참여할 것이고, 협상 결과에 따라 우리도 어떤 식으로든 참여하는 상황이 오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미국이 미사일 포기를 검증하는 문제까지 제기했다고 하는데, 북한은 어떤 입장이었습니까?

미국이 검증 문제를 제기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북한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었지요.

검증 문제 외에도 이미 배치된 미사일 문제 등은 여전히 숙제로 남은 셈인데, 전체적으로 당시 협상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그리고 이같은 협상은 언제 어떻게 이뤄졌습니까?

지난해 10월 조명록 특사가 미국을 방문했을 때 북한은 제3국이 위성을 대신 발사해 줄 경우 장거리 미사일 개발을 포기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10월23일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이 평양을 방문해 김정일 위원장을 만났을 때 미사일 문제에 대한 합의점을 서로 찾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 뒤 콸라룸푸르에서 미사일 전문가 회담이 열렸는데 그 자리에서 이같은 합의가 있었다고 판단됩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정도면 북한이 굉장히 크게 양보한 것이고, 국제 사회에서 볼 때도 미사일 문제가 거의 해결되었다고 볼 수 있는 수준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이미 배치된 미사일 문제가 있을 수 있는데, 이 문제는 사실 북·미 협상만 가지고 되는 것은 아닙니다. 즉 한반도에 평화 체제가 구축되고 신뢰 구축 단계를 거쳐 군축과 군사력 재배치가 이루어지는 마지막 단계에서 논의될 문제입니다.

최근 미국은 미사일 문제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재래식 군축 문제까지 들고 나왔는데, 이 점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는 재래식 군축 문제는 남북이 해결할 문제라고 봅니다. 미국이 다루기에는 부적절하다는 것이지요. 왜냐하면 북한에 군비 축소를 요구하려면 당연히 우리도 군축을 해야 합니다. 즉 재래식 군축은 우리 문제와 직결되는 사안입니다. 다시 말해 재래식 군축은 우리에게 맡기고, 미국은 글로벌한 차원에서 핵이나 미사일 등 대량 살상무기 등을 다루는 게 바람직합니다. 이런 점을 무시하고 미국이 이를 북·미 협상의 전제 조건으로 들고 나올 경우 오히려 문제가 꼬일 수 있습니다. 북한측이 볼 때 자신들의 안보에 대해서는 아무런 보장도 없이 무장 해제만을 요구하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그 문제에 대해서는 북한의 태도도 중요한 변수일 텐데요. 평화협정 문제에서도 알 수 있듯이 북한은 한국군이 미군에 종속되어 있기 때문에 군사 문제는 미국과 해결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해 오지 않았습니까?

그것은 명백히 잘못된 주장입니다. 이미 한국군이 평시작전통제권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1992년에 한·미 군사위원회회의(MCM)가 열렸을 때 제가 합참 전략본부장으로서 참여해 미국측에 이 문제를 제기한 이후 일련의 협의 과정을 통해, 평시작통권이 한국군에 귀속되었습니다. 물론 전시작통권을 가진 미군과 협의할 필요는 있지만 군축이나 군사력 재배치에 대한 결정권은 우리가 가지고 있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평화협정도 남북이 합의하고 미국과 중국이 보증하는 방식이 되어야 합니다. 남북이 주체가 되어야 민족 전체의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협정을 체결할 수 있습니다.

북한의 재래식 군축 문제는 주한미군 감축이나 지위 변경과도 연동되어 있다고 봅니다. 이 문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주한미군 문제는 북한의 재래식 군축과 연동되기보다는 한반도의 전략적 관점이라는 큰 틀에서 봐야 할 문제입니다. 이미 그 부분에 대해서는 지난해 남북 정상회담에서 김정일 위원장도 주한미군의 필요성에 대해 동의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즉 지난 세월 동안 주한미군이 한반도에서 전쟁 억지 기능을 해왔고 또 통일 이후에 주변 국가들의 세력 각축을 막기 위해서도 필요하다는 것이지요.

사진설명 미사일 해법 찾다 : 북한은 북·미 협상에서 노동 미사일 개발 포기를 약속했다. 사진은 지난해 말 평양에서 만난 김정일 위원장과 올브라이트 장관. ⓒAP연합

그러나 앞으로 남북 화해 분위기가 진전될 경우 주한미군의 위상 변화가 불가피하지 않겠습니까. 이미 미국의 안보 전략가들이 지상군 병력의 일부 철수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한반도의 평화가 제도적으로 완벽하게 보장된다는 것을 전제로 해서 장기적으로는 주한미군의 역할이나 위상 그리고 병력 재배치 문제가 검토될 필요는 있습니다. 사실 한·미 군사 당국 간에 이미 재검토 필요성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졌고, 현재 작업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실 수 있습니까?

구체적으로는 1999년 12월30일 열린 한·미 연례안보회의(SCM) 제1차 회의 때 그런 합의가 이루어졌습니다. 즉 앞으로 한반도의 상황 변화에 따른 주한미군 지위 변경 문제나 위상을 재검토하기 위한 연구를 시작하자는 것이었지요. 그뒤 군사 전략 및 정책을 담당하는 양측의 핵심 고위급 장성을 각각 책임자로 해 현재까지 두 달에 한번씩 연구회의가 열리고 있습니다. 태스크 포스 팀이 결성된 것은 아니고, 정기적인 연구 모임에 필요하면 특수 분야 전문가들이 조언하는 방식입니다. 현재까지는 앞으로 한반도 정세의 변화 단계를 △현재와 같은 교류 협력 △평화 공존 △통일로 구분하고, 각 단계 별로 전략 개념을 설정한다는 데에까지 합의가 이뤄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현재의 교류 협력 단계가 평화 공존 단계로 넘어갈 경우 상호 불가침이나 군축 그리고 군사력 일부의 재배치 등이 논의될 수 있을 것이고, 통일 단계로 들어가면 남북한 군사력 전체의 재배치가 이뤄질 것입니다. 이런 논의 과정에서 주한미군 위상에 대한 재검토도 병행될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당장은 지난번 한·미 정상회담에서도 확인되었듯이 부시 행정부의 대북 입장이 매우 강경하고, 또한 중국이나 러시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여서 동북아 정세가 요동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실정 아닙니까?

지난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마치 두 정상 간에 불협화음이 있었던 것처럼 확대 해석된 부분이 있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부시 대통령이 김정일 위원장에 대해 회의(skeptism)를 품고 있다고 발언한 게 문제가 되었는데, 이 말도 불신한다는 뜻은 아니고 확인해 봐야 할 게 있다는 정도의 뜻입니다. 또한 부시 행정부는 중국에 대해 전략적 경쟁자라고 표현했는데, 이 말이 곧 적대 관계를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즉 파트너와 적대 관계의 중간쯤이라고 할 수 있지요. 미국은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으로서 세계의 전략적 안정과 균형을 잡아줘야 할 도덕적 책임이 있습니다. 중국을 적대시하는 것은 세계 평화나 미국의 국익에도 도움이 안된다고 봅니다. 시간이 지나면 더 현실적인 정책이 나올 수 있으리라고 봅니다. 대북 정책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클린턴 정부나 부시 정부나 포용 정책 외에는 대안이 있을 수가 없지요. 다만 북한의 변화에 대한 평가를 어떻게 하는가 하는 정도의 견해 차이는 있을 수 있겠지요.

각론에서는 매우 문제가 복잡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국가미사일방어(NMD) 문제의 경우 우리의 발등에도 불이 떨어진 형국인데, 한·러 정상회담 때 의 'ABM 파문'에서 시작해 최근 이정빈 외교통상부장관이 미국이 한·미 정상회담에서 우리에게 NMD 지지를 요청했으나 우리가 이를 거부했다고 발언해 또다시 파문이 일기도 했습니다.

ABM이 언급되어 저도 깜짝 놀랐습니다. 시기적으로도 그렇고 외교 관행상으로도 적절치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NMD 문제에 대해 부시 행정부의 의지는 확고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동안 몇 차례 실험이 다 실패했고 또 앞으로도 3∼5회 실험을 더 해야 합니다. 그러자면 시스템이 구축되기까지 15년 이상이 걸립니다. 또 의회 승인이나 여론 검증까지 남아 있어 미국 전체적으로도 아직 최종 결정이 내려지지 않은 사안입니다. 우리가 거기에 개입해 이런저런 말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지요.

또 일부에서는 미국이 NMD를 추진할 명분을 확보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대북 강경책을 추진하리라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미국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한반도 긴장을 부추기려 하는 게 아니냐 하는 문제는 저 나름의 소신이 있긴 하나 발언하기에는 적절치 않습니다. 다만 저는 헤리티지 재단의 연구원들이나 개인적으로 알고 지내는 미국의 학자들에게 대북 정책을 결정하기 전에 직접 북한을 들여다보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점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부시 대통령이 직접 가 보는 게 가장 좋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우면 측근 인사라도 보내 부시 정부의 시각으로 북한을 평가해 보라는 것이지요. 정책이 굳혀지기 전인 지금이 적기라고 강력히 권하고 있습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은 부시 정부에도 꼭 필요한 말인 것 같습니다.

동북아 안보를 주제로 '퍼그위시' 회의가 서울에서 열릴 예정인데,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있습니까?

퍼그위시 회의는 1957년에 아인슈타인을 포함한 노벨상 수상자들이 주축이 되어 설립한 국제 평화 기구입니다. 세계 각국의 한반도 전문가들과 정책 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인사들이 남북한의 분단 현실을 체험하고 한반도의 평화 정착을 위한 해법 마련에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데에 이 회의의 의미가 있습니다.

● 프로필 :
1937년 전남 완도 출생.
육사 16기.
1991년 합참 전략기획본부장.
1993년 국가안보회의 비상기획위원장.
1998년 국방부장관.
1999년 국정원장.
16대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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