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박통'과의 인연
  • 김은남 기자 (ken@e-sisa.co.kr)
  • 승인 2001.05.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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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는 사람은 두더지야." 지난 5월4일, 박정희기념관 건립을 반대하는 문인 1인 시위의 마지막 주자로 서울시청 앞에 선 김지하 시인(60)은 이렇게 입을 열었다. "집안에서 글이나 쓰지, 아무 것도 몰라. 그런데 바깥에서 말이 안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기에 한번 나와 봤지."


'박통 시대'에 그는 세 차례 투옥되었다. 수감 중 참선에 빠져들면서 그는 '인간 박정희'를 용서했다. 참선을 시작한 지 꼭 100일째 되던 날 그는 독재자가 살해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렇게 악연이 끝난 줄 알았건만 시인은 다시 박정희로 인해 거리에 서 있다. 독재자가 뿌린 씨앗이 IMF 위기 이후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노동자 말살 정책으로 피어나는 것을 보며, 국고를 들여 박정희를 추모하는 것만은 막아야겠다는 사명감이 그를 움직였다.


1990년대 이후 시인의 행보에 비판적인 사람들은, 이번 시위에 대해서도 냉소적이다. 독재자를 욕하기에 앞서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우라'며 수구 세력에 면죄부를 준 시인의 과오부터 참회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공격이, 6년 만에 신작시를 발표하고 사이버 문학관(www.artnstudy.com)에서 시를 강의하는 등 창작 활동을 재개한 시인의 에너지를 꺾기에는 역부족일 듯하다. 누군가 이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그는 광인인가? 그럴지도 모른다. 그는 몽상가인가? 그럴지도 모른다. 도대체, 시인이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누가 그런 역할을 맡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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