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도보순례 : 제6신] '토벌루트' 따라 빗점골에 오르다
  • 이문재 취재부장 (moon@sisapress.com)
  • 승인 2001.05.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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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13일, 일요일. 11일째다. 새벽부터 부산했다. 지리산에서 가장 깊은 오지의 하나로 알려진 빗점골까지 올라야 한다. 원래는 오전에 11km만 걷고 오후에는 지역 주민과 대화를 나누기로 했는데, 일정을 바꾸었다. 남부군 사령관 이현상이 사살된 곳으로 알려진 빗점골에서 한국전쟁 당시 지리산에서 희생된 넋들을 달래기로 했다. 도보 순례는 지리산 위령제의 일환인 것이다.

오전 7시30분, 쌍계사 앞 주차장을 출발한다. 30여 분을 걸었을까. 계곡 양 켠 가파른 경사면 곳곳이 차밭이다. 이른 시간인데, 벌써부터 차따는 사람들이 보인다(매암 차문화 박물관에서 차잎을 따보았으므로 자신있게 하는 말인데, 차값은 비싸지 않다).

최치원이 속세에서 더러워진 귀를 닦고 산 속으로 들어갔다는 세이암에서 단천골로 오르는 계곡은 깊고 또 길다. 길고 깊은 계속이 능선을 힘차게 밀어올린다. 하늘을 보려면 고개를 바짝 제껴야 한다.

산악의 근육은 팽팽하게 부풀어올라 있고, 그 근육들이 뿜어내는 신록은 눈부시다. 모두 이 봄에 새로 태어난 잎사귀들. 길섶에 나와 있던 다람쥐 한 마리가 다시 숲속으로 튀어들어간다. 크고 높은 것에서 작고 낮은 것까지, 오래된 것에서 막 태어난 것까지, 살아 있는 모든 것을 아우르고 있는 산. 지리산은 토산(土山)이다. 바위가 많은 악산(嶽山)에 견주어, 전체적으로 식생이 매우 풍부하다. 골짜기는 물론이고, 사방으로 뻗어내려간 능선과 우뚝우뚝 솟아있는 정상까지 생명이 빼곡하다. 지리산 속으로 파고들수록 도보 순례단의 행진은 한없이 작아져 있다.

마을 입구에 돌로 '의신동천'이라고 새겨넣은 의신에서부터 등산로는 '빨치산 토벌 루트'로 변해 있다. 하동군에서 세워놓은 빨치산 토벌 안내판과 이정표를 자주 마주친다. 도보 순례 첫날, 함양 마천 지역에서도 이같은 표지판을 본 적이 있다.

의신에서 한 시간 가량 걸어올라가야 하는 빗점골은 명선봉(1586m), 형제봉(1442m), 덕평봉(1510m)을 모자처럼 쓰고 있다. 오른쪽 너머로는 세석 평전. 지리산에서 가장 깊은 곳 가운데 하나다. 이 골짜기에서 남부군의 '전설적 지도자' 이현상이 사살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그가 죽던 순간은 명쾌하지 않다. 당시 군경 자료와 남부군 출신들의 증언이 서로 어긋난다.

시린 물이 흐르는 계곡 바로 옆, 이현상이 사살되었다는, 한 평 반 정도 크기의 바위 위에 제단을 차렸다. 제단 바로 앞 바위에 위패를 모셨다. 위패에는 '고 한국전쟁시 지리산 희생자 존영'이라고 쓰여 있다. 수경 스님은 위령제 직전에, 묵념과 입정의 차이에 관해 설명했다. 입정은 '여러 생각들을 지우고 오직 한 생각을 모아 평정에 이르는' 마음 다스리기의 하나. 입정해 한 생각으로 관(觀)할 때 비로소 지혜가 생긴다.

스님은 "이현상이나 군경 토벌대의 죽음이라고 생각하지 말아라. 그 죽음을 나의 죽음이라고 받아들여야 한다. 평소 우리는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을 것인지 파악하지 않고 살아간다. 마음속에 일어나는 모든 생각을 끊고 지리산에서 희생된 죽음과 나 자신을 일치시켜라"라고 말했다. 향불을 하나씩 들고 입정한다. 계곡물소리, 바람소리, 산새소리가 끼어든다. 마음을 한군데로 모으기란 쉽지 않다. 이어, 조별로 추도사가 낭독되었다.

문규현 신부의 감동적인 추도사

 
순례단이 조별로 추도사를 낭독하고 난 뒤, 이원규 대장이 문규현 신부의 추도사를 대독했다. 지난 2월16일, 지리산 위령제가 시작될 때 문신부가 보내온 것이었는데, 빗점골에서 이원규 대장의 목소리로 듣는 문신부의 '기도'는 남달랐다. 그것은 한편의 시 낭송이었다. 그 일부를 여기에 옮긴다.

 

 

지리산 한바퀴 850리를 걷고 또 걷습니다.
함양군, 산청군, 하동군,
구례군, 남원시,
그리고 천왕봉에서 노고단까지
반야봉에서 빗점골, 피아골까지
저 계곡들 구석구석을 맴도는 바람은 그저 바람이 아니요,
그 바람이 내는 소리도 하릴없는 바람의 소리가 아닙니다.
그것은 활활 타오르는 단풍과도 같은 선지피로
온 산을 적셨던 억울한 원혼들이 구천을 떠도는 것이요,
그들의 피맺힌 울부짖음의 소리입니다.

한국 전쟁시 좌와 우의 이데올로기 대립 속에서,
분단과 통일의 갈림길에서,
형은 토벌대로 아우는 빨치산으로 총구를 맞서게 했습니다.
자연도 인간에게 아름다움으로 다가서기 힘들었고,
인간은 자연 속에 젖어들 수 없는 분열과 파괴로 내몰았습니다.

저 좌우 대립과 긴 시간 속에
무수한 사람들이 핏빛 꽃잎으로 졌습니다.
작은 돌무덤들로 쌓이고 흙이 되었습니다.
눈물이 비가 되고 혼은 바람이 되었습니다.

사람은 자연과 함께 죽어 자연으로 돌아갔으되,
자연은 여전히 그 억울한 혼들을 품었습니다.
불의한 인간 세상이 그들을 외면했을 때,
여기 지리산의 모든 뭇생명들이 그 외로운 혼들 곁에 남아,
그들을 위로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저 역사 속의 억울한 죽음 앞에
용서를 청하지도 못하면서,
동시에 그들의 유일한 벗이 되어 온 지리산의 생명들을
또한 파괴해 왔습니다.
그래서, 짓밟히고 죽은 것이 사람인가 하면 자연이고
자연인가 하면 사람입니다.
바람소린가 하면, 죽어간 영혼들의 울부짖음이고
누군가 울부짖는가 하면, 바람이 우는 소립니다.

이제 우리는 지리산의 모든 영혼들을 위로하며,
그 영혼들과 함께 죽어간 꽃들과 나무들과 짐승들에게
용서를 청합니다.
끊임없는 인간의 무지와 탐욕으로 여전히 파괴당하고 있는
이 지리산의 고통을 끝내기 위해 우리 자신을 바칩니다.
그 원혼들이 위로받고, 자연에 대한 파괴가 멈춰질 때 그때서야,
우리는 진정으로 모든 생명들의 조화와 평화가
어우러지는 사회를 성취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용서를 구하며 걷고 또 걷습니다.

한국전쟁시 희생된 지리산의 모든 영가들이시여,
이제는 편히 잠드소서.

 
위령제가 끝나고, 대원들은 저마다 조그만 돌을 하나씩 주워왔다. 위령제를 지낸 자리 바로 왼쪽 바위 위에 돌탑을 쌓아올렸다. 하동군은 이현상이 사살된 바위 한쪽에, 당시 상황을 설명하는 그림과 글이 새겨진 대형 안내판 세 개를 병풍처럼 세워놓았다. 그 병풍 맞은 편에 도보 순례자들이 세상에서 가장 작은 '위령탑'이 솟아올랐다.

빗점골에서 걸어내려오며, 지리산 희생자들의 죽음과 나 자신의 죽음(혹은 삶)을 일치시키라는 수경 스님의 말씀을 떠올렸다. 그것은 도보 순례단 대원들 각자가 앞으로 오래 들고 다녀야 할, 버거운 화두였다. 문제는 언제나 몸과 마음, 생각과 행동의 일치다. 일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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