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길 보건복지부장관
  • 정희상 기자 (hschung@e-sisa.co.kr)
  • 승인 2001.06.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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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들 또 반발하면 용납 않겠다"


"보험 재정을 빨리 정상화하는 데 꼭 필요하고 가치 있는 대책들을 검토했지만 막바로 내놓으면 이익 단체끼리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1단계로 이번 종합 대책을 시행하고 다음에 2단계 방안으로 들어갈 것입니다."


국민건강보험 재정 고갈 파동은 민심이 현정부에 등을 돌린 기폭제였다. '모두가 내 책임'이라고 인정한 김대중 대통령은 민주당 정책통인 김원길 의원을 의보 재정 고갈 파동 소방수로 긴급 투입했다. 그는 보건복지부장관에 취임한 지 2개월여 만인 지난 5월31일 `'보험재정 안정 및 의약분업 정착 종합 대책'을 발표했다. 이번 종합 대책에 대해 의료계·약사회·시민단체는 저마다 다른 이유로 '미봉책'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김원길 장관을 만나 종합 대책이 나오게 된 배경과 문제점을 따져보았다.




의사협회와 약사회, 시민단체 모두 이번 종합 대책에 대해 반발하고 있는데 어떻게 설득하시겠습니까?


모두가 불만이 있다는 것을 알지만 지난해와 같은 의료대란은 없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의사·약사·시민단체 가운데 어느 한 쪽으로 치우쳐서는 안된다는 데 주안점을 두고 안을 만들었어요. 또 갑작스럽게 발표한 것이 아니고 이미 2주일 전부터 세 곳에 다 제가 전달해 주었기 때문에 충격을 받을 일도 없었습니다. 의사들이 이번 대책에 불만을 가지고 투쟁에 나선다면 결코 생존권 문제가 아니라는 점에서 국민도 납득하지 않을 것이고, 저도 용납하지 않을 것입니다.


의사와 약사의 눈치를 보느라 결국 국민 부담만 늘린 꼴이 되었다는 지적도 많은데요.


각 주체별 재정 분담 비율을 황금 분할이라고 말하는 전문가들도 있습니다. 연간 필요한 분담액 3조8천9백여억원 가운데 정부가 49%, 의약계가 40%, 국민이 11%로 짐을 나누게 되었으니까요. 어느 한 쪽의 희생을 강요한 정책이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문제는 이번 정책이 성공적으로 추진되느냐 여부라고 봅니다.


그러나 국고 부담 49%라는 것도 결국 세금이니까 국민 부담 아닙니까?


그런 식으로 보면 의사·약사 들이 지는 부담도 전부 국민 부담이라고 봐야지요. 그들은 국민 아닙니까. 또 국민이 납부하는 건강보험료는 국민의 질병 치료를 위해 매년 다 쓰이는 비용입니다.


저소득층이 주로 이용하는 의원급 의료보험 수가를 인상한 것은 정부의 복지 정책과 어긋난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의원급 소액 진료에서 초진비는 2천2백원이던 것을 3천원으로 올려 자가 부담 진료 비율이 20%로 오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병원급 자가 부담 비율은 그동안 40∼45%였습니다. 가난한 국민의 자가 부담 진료비를 올렸다는 주장에도 일리는 있지만 의료 보호 제도를 통해 충분히 보완할 수 있다고 봅니다. 의료 보호 제도 적용을 받는 국민기초생활보호대상자 1백60만명은 이번 진료비 인상 대상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종합 대책에 대해 60∼70점 수준이라고 자평했는데, 검토했던 100점짜리 대책은 무엇입니까?


밀린 보험료를 획기적으로 거두어들이고,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의료기관의 허위 청구를 확고하게 막아내 보험 재정을 빨리 정상화시키는 여러 방안을 검토했습니다. 또 현행 보험 카드를 독일처럼 마그네틱 플라스틱 카드로 바꾸고 전산 처리해 부정의 소지를 근원적으로 없애는 것도 포함됩니다. 이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고 가치 있는 대책을 검토했지만 막바로 그걸 내놓으면 이익 단체들 간에 전쟁이 일어나 올 한해는 싸우다 저물게 될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1단계 방안으로 이번 대책을 시행하고 그 다음에 2단계 방안으로 들어갈 겁니다.


담뱃값에 포함된 국민건강진흥기금으로 의보 재정을 충당하기 위해 한때 담뱃값을 올린다는 말이 나돌았는데, 이 방안은 물 건너간 겁니까?


국민 건강 보호 차원에서 담뱃값은 인상해야 합니다. 다만 인상된 돈을 의보 재정에 넣는 것을 저는 처음부터 반대했습니다. 재정 당국이 정부가 떠안은 의보 재정 분담률 49%의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까 논의하다가 40%는 국고에서 지원하고 10%는 담뱃값 인상으로 해결하자는 안을 내놓은 것인데 흡연자들의 여론이 나빠 백지화했습니다. 앞으로 담뱃값이 오르면 인상분은 순전히 국민 건강 증진 목적에 사용해야겠지요.


의료기관의 건강보험 요양 급여 허위·부당 청구 실태가 심각하다는데 그것만 근절해도 보험 재정은 쉽게 안정될 수 있지 않나요?


실제 기준에 벗어나고, 과잉 청구하거나 허위로 청구하는 일이 매우 많습니다. 우리는 올해부터 의료기관에 대해 정밀 심사를 강화하고, 의심나는 병원은 실사를 통해 강력히 단속하고 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당초 보험 재정을 추계할 때 6조∼8조원 적자를 예상했던 것이 4조2천억원 적자 수준으로 낮아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의사협회가 의료인 전체를 마치 도둑 취급한다고 반발하고 있어서 어려움도 많습니다.


의료기관에서 주로 적발되는 허위·부당 청구 유형은 어떤 것입니까?


크게 두 가지입니다. 환자의 알 권리를 토대로 수진자 조회를 해보면 과잉 청구 사례가 많아요. 감기 환자를 정신질환자로 둔갑시켜 돈을 타낸다든지, 한 번 진료 받은 환자를 여러 번 온 것처럼 꾸미고, 약도 한 알 받은 것을 많이 받아간 것으로 써서 올리는 방식들이지요. 또 요양 급여 대행 청구업체가 있어서, 허위 청구를 대행하면서 의사에게 일정액을 주고 나머지는 떼먹는 수법도 많습니다. 의료기관 중에는 사회복지 법인체가 있는데 이곳에서 노인들을 전세 버스로 데려가 음식을 제공하고 간단한 물리 치료를 해준 후 모조리 보험 청구하는 일이 많습니다. 이런 행위들을 철저히 단속하고 있습니다.


건강 보험 재정이 파탄된 원인이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당초 설계가 잘못되었습니다. 지출은 매년 18.5% 느는데 보험료 수입 증가율은 14.5%에 그쳤습니다. 또 지난해 의료대란 과정에서 의사들에게 의보 수가를 무려 40%씩이나 급격히 올려준 것도 재정 고갈을 부채질했습니다.


의보 재정 파탄 사태에 파묻혀 당초 현정권이 내건 의약분업의 명분은 온데간데 없어졌는데요.


길게 보면 의약분업은 당초 취지를 살려가야 하리라 봅니다. 의약분업 자체를 백지화하자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으나 시대 조류는 가만 둬도 의약 분업으로 나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전자 정보화 시대를 맞아 화상 진찰까지 도입되었는데 앞으로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한 디지털 시대가 되면 집에 앉아서도 의사·약사와 상담하고 진료를 받고 약을 배달 받아 복용하게 될 것입니다. 그게 바로 자연스런 의약분업입니다.


감사원은 특감을 통해 전임 차흥봉 장관과 간부들이 허위 보고를 해 의보 재정 고갈을 불러들였다며 처벌하라고 했습니다.


부임하기 전에 있었던 일이므로 저는 감사원 통보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지만, 아직 징계하라는 공식 통보는 받은 바 없습니다. 통보가 오면 논의할 문제입니다.


정치인 출신이 전문성이 필요한 보건복지부 장관직을 맡았으니 복지 행정이 제대로 되겠느냐는 회의적 시선도 있었는데요.


생소한 부서에 와서 제대로 장악할 수 있을까 걱정했습니다만 취임하고 보니 모두들 절박한 심정으로 기다리고 있더군요. 부원들이 20일 동안 철야하며 종합 대책을 만들었는데 미리 새나간 내용이 한 가지도 없을 만큼 저를 믿고 뭉쳐 주었습니다. 복지부는 민생 관련 부처로 가장 중요한 곳인데도 그간 기구도 단촐하고 사람도 적게 배치하는 등 등한시해 온 면이 있습니다. 앞으로는 건강 보험증을 전산 카드로 만들고 전국 의료 재정 전산망을 구축하는 등 시스템을 개편해 정부 내에서 복지부를 IT(정보기술) 분야 선두 주자로 올려놓을 것입니다.


● 프로필 :

1943년 서울 출생.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중앙증권일보〉사장. 제14·15·16대 국회의원. 민주당 정책위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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