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헌 새천년평화재단 총재
  • 박성준 기자 (snype00@e-sisa.co.kr)
  • 승인 2001.06.28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평화운동에 종교 색채 없다"


"단군상 건립 운동 때도 비판이 있었는데, 국조를 제대로 모시자는 운동을 우상 숭배라 몰아쳐서야 되겠습니까. 저는 누가 '당신 종교가 뭐냐'고 물으면 '내 종교는 유교다'라고 자랑스럽게 대답합니다."


단학선원 설립자이자 도인 체조·뇌호흡 '발명자', 단군상 문제로 기독교와 마찰을 빚고 한때 제자였던 시인 김지하씨와 불화를 일으켜 주목되었던 일지(一指) 이승헌씨. 그가 다시 화제의 인물로 떠오르고 있다. 베스트 셀러 〈힐링 소사이어티〉로 바람을 일으키는가 싶더니, 최근 세계적인 환경운동가·정신지도자 들을 초청해 대규모 국제 평화 행사를 열었다. 서울 서초동 한국인체과학연구원 사무실에서 그를 만나 '이승헌식 평화운동'의 정체를 캐물었다.




6월15·16일 서울 롯데월드호텔에서 열린 휴머니티 컨퍼런스 참석자 명단을 보니 앨 고어를 비롯해 쟁쟁한 인사들이 많더군요. 어떻게 해서 이렇게 큰 행사가 열릴 수 있었습니까?


지난해 유엔에서 종교·정신 지도자 회의가 열렸는데, 그 때 제가 한국 대표단 50명 중 한 사람으로 선정되어 참석했습니다. 유엔이 저더러 한국 대표단 스폰서를 맡아 달라고 요청해서 강원룡 목사·송월주 스님 등 대표단을 제가 조직했지요. 당시 회의 주제가 '인류 평화'였습니다. 유엔에 가서는 두 차례 연설했는데, 그 내용 중 하나가 매년 평화를 위한 국제 회의를 열고, 그 첫 번째 행사를 한국에서 갖는다는 저의 계획을 발표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이번 컨퍼런스로 이어진 것입니다.


행사 추진 과정에서 종교계, 특히 기독교계와 마찰을 빚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무엇이 문제였습니까?


행사는 유엔 회의의 결과이므로, 그 회의에 참석했던 분들과 함께 추진할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종교계가 저희 단체(새천년평화재단)의 성격을 문제 삼으며 '왜 한마디 상의 없이 일방적으로 일을 추진하느냐'고 반발해 '그렇다면 단독으로라도 하겠다'고 결정하고 독자적으로 추진했지요. 이번 행사에는 국제 학술회의말고도 '지구인의 날' 선포식 등 굵직한 행사도 있었지만, 종교와는 무관한 행사를 지향했기 때문에 당초 계획보다 대폭 축소되었습니다.


단독으로 추진할 정도면 평화운동에 대단한 의욕을 갖고 계셨다는 얘기인데, 언제부터 평화운동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까? 단학선원과 평화운동은 별로 관련이 없어 보입니다.


평화운동·환경운동은 제가 주창하는 홍익인간(弘益人間) 이념과도 잘 맞아떨어집니다. 홍익인간이 뭡니까. 모두가 한식구이니까 돕고 살자는 것 아닙니까. 게다가 저는 정신의 평화와 건강을 지향하는 단학을 오랫동안 해 왔습니다. 평화운동이나 환경운동이나 결국 사람이 하는 운동이고 사람을 위한 운동입니다. 그래서 기왕이면 제가 추구해온 홍익인간 이념을 평화운동으로 연결해 보자, 그렇게 해서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평화운동에도 다양한 방법이 있을 텐데 왜 하필이면 '정신'을 들고 나왔습니까?


지금 우리나라는 물론 전세계가 가치관의 혼란을 겪고 있습니다. 저는 그 이유를 지나친 물질주의에서 찾고 있습니다. 그것이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또는 문화적으로 갈등을 가져오고 대립을 낳으며 궁극적으로 평화를 저해한다고 생각합니다. 즉 현재의 상황은 새로운 정신 문명 출현이 필요한 시기라는 것입니다. 저는 지금 새천년평화재단을 맡고 있지만, 앞으로는 조직을 더 확대해 국제 NGO(비정부기구)로 탈바꿈할 생각입니다. 물론 목표는 새시대에 맞는 새로운 가치관, 새로운 정신 문화를 조성하겠다는 것입니다.


새천년평화재단의 평화운동을 매우 의심스런 눈길로 바라보는 사람이 상당수 있습니다. 단학선원의 종교 목적을 은폐하기 위한 것이라는 말도 있고요.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착각도 자유라고 생각합니다만, 저는 원래부터 종교와는 담 쌓고 지내는 사람입니다. 만약 오해받을 소지가 있다면, 그것은 평소 제가 경천(敬天)·애인(愛人)·숭조(崇祖)를 주장해온 데 있을 텐데, 글쎄요, 이런 것은 오히려 잘한다고 표창장 주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단군상 건립 운동만 해도 그렇습니다. 국조(國祖)를 제대로 모시자는 운동을 우상 숭배로 몰아쳐서야 되겠습니까. 저는 누가 '당신 종교가 뭐냐'고 물어보면 '내 종교는 유교다'라고 자랑스럽게 대답합니다.


그래도 예컨대 '깨달음'이니 '수행'이니 하는 용어들은 유사 종교를 연상시킵니다.


깨달음 얘기가 나왔으니까 말인데, 사실 저는 그냥 깨달음보다는 깨달음 이후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깨달은 뒤에 무엇을 할 것이냐가 문제이지요. 저는 공원 지도(1980년대 중반 그가 경기도 안양의 한 공원에서 일반인에게 단학 수련법을 가르쳤던 일을 말한다)를 할 때부터 머리 속에 깨달음의 궁극적인 목적을 홍익인간으로 그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 발언권 없는 사람을 누가 알아주기나 합니까. 지금에서야 제가 좀 발언권이 생겨, 평소 지녀온 생각을 실천에 옮겨 보려는 것입니다.


단학선원의 조직 체계나 운영 모습이 종교 집단의 조직을 연상시킨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얼마 전에 있었던 김지하 선생과의 불화 때 단학선원측의 대응도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까?


그 사람(이씨는 김지하씨를 지칭할 때 '그 사람' 또는 자신이 붙여준 '노겸'이라는 호를 썼다) 얘기라면 더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다 끝난 얘기이고 소란도 정리됐습니다. 단학선원이 거대 조직(현재 단학선원은 지원을 국내에 3백 곳, 해외에 50곳 두고 있다)이다 보니 3년마다 한 번씩 비슷한 문제가 터집니다. 조직을 점검해 보아 잘못 가고 있으면 무너뜨려야 합니다. 제가 조직을 해체하고 지분을 넘겨준 것도(이는 지난해 10월, 이씨가 단학선원의 경영권·소유권을 회원들에게 넘긴다고 전격 선언한 것을 뜻한다) 첫째는, 평화운동을 하기 위한 뜻(그는 조직에 기대면 참다운 운동을 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에서 출발했지만, 단학선원 운영 방식을 쇄신하려는 데에도 기본 목적이 있었던 것입니다.


'깨달음'을 유난히 강조하시는데, 도대체 깨달음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깨달음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깨달아서 무엇을 할 것인가가 진짜 중요합니다. 예수·부처가 인류 4대 성인으로 추앙되는 이유는, 단순히 깨달은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자신이 깨달은 바를 통해 사람을 선하게 살도록 했기 때문입니다. 인삼은 달여 먹어야 보약이 되지, 모셔놓고 절 올려 봐야 아무 효능도 거두지 못합니다. 제가 깨달음을 지향하는 것은 모두가 선하게 살자는 것입니다. 하지만 누구나 깨달음에 이를 수 없기 때문에 저처럼 깨달음에 이르는 길을 가르쳐주는 사람이 필요한 것입니다. 저는 제자들에게 '자동차를 누구나 만들 수는 없다. 그러나 누구든 운전은 할 수 있다'는 말을 합니다. 지금은 누구나 깨달음이니 구원이니 하는 데에서 헤맬 시간이 없다는 것입니다(이 대목에서 이씨는 정신 세계의 지도자가 아니라 '정신 상품'을 판매하는 단학선원의 경영자로 되돌아간 듯이 보였다).


앞날에 대한 구상이 많은 것으로 압니다.


2003년에 개교하는 것을 목표로 평화대학원·대학 설립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번 6월 중 건물 일부가 준공됩니다. 한국의 선도(仙道) 문화에서 유래한 수련법인 단학을 세계화하여 우리 문화를 세계에 널리 알리는 일도 계속할 예정입니다. 미국에 가서 놀란 것이, 가는 곳마다 맥도널드 햄버거집을 볼 수 있었던 것인데, 저는 맥도널드 가게보다 많은 단 센터(미국에서는 단학선원 대신 단 센터라는 용어를 쓴다)를 미국에 만들 작정입니다.


● 프로필 :

1950년 출생. 1979∼1984년 전주 모악산 수행. 단전 호흡 및 단학 체계 완성. 새천년평화재단 총재. 한국인체과학연구원 원장.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