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재상 자연 다큐/갯벌 탐사③]
펄 속에 펄펄한 생존의 지혜
  • 홍재상 (인하대 교수·해양생태학) ()
  • 승인 2001.06.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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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개·게, 은식술 탁월…바지락, 종족 보존 위해 알 100만 개 낳아




고난과 시련이 성공의 발판이 되는 것처럼, 척박한 환경에서 자라는 생물일수록 기발한 '생존 전략'을 터득하게 마련이다. 갯벌에서 생활하는 생물도 예외는 아니다.


갯벌은 넓고 평평하여 숨을 곳이 거의 없지만 갯벌 생물들은 오랜 진화를 거쳐 나름의 생존 방법을 획득해 왔다. 갯벌 생물들이 가장 애용하는 방법은 모래나 펄에 파묻혀 생활하는 것이다.


인천 주변 펄 갯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맛조개는 단단하고 긴 다리가 '은신 무기'이다. 맛조개는 끝의 뾰족한 다리를 펄 속으로 넣고, 다시 그 앞쪽 끝을 부풀게 하여 다리를 움츠린다. 부푼 부분을 발판 삼아 펄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데, 수십 초 사이에 모든 동작이 끝난다. 바지락은 위기 상황이 오면 도끼처럼 생긴 발을 사용해 모래 속으로 재빨리 잠입한다. 보통 크기의 바지락이나 대합은 깊이 10cm 정도까지 잠입한다. 이들은 모래나 펄 속에 매몰된 상태에서도 아가미를 통해 수중의 산소를 얻어 호흡하고, 먹이를 걸러 먹는다. 입수관과 출수관을 퇴적물의 표면으로 내뻗어 해수를 체내로 빨아들이는 것도 가능하다.


'땅굴 파기 선수' 엽낭게, 모래 속에 집 '뚝딱'


단순히 몸체를 파묻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땅굴을 파고 갱도 속으로 도피하는 갯벌 생물들도 있다. 게가 대표적이다. 엽낭게는 허물어지기 쉬운 모래 바닥에 수직으로 구멍을 파고 사는, '땅굴 파기' 선수이다. 조수가 차오면 휩쓸려 쉽게 허물어지는 탓에, 조수가 빠지면 다시 새 집을 짓곤 한다.




방게는 비교적 조수가 자주 미치지 않는 해안 갈대밭에 땅굴을 만든다. 바다로부터 떨어져 있어 해수에 파괴되는 경우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에 땅굴을 단단하게 파고 여차하면 도망갈 '비상구'까지 만든다. 펄 갯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칠게는 땅굴을 파 놓고 구멍 가까이에서 긴 눈자루가 달린 눈을 세워 주위를 살피며 먹이를 먹는다. 사람이 접근하면 재빨리 굴 안으로 숨었다가 다시 구멍 속에서 눈만 내놓고 상황을 살핀다.


또 넓적집갯지렁이·새날개갯지렁이·괴물유령갯지렁이처럼 그럴듯한 '방공호'를 만드는 부류도 있다. 모래나 펄 속에 잠입하여 수직으로 땅굴을 파는데, 얇은 막이나 키틴질을 분비해 기다란 튜브 모양으로 벽을 치고 집을 만든다. 집갯지렁이류는 집(서관) 입구에 조가비나 해조 등을 부착해, 닻 구실을 하게 한다. 서관은 땅 속으로 열려 있고, 몸을 숨기는 땅굴은 상당히 깊다. 새날개갯지렁이는 U자형 굴 집에 살며, 갈색의 얇은 막으로 이루어진 서관을 만든다. 서관을 이용해서 사는 생물들은 온실 속의 화초처럼 몸체가 부드럽다.


특별한 은신처를 마련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일부 게와 댕가리는 물이 빠져나가 건조해지면 빈 조가비를 찾아내 그 속에 숨어 지내기도 한다. 군데군데 자갈이나 조그만 암반, 말뚝 등에 착생하는 부착 생물도 있다.


은신이 생존 기술의 하나라면, '다산' 전략은 종족 보존 기술이다. 조개나 게를 비롯한 갯벌 생물 대부분은 태어난 후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는 크기를 가지는 수중 떠살이 시기를 거치는데, 이 때 먹이를 확보하지 못하거나 다른 포식자들에게 잡혀 먹기 쉽다. 확률로 따지면 수천 마리 가운데 한 마리 정도만 살아 남는다. 이처럼 생존율이 희박하기 때문에 어미들은 가급적 자손을 많이 낳는다. 해마다 이맘 때 쯤 산란하는 바지락은 알을 대략 한번에 100만 개 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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