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인생, 한 방에 끝내준 사나이
  • 기영노(스포츠 평론가) ()
  • 승인 2001.07.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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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 첫 타석·초구·끝내기·만루포로 무명 설움 날려


제목:초구, 한 방에 끝내 준 사나이

때:2001년 6월23일

장소:잠실야구장

주연:프로 야구 두산 베어스 송원국 선수(22).

조연:SK 와이번스 김원형 투수

감독:두산 베어스 김인식 감독(LG 트윈스 수석코치 김인식과는 동명이인)

시놉시스:오른손으로 던지고 왼쪽으로 타격하는 송원국 선수를 야구가 생긴 이후 가장 극적인 스타로 만들다.




지난 6월23일, 잠실야구장에서 벌어진 홈 팀 두산 베어스 대 원정 팀 SK 와이번스 전. 두 팀 모두 절체절명의 순간에 만났기 때문에 한치도 양보하지 않는 대접전을 벌였다. 올 시즌 초반부터 현대 유니콘스·삼성 라이온스와 치열하게 선두 다툼을 벌인 두산 베어스는 어느새 승률이 5할대 초반으로 떨어져 하위권 팀들의 타깃이 되어 있었다. 더구나 최하위인 SK에게 물리면 약도 없는 상황이었다. 꼴찌로 추락한 SK 와이번스가 꼴찌를 벗어나려면 팀 분위기가 하향세에 접어든 두산을 꼭 잡아야 했다.


경기는 내내 치열한 타격전 양상을 보였다. 스코어는 6 대 6. 9회 말 투 아웃 만루 상황. 두산으로서는 안타나 실책 또는 볼넷 하나면 경기를 잡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 그러나 SK도 이 고비만 넘기면 승리도 바라볼 수 있었다. 무슨 직감이 들었는지 김인식 감독은 이 중요한 순간에 2군에서 갓 올라온 송원국을 대타로 기용했다. 얼떨결에 타석에 들어선 송원국은 SK 김원형 투수의 바깥쪽 공을 밀어치려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엉뚱하게 공이 몸쪽으로 파고들었다. 하지만 송원국은 있는 힘을 다해서 방망이를 휘둘렀다. 공은 죽죽 뻗어갔다. 홈런, 홈런이었다.


송원국의 어머니 김애자씨(42)는 프로 데뷔 4년 만에 처음 1군에 등록한 아들이 혹시 타석에 들어서지 않을까 기대하고 관중석에 앉아 있었다. 송원국의 홈런이 터지자 김애자씨는 두산 팬들과 함께 아들의 이름을 목이 터져라 외치며 눈물을 흘렸다.


야구 역사상 가장 극적인 만루 홈런


송원국의 프로 데뷔 첫 타석 초구 끝내기 만루 홈런은 한국 프로 야구 20년, 일본 프로 야구 50년, 미국 프로 야구 100년 만에 처음 세워진 진기록이다. 한국에서는 조경환 선수(롯데)가 지난 4월11일 프로 데뷔 첫 타석에서 홈런을 때렸다. 일본 프로 야구에서는 1956년 주오 대학을 졸업하고 난카이 호크스에 입단한 아나부키 요시오 선수가 한큐 브레이브스와의 프로 데뷔전 9회 말 2 대 2 상황에서 결승 홈런을 터뜨린 기록은 있지만 초구나 만루 상황이 아니었다.




메이저 리그에서는 아직 틀이 잡히기 전인 1898년에 필라델피아의 빌 더글비 선수가 프로 데뷔 첫 타석에서 만루 홈런을 터뜨렸으나 끝내기나 초구 홈런이 아니었다. 또한 요즘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서 홈런 선풍을 일으키고 있는 배리 본즈의 아버지 바비 본즈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팀에서 프로에 데뷔하던 1968년 6월25일 만루 홈런을 터뜨렸지만 세번째 타석이었다.


야구가 생긴 이후 가장 극적인 만루 홈런을 터뜨린 송원국은 홈런을 친 다음날부터 작은 영웅이 되었다. KBS 제1라디오 〈스포츠 하이라이트〉에서 생방송으로 인터뷰를 하는 등 여기저기서 취재 요청이 쇄도했다. 더구나 3일 후인 롯데 자이언츠 전에서 또 초구에 2루타를 터뜨려 '확인 사살'까지 했다.


극적인 데뷔전을 마치고 야구장을 나서던 송원국은 깜짝 놀랐다. 라커룸 앞 출입구에서 "송원국!"을 외치며 기다리고 있던 '깜짝 팬' 수십 명 가운데 여성 한 사람이 수줍은 듯 다가오더니 선물 상자를 내밀었다. 곱게 포장된 꾸러미를 풀어 보니 남성용 화장품이었다.


두산 베어스 선배들의 대접도 확 달라졌다. 요즘 선배들은 이름 대신 '어이 영웅'이라고 부른다. LG와 현대 팀에서 활약하던 심재학 선배가 말끝마다 영웅이라고 치켜세운 후 아예 별명이 되어 버렸다. 송원국은 초구에 각각 만루 홈런(23일), 2루타(26일)를 때린 다음날인 27일 1군 선수(25명)와 프런트에 캔 커피 하나씩을 돌려 신고식을 마쳤다. 이제 송원국은 1군 고정 멤버가 되었다. 김인식 감독도 웬만해서는 송원국을 다시 2군으로 내려보내지 않을 것이다.


요즘 송원국은 다른 선수들보다 1시간 먼저 훈련하러 나간다. 이제는 2군의 쓴맛과 1군의 달콤한 맛을 모두 겪어서 어떻게 해서든지 1군에서 살아 남아야 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송원국은 1998년 광주일고를 졸업하고 두산 베어스에 2차 지명 1순위로 1억8천만원을 받고 입단한 유망주였다. 그러나 프로 데뷔 첫해에 간염에 걸렸고, 설상가상으로 오른쪽 팔꿈치 부상이 겹치면서 1군 무대는커녕 2군에서도 제대로 뛰지 못했다. 무려 4년 간을 한 맺힌 2군에서 보내다가 올 시즌 김동주·홍원기가 부상한 틈을 비집고 1군 무대에 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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