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종길 자연 다큐/해양 생태계 여행③]
'바닷속 이발소'
  • 제종길(한국해양연구원 책임연구원) ()
  • 승인 2001.07.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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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속 이발소'에 무슨 일이…
청소놀래기 등 물고기들의 공생·기생 관계 엿보기


'바닷속 이발소'라는 곳이 있다. 다이버들이 지은 이름인데, 딱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주로 열대 해역에서 볼 수 있지만, 제주 바다에서도 이런 장소를 발견할 수 있다. 수중 한 곳에 큰 물고기가 헤엄을 멈춘 채 정지해 있고, 작은 물고기 두 마리가 큰 물고기 아가미 주변에서 부지런히 움직인다. 큰 물고기의 기생충이나 음식 찌꺼기를 제거하는 중이다. 그래서 이 작은 물고기의 이름도 청소놀래기이다. 청소 서비스를 받고 있는 물고기는 흐뭇한 표정을 짓는다. 물고기에게도 표정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곳이 바로 '바닷속 이발소'이다. 한 차례 청소가 끝나기 전에 다른 물고기들이 서비스를 받기 위해 뒤에서 조용히 기다린다. 그들은 청소놀래기가 '개업'한 곳을 찾아온 것이다.




서로 다른 생물이 일정한 관계를 맺고 함께 산다는 것은 오랫동안 관계를 서로 유지하려고 노력해온 진화의 결실이다. 다른 생물을 숙주 삼아 살아 가는 기생충의 삶을 보자. 기생을 하면 숙주의 성장과 생식을 방해할 정도로 피해를 줄 수 있다. 그러나 숙주가 죽고 나면 다른 숙주로 옮겨 갈 만한 기회를 얻기가 쉽지 않다. 결국 자신이 살기 위해서는 숙주가 죽지 않도록 배려해야 한다. 그래서 숙주로부터 영양을 빼앗아 오더라도 숙주가 계속 생존할 수 있을 만큼 남겨 놓는 것이 '최선의 전략'이다. 그러니 고도의 생존 전략이 두 생물 사이에 오갈 수 있고, 때로는 그 관계가 도움을 주는 공생인지 기생인지 차이가 불분명하다.


서로의 필요에 의해 함께 살아 가는 생물들의 공생 관계는 의외로 알려진 것이 많지 않다. 바다에서는 상리공생 관계인 집게와 말미잘, 말미잘과 흰동가리돔, 상어와 빨판상어가 잘 알려져 있다. 흰동가리돔이 말미잘의 독 세포를 일종의 면역 기능으로 피한다는 사실도 여러 실험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그러나 이와 비슷한 관계를 가졌을 것으로 보이는 연성산호와 개오지에 대해 알려진 것은 그리 많지 않다. 산호 표면에 사는 개오지는 껍데기[貝殼]를 둘러싼 근육(외투막) 돌기의 색깔이나 모양이 산호의 폴립과 너무나 똑같아, 움직이지 않으면 도저히 찾아낼 수가 없다. 그리고 한 산호에는 한 쌍의 개오지만 사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그런 돌기를 갖게 되었고, 다른 개체가 들어오면 어떻게 반응하는지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해로해면 몸 속에 셋방 사는 새우




깊은 바다의 바닥에 사는 해로해면이라는 해면동물이 있는데 몸이 긴 자루형 그물처럼 망으로 이루어져 있고 바닥에 부착되어 산다. 그물로 된 몸 속에는 대체로 한 쌍의 새우가 사는데, 해로새우라 한다. 성체의 크기로는 그 그물망을 빠져 나오기 어렵다. 결국 유생 시기에 그물 감옥에 들어가 한 쌍이 평생 해로하게 되는데, 왜 그런 관계를 맺게 되었을까? 여러 가지를 상상할 수 있으나 정확한 이유는 그들만이 알뿐이다. 이 해로해면은 가끔 그물에 걸려 채집되는데, 표면의 퇴적물을 잘 씻어내고 말리면 하얀색 눈부신 모습으로 탈바꿈한다. 일본에서는 이것을 결혼 선물로 증정하기도 한다.


지름이 몇십 cm나 되고 늘어뜨린 촉수만 해도 1m가 넘는 큰 해파리도 촉수 사이에 작은 물고기 떼를 거느리고 다닌다. 다른 물고기들은 목숨을 잃을 수 있는데, 이 해파리고기들은 촉수를 방패 삼아 살아간다. 이 물고기는 성장하면 더 이상 해파리와 살지 않고 바다 속보다 깊은 곳으로 돌아가는데, 이들이 언제 해파리 주변에 들어가는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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