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의 조개와 바닷가재회
  • 신경숙(소설가) ()
  • 승인 2001.08.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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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 김용옥의 어느 책에 시드니의 바닷가재를 서너 페이지에 걸쳐 묘사한 장면이 있는데, 나중에 책을 덮고 나니 주요 내용보다는 오로지 바닷가재 생각만 날 정도로 맛있게 써 놓았다.


시드니에 가게 되었다. 일행이 다섯이었는데 나, 그리고 그 날 나와 결혼식을 올린 사람, 회사 동료라는 두 남자와 앳된 한 여자였다. 그들이 보기엔 우리가 이상해 보였겠지만, 우리가 보기엔 두 남자와 한 여자가 이상했다. 왜 두 남자가 하필 시드니에 여행 왔는지. 왜 저 여자는 혼자인지. 어쨌든 우리는 그때는 김포였던 국제 공항에서 처음 만나 한 팀이 되어 시드니로 갔다. 한 여자는 혼자 잤고 두 남자는 둘이 잤다. 어느 날 가이드의 안내로 이름이 기억 나지 않는 어느 바닷가엘 갔는데 와-그 바다의 모랫벌엔 흰 조개가 수두룩했다. 밀려갔다 밀려오는 파도에 흰 조개만 묻어 오는 듯 했다. 가이드가 조개 2개를 서로 부딪쳐 깨서 조갯살을 먹어 보라 했다. 잡아갈 수는 없으나 거기에선 실컷 먹어도 된단다. 싱싱한 조개를 얼마나 깨서 먹었는지. 가까이만 산다면 날마다 휴대용 가스 레인지를 가지고 가서 조개를 주워 조개탕이나 시원하게 끓여 먹고 살았으면 좋겠네, 싶었다. 모래 위에 마냥 흰 조개가 쑥쑥 박혀 있는 게 보였으니.




사흘째 되던 날이었나. 혼자 자던 앳된 여자에게 중년 남자가 찾아왔다. 그러니까 앳된 여자는 출장 나온 남자를 만나러 왔던 것이다. 앳된 여자는 남자를 삼촌이라고 소개했다. 그때부터 그저 적당히 간격을 유지하며 그냥저냥 지내던 우리들 간에 얼마 간의 실랑이가 생기기 시작했다. 여자의 삼촌은 가이드 삯을 내지 못하겠다고 했고, 따로 돈을 내서 타기로 한 배도 타지 못하겠다고 했으며, 여자가 오팔인가 하는 보석을 오래 들여다보니 다른 곳에 가면 더 좋은 것이 있다고 하다가 말다툼을 벌이기도 했다. 어느 밤에 바닷가재 얘기가 나왔다. 두 남자와 우리는 바닷가재 먹으러 가는 일에 찬성했다. 특히 내가 더 찬성했다. 앳된 여자와 합류한 남자가 우리가 말한 식당으로 바닷가재 먹으러 가는 것을 반대했다. 어시장에 가면 싼값에 맛있게 먹을 수 있다며 거기로 가자고 했다. 그래서 앳된 여자와 중년 남자는 남고 두 남자와 우리는 바닷가재 전문점으로 갔다. 수족관에 3kg 4kg 심지어는 10kg까지 나가는 살아 있는 바닷가재가 납작납작 엎드리거나 엉켜 있었다. 일본인들이 주고객인 식당이었는데, 우리도 일본 사람인 줄 알았는지 종업원들이 자꾸만 일본말을 걸어 왔다. 수족관에 가서 우리가 먹을 커다란 바닷가재를 고르며 각양각색 바닷가재 구경도 했다.


요리는 순서대로 나왔는데 맨 처음엔 회가 나왔다. 바닷가재회? 나는 모험심이 별로 없는 사람이어서 처음 본 음식은 입에 잘 대지 않는 사람인데도 처음 보는 바닷가재회에 완전 매혹되었다. 방금 회를 뜬 싱싱한 바닷가재 살이 바닷가재 껍질에 깨끗하게 담겨 나왔는데, 한 점 한 점 집어 먹을 때마다 아삭아삭 씹히는 맛이라니. 뒤끝에 물리는 바닷가재 살의 달콤함에 혀가 얼마나 즐거워하는지. 회를 뜨고 남은 몸통은 양념해서 쪄주고, 살이 통통히 밴 다리는 구워주었는데, 흰 살이 참말로 고소했다. 두 남자는 우리를 엿보고 우리는 두 남자를 엿보며 바닷가재 요리를 실컷 먹었다. 두 시간이 걸렸다.


그 날 밤이었을 것이다.


호텔 로비에 혼자 내려온 앳된 여자의 중년 남자가 누가 묻지도 않았는데 우리에게 고백을 했다. 앳된 여자의 삼촌이 아니라 애인이란다. 예전에는 돈이 많았는데 지금은 일이 잘 안 풀려 돈이 없단다. 앳된 여자의 비행기 삯을 대기도 힘겨웠단다. 그래서 배도 못 태워 주고 바닷가재도 못 사주고 오팔도 사주지 못했단다. 부인한테 미안하단다.


* 신경숙 음식 이야기는 격주로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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