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종길 자연 다큐/해양 생태계 여행④]
'두 얼굴의 미녀'
  • 제종길(한국해양연구원 책임연구원) ()
  • 승인 2001.08.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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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얼굴의 미녀' 갯민숭달팽이/
외모 하려한데 냄새는 고약…
춤추듯 먹이 사냥해 '스페인 댄서' 별명도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색깔을 가진 생물은 무엇일까? 아마 사람들 대다수가 나비라고 답할 것이다. 사람이 표현해 낼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나비의 색상과 문양은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나비는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다. 특히 색과 무늬를 만들어 내는 디자이너들에게는 최고의 '선생'이었으리라.




바다에도 나비와 겨눌 동물이 있다. 바로 갯민숭달팽이류이다. 특이한 색상과 생김새에 곱고 화려한 몸 장식까지 곁들인 이 예쁜 연체동물은 수중 사진 작가에게는 최고의 '모델'이다. 수많은 다이버를 물 속으로 유혹한 '미인' 가운데 하나이다.


갯민숭달팽이류의 영어 이름은 누디브랜크스(nudibranchs)로, '노출된 아가미를 가진 동물'이라는 의미이다. 갯민숭달팽이라는 말을 풀어서 설명하면 '껍데기가 없는 바다 달팽이'이다. 종류마다 생김새가 약간씩 다르지만, 몸은 대체로 길고 납작하다. 머리 쪽에는 더듬이가 한 쌍 있고, 몸의 뒤편에는 꽃다발처럼 생긴 돌기더미가 있다. 이 돌기더미가 아가미 기능을 한다. 꽃다발로 호흡하다가 이 돌기의 일부를 없애면 피부로 대신 호흡한다.


아름다움 속에 독을 감춘 생물이 많은 것처럼 갯민숭달팽이류도 '위험한 동물'이다. 사람에게 해를 입힐 정도로 독이나 '비수'를 품고 있지 않지만, 나름의 강력한 무기를 소유하고 있다. 움직임이 둔하고 껍데기도 딱딱하지 않은 이 생물을 다른 포식자들이 건드리지 않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어떤 종은 불쾌할 정도로 강한 냄새를 풍겨 다른 포식자가 먹을 수 없는 종류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또 다른 종은 고약한 냄새 대신 색을 통해 '내 몸을 먹어봐야 당신에겐 영양가도 없고 입맛만 버릴 것이다'라는 메시지를 보낸다. 일종의 화학적 방어다. 이런 사실을 잘 모르는 물고기가 몇 번 입질을 시도하다 '에이 재수 없어'하는 표정으로 달아나는 모습을 다이버들은 가끔 목격한다. 해양 생물 모두가 인간처럼 다른 생물체의 색깔을 정확하게 인지하는 것은 아니다. 대개는 무늬와 명암으로 먹을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한다.


갯민숭달팽이류는 말미잘·산호·히드라 등 주로 독을 가진 자포동물을 먹는다. 아직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갯민숭달팽이류는 먹이가 가진 독을 화학적으로 재활용해 유력한 '무기'로 만든다고 연구자들은 추정한다. 가녀린 몸매를 지녔지만, 무서운 독을 가진 상대를 무력화하여 먹이로 삼는 재간을 가진 것이다.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쏘는' 달팽이


갯민숭달팽이는 다른 고둥류와 마찬가지로 배 근육으로 기어 이동한다. 몸을 길게 늘어뜨려 몸을 오므렸다 폈다 하면서 이동하는 종도 있다. 일부 종은 이 배 부분을 넓게 확장해 날개 모양으로 펼칠 수 있다. 날개를 이용해 나풀나풀 나비가 날갯짓을 하듯 수중을 헤엄치기도 한다. '스페인 댄서'라는 별명을 가진 갯민숭달팽이는 일류 댄서 못지 않게 우아하게 수중을 날다가 적을 공격하기도 한다. 그야말로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쏘는 것이다. 이들의 먹이인 자포생물은 조금만 '틈'을 보여도 몸을 오므려 숨기 때문이다.


제주도 남쪽 바다에서는 늦봄부터 초여름까지 갯민숭달팽이류와 그들의 다음 세대를 키울 알주머니를 흔히 볼 수 있다. 바위나 해조류 위에 산란하는데, 알주머니 모양은 젤리로 만든 리본처럼 똬리를 틀고 있다. 흰색·노란색·오렌지색 등 알주머니 색깔도 화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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