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동해안 도보 종주' 참가 여행기
  • 오윤현 기자 (noma@e-sisa.co.kr)
  • 승인 2001.08.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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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벅뚜벅 걸으니 "나는 자연인이다"/
고독·명상·고통에 빠져 '만물과 대화하는 행복' 쏠쏠


전기 기술자인 신현성씨(27)는 도보 여행을 끔찍이 즐긴다. 군 복무 때 휴가를 나와서 배낭을 짊어진 적이 있을 정도이다. 요즘도 그는 여름만 되면 배낭을 메고 동해안 쪽으로 발길을 옮긴다. 신씨는 "나 자신이 미덥지 못할 때 떠나면, 용기와 자신감을 얻는다"라고 말했다.




도보 여행자들은 신씨와 비슷한 주장을 펼친다. 그들은 도보 여행을 '고독에 잠기고 명상에 빠지는 시간'이라고 말한다. 길이 끝없이 자신을 돌아보게 만든다는 것이다. 좀더 낭만적인 사람들은 '낯선 사람에게, 동물에게, 꽃에게, 구름에게 인사할 수 있어 길 위를 걷는다'고 말한다.


20박21일 동안 '부산-설악산 대청봉 종주'를 하는 캠프4(산악회) 회원들의 도보 행렬에 끼어 보았다. 도보 여행의 무엇이 사람을 끌어들이는지 궁금했고, 속도와 편안함을 숭배하는 도시인들이 도보 여행을 할 수 있을지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그 차림으로 갈 거에요?"


무거운 눈꺼풀을 간신히 들어올리고 시계를 본다. 새벽 4시53분. 대원들을 태운 차가 길게 흘러내린 산모롱이를 돌자, 산비탈에 고층 아파트들이 빼곡이 들어서 있는 부산 시내가 나타났다. 도심은 뿌연 안개에 휩싸여 마치 홑이불을 뒤집어쓴 채 뒤척거리는 노인 같았다.


부산으로 내려가는 길은 고되었다. 밤 11시에 서울역 광장을 출발해 밤새 달려온 것이다. 서울역 광장에서는 캠프4의 '제10회 하계 동해안 도보 종주' 출정식이 있었다. 회원 30여 명이 나와 도보 종주에 나서는 대원 5명을 격려했다. 그 자리에서 함께 걷게 될 신현성·이 준(31)·전영란(25)·이명민(25)·이재옥(25) 씨와 인사를 나누었다.


가냘퍼 보이는 여성 대원들을 보니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절로 들었다. 그때 캠프4 고참 회원이 내게 "그 차림으로 갈 거에요?" 하고 물었다. 중등산화에 무릎까지 오는 등산 양말, 긴 면바지에 티셔츠 차림. 구색을 갖춘 것 같아 고개를 끄덕이자 그가 걱정스럽게 말한다. "힘들 텐데요…." 겁먹은 눈으로 다른 대원들 발을 내려다보니 모두 샌들을 신었다. 잠시 갈등. 하지만 그냥 부딪쳐 보기로 했다. 여차하면 해수욕장에서 샌들을 사 신으면 되니까.


첫날 목표는 광안리에서 월내까지이다. 광안리 해변에서 해운대까지 걸린 시간은 한 시간. 10리쯤 걸은 셈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보통 사람은 한 시간에 4∼5km를 걷는다. 그보다 빨리 걸으면 발에 무리가 온다. 등이 젖지 않은 것을 보니 무리한 것 같지는 않았다.


10분간 휴식을 끝내고 북동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오른쪽으로 펼쳐진 부산 앞바다가 짙푸르다. 완만하지만 지루한 달맞이고개를 넘으며 길섶에 핀 파란 닭의장풀꽃, 노란 달맞이꽃, 흰 개망초꽃, 보랏빛 나팔꽃, 분홍 메꽃에게 눈인사를 건넸다. 자연의 리듬과 내 몸이 일치하는 느낌이다. 그러나 그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안개와 노닥거리던 태양이 나타나자 대원들 사이에 오가던 대화가 뚝 끊겼다. 걸은 지 두 시간이 넘자 몸에도 슬슬 신호가 오기 시작했다. 송정해수욕장으로 가는 고갯길을 내려갈 때는 장딴지가 욱신거렸다. 곧이어 발목이 시큰거렸다. 결국 50분을 걷지 못하고 송정해수욕장 근처 도로에 주저앉고 말았다. 배낭을 멘 채 헉헉거리고 있자, 현성씨가 충고했다. "쉴 때는 배낭·신발·양말 훌훌 벗고 제대로 쉬세요."


달리는 차들이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몇몇 젊은 운전자들은 일부러 차를 바짝 붙여 여행자들을 깜짝깜짝 놀라게 했다. 도보 여행이 더위와의 싸움이 아니라 차들과의 싸움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런데 이상했다. 분명 전문가들은 마주 오는 차를 바라보고 걸으라고 했는데, 왜 이 팀은 위험하게 차를 등지고 걷는 걸까. 대장인 현성씨에게 이유를 물으려다 그만두었다. 간섭하지 않기로 했으므로 불안한 눈으로 가끔 뒤를 돌아보며 걸을 뿐이다.


도보 여행 수칙 가운데 물과 텐트 칠 자리를 찾기 어려우면 관공서나 학교를 이용하라는 내용이 있다. 기장에서 그 수칙을 충실히 지켰다. 기장우체국 뒤뜰에서 점심을 지어 먹은 것이다. 다행히 일직 근무자인 우체국 여직원은 마음이 고왔다. 낮잠까지 자고 출발하려는데 여직원이 밀크 캐러멜 한 봉지를 내민다. 남아 있는 인심을 확인한 덕일까, 모두 얼굴이 환해졌다.


한 발짝씩 내밀 때마다 떠오르는 '잊었던 것들'




일광해수욕장 근처를 지나면서 또다시 완전히 녹초가 되었다. 그 순간에는 걷기가 골격을 강화하고, 근육을 발달시키고, 원기를 북돋고, 스트레스를 줄여주고, 몸을 유연하게 해준다는 전문가들의 말이 다 거짓말 같았다. 이제는 몸이 아니라 정신과의 싸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앞사람의 발끝만 보고 고집스럽게 걸었다. 그때 누군가 옆에서 자꾸 따라 걷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림자였다. 오랜만에 보는 내 그림자였다. 잠시 마음이 흔들렸다. 잊고 있는 것이 어디 그림자뿐일까. 오른발 왼발 내밀 때마다 잊혔던 것들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임낭해수욕장 근처를 지날 때 차들이 경적을 울리며 여행자들을 격려했다. 해안으로 피서 온 사람들이 손을 흔들고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웠다. 부채를 주겠다고 내미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갈 길이 바빠 제대로 응대를 못했다. 날은 저물고 야영지로 삼을 고리 원자력발전소 근처에 있는 월내해수욕장이 저 앞에 있었다.


문제가 생겼다. 월내에 해수욕장이 없었다. 지도에는 분명히 있는데, 마을 사람들은 원래부터 그곳에 해수욕장은 없었다고 말했다. 텐트 칠 공간은 있지만, 샤워 시설과 화장실이 문제였다. 누군가 말했다. "임낭으로 되돌아갑시다." 3백여 m만 가면 되므로 그리 힘든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현성씨는 절대 뒤로 갈 수 없다고 버텼다.


현성씨가 면사무소·학교·교회 위치를 파악해 바쁘게 움직이더니 희소식을 가지고 나타났다. 월내제일교회에서 수도 시설을 이용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다는 것이다. 교회 앞마당에 텐트 2개를 치고 분주하게 술을 곁들인 저녁 식사를 했다. 현성씨는 "오늘같이 길을 잘못 들어서면 도보 여행이 더 즐겁다"라고 말했다. 1구간(부산-정자)만 걷게 될 명민씨(회사원)는 산행과 도보 여행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왕초보였다. 그는 자기가 힘든 일을 해낼 수 있을까 확인하려고 휴가 기간을 도보 여행에 투자했다고 말했다.


카드 회사에 다니는 이재옥씨와 7월 말부터 새 회사에 다니게 된다는 전영란씨는 경험자였다. 영란씨는 "자연을 더 많이 보고 느낄 수 있어 도보 여행을 좋아한다"라고 말했다. 자동차 정비사인 이 준씨는 직장을 옮기면서 생긴 휴식기를 이용해 대청봉까지 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도보 여행에 나선 이유를 "몇년 뒤 독립할 예정인데, 나 혼자 삶을 계획할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다"라고 말했다.


불판 위 고기처럼 뒤척이다 날 새고




이틀째. 해가 뜨거워지기 전에 더 많이 걷기 위해 아침 일찍 월내를 떠났다. 영란씨는 걷는 맛을 알았는지 가끔 꽃밭의 강아지처럼 깡충거렸다. 벗은 양말을 들고 춤을 추기도 했다. 하지만 온산공단을 통과하면서 흥겨움은 금세 깨지고 말았다. 악취와 지루함으로 몸이 축축 늘어졌기 때문이다. 몸이 힘들어지자 신기하게도 마음속 고통이 되살아났다. 상처받은 자존심, 억눌린 욕망, 숨겨진 분노 따위가 떠올랐다.


울산 외곽 청량면에서 잠자리를 구했다. 인심이 공기만큼 매웠다. 청량중학교에서는 외부인에게 운동장을 개방할 수 없다고 했다. 식당·민가를 찾아갔지만 모두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텐트 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결국 대원들이 텐트를 친 곳은 길가에 있는 용암주유소 옥상이었다. 주유소 대표 곽현자씨는 '요즘 젊은이 같지 않다'며 술과 김치까지 올려보내 여행자들을 감동시켰다.


식사를 한 뒤 '물집 사냥'이 시작되었다. 발바닥 전체에 의지해 걷는 인간만이 물집을 얻는다. 대원 4명의 발바닥에 촛농 같은 물집이 잡혔다. 현성씨가 바늘에 실을 꿰어 물집을 관통시켰다. 그리고 실 끝을 잘라 실을 물집 안에 그대로 두었다. "이렇게 해야 물집이 커지지 않고 바짝 마릅니다." 현성씨의 말이다.


가져온 책 두 권과 여름철 별자리 그림을 한 번도 꺼내보지 못했음을 아쉬워하며 눈을 붙였다. 그러나 한숨도 잘 수가 없었다. 뙤약볕에 달구어진 옥상은 메주 뜨는 시골집 아랫목 같았다. 간신히 잠이 들라치면 질주하는 차 소리가 잠을 깨웠다. 결국 밤새 불판 위 고기처럼 뒤척이다 날이 새고 말았다.




사흘째. 청량면에서 울산으로 들어가는 길은 최악이었다. 과속 차량, 매캐한 공기, 있으나마나한 인도는 여행자들의 생명을 위협했다. 물어물어 세 시간 만에 간신히 도착한 울산역은 파라다이스였다. 에어컨 바람이 팡팡 나오고, 화장실이 깨끗하고, 식수가 무궁무진했다. 그곳에서 여행자들은 좀 길게 쉬었다. 캠프4 회원들이 왜 그렇게 울산역을 그리워했는지 알 것 같았다.


여행자들은 정자로 넘어가는 산길 초입에 있는 약수터에서 점심을 지어 먹기로 하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도심을 벗어나자 굴곡 많은 산길이 나타났다. 정자로 넘어가는 길. 그런데 약수터에서 기어코 일이 터졌다. 한 대원이 배낭을 부리자마자 어지럼증으로 쓰러졌다. 일사병이었다. 불덩이처럼 몸이 단 그 대원을 누이고 소금물을 먹이고, 몸을 주무르고 난리가 났다. 20여 분 간을 그렇게 애를 쓰자 의식이 오락가락하던 대원이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꽤 오랜 시간 그늘에 누워 쉬었다. 해 저물 무렵 고개를 넘어 정자 해안에 텐트를 쳤다.


일 때문에 서울로 돌아와 의자에 붙박혀 지낸 지 벌써 여러 날이 지났다. 피부는 벗겨지고 입술은 짓물러 터졌다. 그동안 신현성씨와 이 준 씨가 포항을 지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걷는 행복〉을 쓴 프랑스 생물학자 이브 파칼레는 '거저다. 반복되는 쾌락의 위기 외에 다른 부작용은 없다. 그것은 나를 세상 끝으로 인도한다'는 말로 걷기를 찬양했다. 그러나 나는 아직 걷기의 매력을 모르겠다. 2박3일 간의 걷기에서 맛본 것이 행복이었는지 고통이었는지도 불분명하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있다. 누군가 도보 여행을 또 떠나겠느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 한마디 덧붙이겠다. "이번처럼 행군하듯 걷지 않고 느릿느릿 걷겠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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