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가을의 전설' 만끽할 이색 마을 네 곳
  • 글·이용한(시인)/사진·안홍범 ()
  • 승인 2001.10.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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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연인과 가볼 만한 '이색 마을' 네 곳/
찬란한 단풍에서 창연한 고인돌까지
가끔은 자기가 살던 집을 떠날 일이다. 낯선 곳에서 자기 자리를 돌아보면, 자신이 삶을 꾸리다 떠나간 그 빈자리가 어떤 것인지 실감할 수 있다. 온 산에 단풍이 만발하고 있다. 바람도 선선하다. 호젓하게 어디론가 떠나기에 딱 좋은 계절인 것이다. 가족끼리 혹은 연인끼리 완연한 가을의 정취를 즐길 수 있는 이색 마을 네 곳을 소개한다.


■ 장성 영화마을과 백양사


절경에 빠지니 신선이 따로 없고




이맘때 금곡마을(전남 장성군 북일면 문암리)에 들어서면 투닥투닥, 와랑와랑 콩 타작과 벼 타작이 한창이다. 초가 네댓 채와 그 사이를 돌아 나오는 굽이진 골목길, 계단식 논을 보는 듯한 전통 마을과 집터의 모양. 장성에서는 이 마을을 '영화마을'이라고 부른다. 1998년에 상영된 〈내 마음의 풍금〉 주요 촬영지가 금곡마을이다. 영화에서 홍연(전도연)이 총각 선생님 수하(이병헌)에게 주려고 앵두를 땄던 집도 온전히 남아 있다.


대부분 흙집이고, 골목과 마을길 그리고 꼬부랑 논두렁이 옛날 그대로여서 몇몇 집에 짚 이엉만 얹으면 그대로 영화 세트장으로 바뀐다. 이런 까닭에 이곳에서 〈태백산맥〉을 찍은 임권택 감독은 "금곡마을은 영화 찍기에 가장 좋은 마을이다"라고 말했다. 금곡마을은 1999년에 영화 〈침향〉과 드라마 〈왕초〉의 촬영지가 되기도 했다.


영화마을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단풍이 아름답기로 소문난 내장사와 백양사가 있다. 백양사 단풍은 주로 애기단풍이어서 때깔이 곱고 모양이 앙증맞다. 단풍 속에 폭 잠긴 백양사는 백제 무왕 때 세워진 가람으로, 그 옛날 스님이 설법할 때 하늘에서 흰 양이 내려와 들었다는 데서 이름이 유래했다. 쌍계루 연못에서 보는 풍경은 이 절의 자랑이다. 쌍계루 앞 연못에 비친 누각과 단풍에 물든 학바위를 한참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지금 내가 학바위에 올라와 있는지, 연못 아래에 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무아지경에 빠진다.


여행 정보


서울에서 고속 버스와 열차가 수시로 다닌다. 4시간 소요. 광주에서 장성과 백양사까지 가는 버스도 자주 있다. 승용차로 영화마을에 가려면 호남고속도로 백양사 인터체인지로 빠져나간다. 그리고 장성댐 쪽으로 내려가 898번 지방도를 타고 고창 쪽으로 간다. 북일면 문암리에 이르러 영화마을 간판이 걸려 있는 왼편 도로를 타고 올라가면 된다. 백양사는 인터체인지에서 1번 국도를 타고 내장산 국립공원 쪽으로 가면 나온다. 문의 : 장성군청(061-393-1983).




■ 고창 선운사와 고인돌 마을


동백꽃보다 아름다운 고인돌


흔히 고창 하면 선운사를 떠올린다. 고창이 고향인 미당 서정주는 일찍이 선운사를 동백꽃 가람으로 만들어 버렸지만, 단풍으로 물든 선운사의 가을 풍경도 동백꽃 피는 봄 풍경 못지 않다. 백양사처럼 가람 들머리와 주변이 애기단풍 숲을 이루고 있어 그 고운 때깔에 눈이 부시다. 가람 들머리를 따라 펼쳐진 계곡에 물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떨어져 쌓인 애기단풍잎을 보는 것도 또 다른 즐거움이다.


선운사는 백제 위덕왕 때 세워졌다고 한다. 번성하던 때에는 암자를 90여 개 거느린 대가람이었으나, 지금은 도솔암을 비롯한 네 암자만 딸려 있다. 선운사에 가면 도솔암을 구경해야 하는데, 도솔암에서 바위 면에 새겨진 거대한 마애불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보물로 지정된 이 마애불은 생김새가 토속적인 데다 엷은 미소를 띠고 있어 보면 볼수록 신비롭다.
선운사와 고창읍 중간쯤에 있는 고인돌 무리도 꼭 보아야 한다. 고창의 고인돌 무리는 1999년 2월 세계문화유산으로 공식 등록되었다. 고창에는 고인돌이 2천여 개 흩어져 있다. 그 가운데 4백47기가 고창읍 죽림리와 도산리, 아산면 상갑리 주변에 몰려 있다.




이 지역은 고인돌 공원으로 조성되었는데, 모두 여섯 코스로 되어 있다. 절정은 3코스. 죽림리에 자리 잡은 이 코스에서는 거대한 고인돌을 1백28기 볼 수 있다. 6코스인 도산리에서는 북방식 고인돌을 만날 수 있는데, 그 모양이 우람하고 멋있어 고창 고인돌의 상징이나 다름없다.


코스에는 들어 있지 않지만 아산면 운곡리에 가면 동양에서 가장 큰 고인돌을 만날 수 있다. 동양 최대의 이 고인돌은 무게가 300t이 넘고 상석의 높이가 5m, 가로 길이가 7m나 된다. 고고학자들에 따르면, 세계에는 고인돌이 모두 6만여 기 분포하는데, 그 가운데 절반 이상이 한반도에 밀집해 있다.


여행 정보


서울에서 고창까지는 30분 간격으로 고속 버스가 있다. 고창에서 선운사까지는 하루 여덟 번 다니는 직행 버스를 이용한다. 승용차로는 호남고속도로에서 정읍 나들목으로 나가 22번 국도를 타면 선운사가 나오고, 23번 국도를 타면 고창에 닿는다. 고인돌 공원은 고창 읍내에서 733번 지방도를 타고 선운사 쪽으로 가면 된다. 문의 : 고창군청(063-560-2225), 고인돌안내소(063-560-2793).


■ 구례 산수유 마을


'가을 산수유' 본 적 있나요




흔히 산수유 하면 봄에 피는 노란 꽃을 떠올린다. 노란 봄꽃도 아름답지만 나뭇가지를 온통 붉은 색으로 물들이는 가을이야말로 산수유의 아름다움이 절정을 이루는 계절이다. 산수유는 모름지기 구례 것을 치는데, 구례에서도 산동면 위안리에서 나는 것을 으뜸으로 친다. 위안리에서만 전국 산수유의 30% 이상을 생산하고 있으며, 산동면 전체로 보면 전국 생산량의 절반 이상을 공급한다.


산동이라는 땅 이름도 본래 산수유에서 말미암았다. 옛날 중국 산둥성의 한 처녀가 지리산에 시집 오면서 산수유 한 그루를 가져와 심은 것이 번성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실제 구례의 산동과 중국의 산둥은 모두 산수유 주산지라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산수유는 살얼음이 녹는 3월에 꽃을 피워 10월에 열매가 빨갛게 물드는데, 붉은 열매는 보통 11월부터 따기 시작한다. 열매의 성질은 따뜻하고 맛은 시큼털털하다. 한방이나 민간에서는 보신과 치료에 두루 쓰인다. 〈동의보감〉을 비롯한 옛 의학서에 따르면, 산수유는 신장과 방광, 성인병과 부인병에 좋다. 따라서 민간에서는 오줌싸개 아이들과 요실금 노인, 월경불순이나 조루·발기부전 증상이 있는 성인 남녀에게 두루 유용하게 썼다.


그러나 산수유를 차나 약재로 쓸 때는 반드시 씨를 발라내야 한다. 그런데 씨 발라내는 일이 여간 번거롭지 않다. 작은 열매를 하나하나 입으로 깨물어 씨앗을 발라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옛날 산동에서는 앞니가 발갛게 물든 채 시집 가는 처녀가 한둘이 아니었다고 한다. 봄이면 노란 꽃으로, 가을이면 온통 붉은 열매로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하고, 열매는 약재나 차로 인체에 유용하니 산수유는 '천상의 선물'이라 할 만하다.


여행 정보


호남고속도로에서 전주로 나가 남원 쪽으로 가는 19번 국도를 탄다. 한참 가다 보면 왼편으로 지리산온천으로 들어가는 861번 지방도로가 나오는데, 그 길을 따라 직진하면 산동 상위마을에 닿는다. 서울에서는 남부터미널에 버스가 있다. 문의 : 구례군청(061-782-5301).




■ 신안 도초도


고슴도치 닮은 '보물섬'


도초도는 목포 북항에서 뱃길로 두 시간쯤 가야 닿는 섬이다. 생소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이 섬은 민속 문화의 보고이다. 민속학자들에게 초미의 관심사인 초분(草墳)과 민속 자료로 지정되지 않은 초가가 가장 많이 남아 있다. 모양이 고슴도치처럼 생겼다 하여 도초라고 불리는 이 섬은, 남쪽으로는 하의도, 북쪽으로는 비금도와 이웃해 있고, 마을을 모두 11개 거느리고 있다.


도초도의 여러 마을 가운데 초분을 만날 수 있는 마을은 고란리·수다리·외남상리로, 각각 1기씩 만날 수 있다. 대체로 도초도의 초분은 높이가 약 1∼1.5m, 길이가 2∼2.5m, 너비가 1m가 조금 넘는다. 본래 초분은 주검을 매장하기 전에 목관에 넣고, 일정한 장소에 짚으로 이엉을 덮어 비바람을 가린 풍장식(風葬式) 무덤을 일컫는다. 외부인이 볼 때는 비위생적인 매장 형태이지만, 신안군을 비롯한 도서 지역에서 초분을 하는 것은 조상에 대한 가장 극진한 효성이며 예의이다.


도초도에서 초분만큼 관심을 끄는 것은 초가이다. 도초도에서도 초가가 가장 많이 남아 있는 마을은 고란리와 한발·엄목리 등이며, 고란리가 초가의 원형을 가장 온전하게 보존했다. 헛간채와 뒷간, 그리고 빈집이 된 초가까지 합치면 도초도에서는 무려 20채 이상의 초가를 만날 수 있다.


실로 무수한 옛 세간과 농기구와도 만날 수 있다. 각종 씨앗을 담는 바가지당글개라 부르는 고무래, 싸릿대나 대나무로 엮은 채반, 그리고 당글개(고무래)·또가리(똬리)·곰베·절굿공이·시누대 다래끼·송쿠리(삼태기)·덕석과 멍석·두트레방석·바작(짚 발채)·멍에·풍로·나무 달구지·돌절구는 이제 아무 곳에서나 볼 수 있는 농기구가 아니다. 이밖에 마름 엮을 볏짚을 덮은 짚주저리와 볏가리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여행 정보


목포 삼학도항이나 북항에서 배를 타고 들어간다. 계절에 따라 뱃시간이 다르다. 보통 아침 7시에 첫배가 들어가고, 오후 5시쯤 막배가 나온다. 차를 갖고 갈 경우 차도선을 이용한다. 삼학도에서 뜨는 차도선은 요금(승용차)이 편도 3만5천원 정도 한다. 북항에서 농협배를 이용하면 편도 2만5천원만 내면 된다. 삼학도에서는 하루 세 번 쾌속선과 차도선이 운항하며, 북항에서도 하루 세 번 농협배가 운항한다.




■ 별미 산책


고소한 바지락죽의 '비밀'


고창 바지락은 생명력이 강하고, 영양이 풍부하기로 유명하다. 한반도에서 가장 너른 개펄에서 자라는 데다, 심한 간만의 차이를 견디느라 실한 바지락이 되는 것이다. 간장 질환과 빈혈 예방에 좋다고 알려진 바지락은 된장국 외에 전골·죽·회무침으로 먹을 수 있다.


고창에서 바지락 요리를 제대로 맛볼 수 있는 곳은 해리면 동호리에 있는 호수가든(061-563-5694)이다. 주인에 따르면, 이곳 바지락죽(사진)의 독특한 맛은 따로 넣는 녹두 덕이다. 녹두가 고소한 맛을 더해 주고, 해독 작용까지 한다는 것이다. 전골은 청양고추·다시마·무를 넣고 끓여 얼큰하고 시원하다.




■ 외남상리 장승과 고란리 장승


도초도에는 돌장승이 2기 있다. 외남상리와 고란리에 있는 장승이 그것. 외남상리에 있는 장승은 높이가 2m가 넘고, 머리에 커다란 갓을 쓰고 있는 것 같다(사진). 1940년대에 세웠다고 전해 오는데, 옛날 마을 앞 발매리에 있는 진가바위 때문에 운세가 꺾여 마을이 흥하지 못할 것이라는 어느 도인의 말을 듣고 세웠다고 한다. 고란리에 있는 석장승은 당집의 기운을 죽이기 위해 1938년에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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