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금으로 임원들에게 6천만원짜리 시계 선물”
담철곤 회장 측근들, 비자금 수사·재판에서 진술
6000만원짜리 파텍 필립 시계에 2000만원짜리 로마네 콩티 와인. ‘스포츠토토 비자금’ 사건 수사와 재판 과정에 등장하는 이른바 최고가 명품들이다. 일반 서민은 입이 쩍 벌어질 정도로 비싼 가격이지만, 스포츠토토를 운영해온 오리온그룹의 담철곤 회장과 이화경 부회장은 비자금으로 수십억 원어치를 구입해 사용했다는 진술이 나왔다. 배임·횡령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조경민 전 오리온그룹 전략담당 사장 측은 담 회장과 이 부회장이 명품 시계를 계열사 사장 등에게 선물했고, 최고급 와인은 유력 인사 등과 가진 파티 자리에 올랐다고 밝혔다.
비자금 조성 관련자로 지목된 전·현직 오리온그룹 임직원들과 주변 인물들의 진술 및 증언 등에 따르면, 담 회장과 이 부회장 부부는 고가의 시계와 와인, 그리고 미술품을 수시로 사들였다. 명품 시계를 선물하는 것은 일종의 회사 문화로 자리 잡았다고 한다. 부장으로 진급하는 직원에게는 조경민 전 사장이 롤렉스 시계를 선물했다. 서울의 한 백화점 시계 매장 관계자는 선물을 받은 직원이 매장으로 찾아와 팔목 밴드 조절을 하고 간 적도 있다고 증언했다.
“와인 수천만 원짜리 포함 10억원 이상 구매”
와인 구입에 들어간 비용도 시계 못지않다. 조 전 사장은 비자금으로 구입한 와인의 액수가 12억~13억원가량 된다고 진술했다. 이는 담 회장도 아는 내용이라고 했다. 조 전 사장 측은 와인이 조 전 사장의 것이 아니라 오너의 것이었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일절 손댈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현재 와인을 보관하고 있는 ㅅ와인 관계자들은 “담 회장이 와인을 구입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진술했지만, ㅅ와인은 담 회장 명의로 와인 리스트를 작성했다는 것이다. 조 전 사장의 부탁에 의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ㅅ와인 측이 로마네 콩티라는 최고급 와인의 소유자가 담 회장이라는 사실을 사전에 알고 있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담 회장은 평소 와인 마니아로 유명하다고 알려졌다. 오리온그룹 계열사 중 하나였던 고급 중식 레스토랑 ‘미스터차우’가 영업을 할 당시 건물 3층에 와인바를 만들어 와인냉장고에 고급 와인들을 보관하면서 자주 꺼내 마셨다는 게 조 전 사장 측 주장이다. 여기서 보관하던 와인들을 ㅅ와인에 옮긴 것은 이 레스토랑을 매각하면서 보관 창고가 마땅치 않아서였다고 한다.
비자금을 실질적으로 관리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김 아무개 스포츠토토 부장의 진술도 이와 비슷하다. 김 부장은 와인을 구입한 리스트를 검찰에 제출하면서 소유주와 관련해 “예전에 오리온그룹 계열사였던 베니건스 매장의 와인냉장고에 보관돼 있던 것을 담 회장이 확인했기 때문에 담 회장의 소유라고 본다”고 진술했다.
이렇게 보관해온 와인은 담 회장이 직원들과 파티를 열거나 외부 인사들을 만났을 때 소비됐다고 한다. 이화경 부회장도 모임을 가진 적이 있다고 한다. 조 전 사장 측은 오리온그룹이 경기도 양평에 있는 회사 수련원 근처에 별도의 갤러리를 두고 그 지하에 와인 창고를 만들어 ㅅ와인에 보관한 와인들을 옮기려고 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로마네 콩티 등 고급 와인도 경기도 양평의 와인 창고로 옮길 예정이었지만 재판이 진행되면서 옮기지 못했다는 것이다.
미술품의 경우 이미 알려진 프란츠 클라인 등 유명 화가의 그림뿐 아니라 3000만~1억원에 이르는 도자기 등도 갤러리 서미에서 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로 이 부회장이 작품을 선택하면 조 전 사장이 결제를 하는 식이었다고 한다. 조 전 사장은 미술품 이외에 가구·액세서리 등을 구입하는 데 들어간 비용도 30억~40억원가량 된다고 진술했다. 여기에는 이 부회장의 사무실 인테리어를 하면서 구입한 가구 비용 6억~7억원도 포함돼 있다고 한다.
“양평 명달리 땅 실소유주는 이화경” 조경민 전 사장은 비자금으로 구입한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 명달리 토지의 실소유주가 이화경 부회장이라고 주장했다. 해당 부동산의 등기부등본에 따르면 642㎡(약 194평) 규모의 이 토지는 2007년 12월11일 조 전 사장이 매입한 것으로 돼 있다. 이듬해 1월30일 채권최고액 1억8000만원의 근저당권이 설정됐는데 채무자 역시 조 전 사장이다. 하지만 조 전 사장은 자신이 사용할 용도로 이 토지를 구입한 것이 아니라고 밝혔다. 조 전 사장 측에 따르면 이 토지 위에 건설될 주택설계를 담당한 건축사사무소의 유 아무개 소장이 작성한 사실관계확인서에는 설계 진행과 관련한 회의를 이 부회장이 주관했고, 이 회의는 진행 과정을 이 부회장에게 보고하는 자리였다고 돼 있다. 이후 이 부회장의 요청으로 원안에서 한옥을 포함한 설계안으로 변경했다는 내용도 나와 있다. 실소유주가 이 부회장이라면 구입 대금도 이 부회장을 위한 용도로 사용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