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 ] 대통령을 향한 영향력 / 청와대 ‘왕실장’ 파워 더 세졌다

김기춘 실장, 작년 이어 1위…김무성, 지목률 대폭 상승하며 2위

2014-09-02     조해수 기자

역시 ‘왕실장’이었다. 시사저널의 ‘2014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 조사에서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꼽혔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압도적인 지목률로 1위를 차지했다. 허태열 전 비서실장에 이어 2013년 8월 초 청와대에 입성한 김 실장은 지난해에 49.3%의 지목률을 보였는데, 올해는 64.1%를 기록하며 경쟁자들을 가뿐하게 따돌렸다.

김 실장은 지난해 말부터 사퇴설에 시달렸다. 특히 올해 4월 세월호 참사가 터진 데 이어, 안대희·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가 연이어 낙마하면서 청와대 인사위원장을 겸하고 있는 김 실장의 사퇴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정치권에서 연일 터져 나왔다. 최근에는 김 실장 후임으로 현경대 민주평통 수석부의장, 권철현 전 주일 대사, 권영세 주중 대사, 안병훈 전 조선일보 부사장, 김진선 전 강원도지사 등의 이름이 구체적으로 거론되기도 했다.  

그러나 청와대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만큼 김 실장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믿음이 크다는 얘기다. 한 여권 관계자는 “청와대로서는 지금 당장 김 실장을 대신할 만한 카드가 없을 것이다. 또한 7·30 재보선에서 우리(여당)가 압승하면서 김 실장의 사퇴 얘기는 쏙 들어갔다. ‘무대’(김무성 대표)를 견제하기 위해서라도 김 실장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김 실장과 김 대표의 당·청 관계 주목

김 실장과 달리 박 대통령을 견제할 인물로 분류되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2위에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지목률은 크게 상승했다. 지난해는 10.8%였으나, 올해는 28.4%로 배 이상 높아졌다. 지난해 4·24 재보선을 통해 국회에 재입성한 김 대표는 올해 7월 열린 전당대회를 통해 여당의 수장 자리에 올랐다. 김 대표는 당 대표 출마 당시 “대통령과 여당 당 대표의 회동을 정례화해 주요 현안을 협의하고, 대통령에게 진언하는 역할을 충실히 하겠다”며 ‘대등한 당·청 관계’를 전면에 내세웠다. 황우여 전 대표와 달리 청와대를 향해 쓴소리를 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것이다. 참고로 지난해 황 전 대표는 10.2%로 4위에 그쳤다. 여당 대표의 바뀐 위상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김기춘 실장과 김무성 대표 사이에 긴장 관계도 엿보인다. 김 대표는 총리 후보자 낙마 정국에서 김 실장 책임론을 제기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루게릭병 환자들을 후원하기 위한 사회 캠페인 ‘아이스버킷 챌린지’에 참여해, 김 실장을 다음 참가자로 지목하면서 “(김 실장이) 너무 경직돼 있다. 찬물 맞고 좀 더 유연해지길 바란다”고 말하기도 했다. 김 대표가 향후 어떤 스탠스를 취하느냐에 따라 당·청 관계는 크게 요동칠 것으로 예상된다.

박지만 회장·정윤회씨, 10위권에 이름 올려

‘친박 핵심’으로 불리는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7.6%)과 이정현 새누리당 의원(5.4%)이 3, 4위를 차지하며 지난해에 비해 상승했다. 최 부총리는 ‘실세 부총리’라는 평가에 걸맞게 41조원의 돈을 푸는 양적완화 정책과 규제 완화로 내수활성화를 이끌어 장기 불황을 벗어나겠다는 이른바 ‘초이노믹스’를 추진하고 있다. 지난 7·30 재보선에서 ‘호남발 선거 혁명’을 일으킨 이정현 새누리당 의원은 무대를 청와대에서 당으로 옮겨 박 대통령 호위무사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두 사람은 지난해에는 각각 7위와 6위에 올랐었다. 정홍원 국무총리(5.0%)가 5위, ‘친박 맏형’으로 당권에 도전했다 실패한 서청원 새누리당 의원(4.2%)이 7위에 각각 올랐다.

야당 정치인으로 10위권 내에 이름을 올린 인물로는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전 공동대표(10위, 2.2%)가 유일했다. 안 의원과 함께 7·30 재보선 패배의 책임을 지고 대표직에서 물러난 김한길 전 공동대표는 11위(1.4%), 새정치연합 비대위원장을 맡고 있는 박영선 원내대표는 13위(1.0%)에 그쳤다. 제1야당의 위상이 얼마나 추락했는지를 알 수 있다.

올해 조사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이른바 ‘비선’ 인물이 높은 순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박 대통령의 남동생인 박지만 EG 회장은 4.5%의 지목률로 6위에 올랐다. 박 대통령이 2002년 한국미래연합을 창당했을 당시 비서실장으로 있었던 정윤회씨 역시 3.9%의 지목률로 8위에 이름을 올렸다. 두 사람은 지난해에는 10위권 내에 들지 못했다. 박지원 새정치연합 의원은 박 회장과 정씨, 그리고 이재만 청와대 총무비서관 이름의 끝자를 따서 현 정부의 인사에 영향을 미치는 인물로 ‘만만회’를 지목하기도 했다. 이 비서관은 15위(0.8%)에 올랐다.

박 회장과 정씨는 전문가군 가운데 특히 언론인·정치인 그룹에서 높은 지목률을 보였다. 언론인 그룹에서 정씨와 박 회장은 각각 4위(10.0%), 6위(6.0%)로 나타났다. 정치인 그룹에서는 박 회장이 3위(15.0%), 정씨가 4위(13.0%)에 올랐다.

공식 직함이 없는 두 사람의 등장은 이전 정권인 이명박(MB) 정부와 비교했을 때도 이례적인 일이다. MB 정부의 경우 김윤옥 여사가 10위권에 오른 적이 있을 뿐, 당·정·청에 직함이 없는 비선라인이 등장한 경우는 없었다.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그림자도 여전했다. 박 전 대통령은 3.5%의 지목률로 9위에 이름을 올렸다. 지난해의 경우 박 전 대통령은 3위(10.7%)를 기록했고, 고 육영수 여사 역시 10위(1.8%)를 차지한 바 있다. 육 여사는 올해 22위(0.5%)에 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