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 정권교체마다 반복되는 ‘수사 외풍’…이번엔 잠재울까
경찰수사로 빨간불 들어온 황창규號…통신업계 주요 현안 앞두고 ‘전전긍긍’
황창규 KT 회장이 최근 불법 정치자금 제공 혐의로 경찰에 소환되면서 KT의 경영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주파수 경매와 보편요금제 도입 등 통신업계 주요 현안이 산적해 있는 데다, 내년 5G 상용화를 앞두고 대응전략 마련에 속도를 내야 하는 상황에서 수장이 사정기관의 표적이 됐기 때문이다. 향후 5G를 기반으로 한 자율주행차,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 준비도 본격적으로 하는 상황이어서 KT의 ‘CEO 리스크’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KT의 전임 회장들은 과거 정권교체 시기 때마다 ‘수사 외풍’에 휘둘리면서 불명예 퇴진했다. 황 회장까지 최근 경찰 소환 조사를 받으면서 ‘정권교체-검경수사-CEO 교체’라는 악순환이 또다시 반복될 수 있다는 우려가 KT 내부에서 나오고 있다. KT와 ‘닮은꼴’로 평가받는 포스코그룹 권오준 회장이 4월18일 사임 의사를 밝힌 만큼, 황 회장도 결국 같은 수순을 밟지 않겠냐는 것이다. 권 회장이 사임 의사를 표명한 것은 공교롭게도 황 회장이 20시간의 고강도 경찰조사를 받고 나온 날이었다.
정권교체-검경수사-CEO 교체 악순환
실제로 KT는 민영화된 지 올해로 16년째지만 정권이 바뀔 때마다 홍역을 치러야 했다. 민영화 이후 회사를 이끈 이용경 전 사장이 2005년 임기 만료로 물러난 것을 제외하고는, 연임에 성공한 후임자들이 모두 외풍에 시달리다 불명예 퇴진했다. 2005년 8월 임시주주총회를 통해 회장에 선임된 남중수 전 회장은 2008년 정기주총에서 재선임되면서 연임에 성공했지만,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뒤 납품업체 선정 및 인사청탁 비리 혐의로 압수수색이 시작되면서 사임했다. 이석채 전 회장은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기 직전인 2012년 3월 주주총회에서 연임에 성공했지만, 배임과 비자금 혐의에 대한 검찰수사가 본격화되자 20013년 11월 사임했다.
황 회장도 최근 비선실세 최순실씨의 측근을 임원으로 채용하고, 최씨가 연루된 광고회사에 68억원의 광고를 몰아주는 등 국정농단 사태에 연루돼 논란을 빚었다. 하지만 지난해 3월 경영 성과를 인정받아 연임에 성공했다. 황 회장이 2014년 CEO로 선임된 후 KT는 구조조정 및 서비스 개선을 통해 2년 만에 적자에서 벗어났다. 동시에 KT의 체질을 개선하고, 미래 비전을 제시했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그러나 최근 KT 전·현직 임원들이 국회의원 90여 명에게 총 4억3000만원을 ‘상품권 깡’ 형식으로 불법 후원하는 데 관여한 정황이 사정기관에 포착되면서 사법처리 위기에 몰렸다.
경찰은 KT 본사와 자회사 등을 압수수색하고 관련자들을 차례로 조사해 왔고, 황 회장을 소환해 지시를 내렸거나 보고를 받았는지 여부 등을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당초 4월말 황 회장의 신병처리 방향을 결정할 예정이었지만, 아직까지 이렇다 할 결과물을 내놓지 않고 있다. 때문에 사정기관 일각에서는 “황 회장을 압박할 카드로 경찰수사 내용이 부실한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이석채 전 KT 회장이 최근 재판에서 무죄를 확정받은 점도 황 회장에게 도움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 전 회장은 2014년 4월 131억원대 횡령 및 배임 혐의로 기소됐다. 법원은 지난달 말 이 전 회장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 역시 법원에 상고장을 제출하지 않으면서 형이 확정됐다. “이 전 회장에 대한 수사가 정권교체와 맞물려 퇴진 압력의 일환으로 행해진 ‘KT 흔들기’였다는 점이 입증된 것”이라는 시각이 재계에서 나오고 있다.
그럼에도 시민단체는 황 회장에 대한 비판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약탈경제반대행동은 “KT는 스스로 자체 개혁이 어렵다. KT 대주주들은 황창규 등이 꼬박꼬박 챙겨주는 고배당에 만족하고 있고, 거대 노동조합은 ‘어용노조’로 지목된 지 오래”라며 “역대 정권은 KT를 논공행사에 쓰일 ‘전리품’으로 활용했다. 경찰이 늘 말하는 ‘무관용의 원칙’이 이번에 적용되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KT 새노조의 퇴진 요구도 거세다. 노조는 지난 4월 논평을 내고 “국민기업 CEO라기보다는 정치 로비스트에 가까운 황 회장의 행태가 문제가 돼 온갖 사회적 비판이 쏟아졌지만, 그는 막무가내 버티기 중”이라고 비판했다. 노조는 또 “이로써 국민기업 KT의 이미지는 회복 불가능한 수준으로 추락했고 이는 주가에도 반영되고 있다. 이사회가 황 회장의 거취에 대한 논의에 나서지 않는다면 이는 중대한 직무유기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업계에 따르면, 4월27일 열린 임시이사회와 5월3일 열린 정기이사회에서 황 회장의 거취 문제는 다루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KT 측 “5G사업 매진…리스크 없어”
어떤 결론이 나오든 현재 KT 앞에 놓인 보편요금제 심사와 5G 주파수 경매, 유료방송 점유율 규제 등의 현안을 헤쳐 나가는 데 악재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재계의 평가다. ‘통신 본연의 경쟁력 확보’를 취임 일성으로 내걸면서 5G 전반을 설계하고 주도했던 키맨이 황 회장 본인이라는 점에서 그의 거취가 향후 KT 신사업 전반과 직결될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황 회장은 지난해 재임에 성공하면서 비통신 부문 강화를 목표로 세우고, VR(가상현실)과 미디어플랫폼, 자율주행차, 사물인터넷 부문을 전폭적으로 지원해 성과를 냈다. 내부 임직원들은 업무에 매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황 회장이 진두지휘한 신사업 관련 담당자들이 CEO의 거취에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는 이유다. 특히 KT의 VR 관련 사업은 성과가 본격화되고 있는 사업 중 하나다.
KT 측은 황 회장의 위기에 따른 사업 리스크는 없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KT 관계자는 “2019년 5G 상용화를 위한 네트워크 솔루션을 80% 개발한 상황이다. 3분기 안에 개발을 마치고 테스트를 진행할 계획”이라며 “진행 중인 수사나 CEO의 거취에 대해서는 입장을 밝힐 수 없다. 다만 정권이 바뀐다고 해서 민영기업의 CEO가 바뀐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직원들의 사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한 통신업계 관계자는 “5G 사업은 오래전부터 진행해 왔던 터라 사업 자체에는 큰 영향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며 “다만 주요 현안에 대한 경영전략 수립에 차질을 빚을 수는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