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스트라면 “여자도 군대 가겠다”고 해야 할까

해답 없는 ‘뷔페미니즘’ 논란

2018-06-20     조문희 기자

 

“군대나 갔다 와서 당당하게 주장해라.”

“그냥 남녀평등 가자. 여자도 입대 시키자.”

 

6월9일 서울 혜화동에서 열린 홍대 불법촬영 편파 수사 규탄 시위 관련 기사에 달린 댓글 중 일부다. 이처럼 ‘페미니즘’ 이슈엔 “여자도 군대 가라”는 반응이 뒤따른다. (관련 기사 ‘강남역 살인 사건’ 2년, 여전히 ‘여자’ ‘남자’ 싸움) 페미니스트들이 양성평등은 외치면서 여성의 군 복무를 반대하는 건 ‘뷔페미니즘(뷔페+페미니즘, 뷔페에서 원하는 음식만 골라 먹듯 일부 페미니스트들이 자신에게 득 될 만한 것은 요구하면서 정작 불리해질 만한 사안에는 침묵·회피하는 행태)’이라는 비아냥도 나온다. 페미니즘과 군대는 어떻게 엮이게 됐을까.

 


 

 

헌재, 3번이나 “여성이 군대 안 가는 건 차별 아니다”

 

여성 입대 논쟁의 시작은 수십 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헌법재판소 기록에 따르면, 논란이 되는 병역법 제3조 1항(남자에게만 병역의무를 부과하도록 규정한 조항)이 최초로 심판받은 건 1999년이다. 당시 청구인은 “군대 때문에 여자보다 대학 졸업이 늦은 데다 전역 후에도 예비군 훈련에 동원되는 등 불이익을 받았다”며 본인이 제대한 지 13년 만에 헌법소원심판청구를 했다. 이듬해 헌재는 “청구 기간이 지났다”며 각하 결정을 내렸다.

 

이후 지금까지 해당 조항은 12번 더 심판대에 올랐다. “남성에게만 병역 의무를 지우는 건 차별”이라는 이유에서다. 총 13번의 심판 중 각하 10번, 기각 3번(사건번호 2006헌마328, 2010헌마460, 2011헌마825)이 결정됐다. 

 

헌재는 남녀의 신체 차이를 주요인으로 들었다. 판결문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남자가 전투에 더욱 적합한 신체적 능력을 갖고 있다 △여자는 월경이나 임신, 출산 동안 훈련에 장애를 겪는다 △성희롱 등 범죄나 남녀 간 성적 긴장 관계에서 발생하는 기강 해이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 등이 적혀 있다. 

 

이 같은 요지는 세 차례 기각 결정문에 동일하게 등장한다. 결국 “최적의 전투력 확보를 위해 남자만을 병역의무자로 정한 것은 차별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군대 가겠다”는 女 “여자는 가지 말라”는 男

 

헌재의 결정에도 시민 반응은 여전히 엇갈리고 있다. 스스로 페미니즘에 관심이 많다고 말한 여성 김정아씨(가명·24)는 “헌재의 판결에는 여자는 약하다는 전제가 깔려있다”고 말했다. “남자는 군대 가고, 여자는 애 낳으라는 의미와 같다. 딱히 여자가 총을 쥐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도 했다. 이어 “애 낳는 기계로 여겨지느니 차라리 군대 가는 게 낫다”고 했다.

 

2014년에는 서울대학교에서 여성 2명이 “남성만 군대에 가는 건 위헌”이라고 적힌 푯말을 들고 시위했다. 지난해 10월에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여성도 국방의무 이행에 동참하라”는 내용의 청원이 12만여 명의 서명을 받기도 했다. 

 


 

반면 “여자보고 군대 가라고 하는 건 ‘너도 당해봐라’는 심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왔다. 여성학을 전공하고 있는 여성 안소영씨(가명·26)는 “군대가 힘들면 개선해달라고 국방부에 요구해야지, 군대 안 간다고 여자들을 비판하는 건 모순”이라고 말했다. 이어 “모병제 얘기도 나오는 시점에 여자까지 군대에 보내려는 건 시대착오적”이라고 했다.

 

오는 7월 제대를 앞둔 이민규씨(23) 역시 “실현 가능성도 없는 얘기를 왜 힘들여가면서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지금 병력도 최저시급 못 받고 근무하는 마당에 군대에서 여자를 위한 시설을 만드는 데 돈 쓸 리가 있나”라고 지적했다. “급진적 페미니즘을 옹호하는 건 아니지만, 조금 더 쓸모 있는 논쟁을 벌였으면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