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매한 ‘변명의 틀’에 갇힌 원안위
전문가들 “불필요한 용어·숫자·단위 사용···전문성 의심스럽다”
KBS는 8월24일 라돈 침대에 사용한 방사성물질 모나자이트의 방사능 농도가 처음에 알려진 것보다 24배나 높은 고농도라고 보도했다. 원자력안전위원회는 고농도가 아니라는 입장을 내놨다. 그 입장을 접한 전문가들은 원안위의 전문성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보도에 따르면, 2013년 수입 당시 모나자이트의 방사능 농도가 11.1Bq(베크렐)/g로 기록됐지만 2015년 실태 조사한 결과에서는 270Bq/g로 측정됐다.
원안위는 즉각 해명자료를 만들어 충남 당진시에 제공했다. 당진의 임시야적장엔 라돈 침대 매트리스 수만 개가 쌓여 있다. 시사저널이 입수한 그 문건에는 '모나자이트에 천연방사성핵종인 토륨이 8~300Bq/g의 농도 범위다. 고농도 값이라고 보도된 270Bq/g은 자연상태에서 확인되는 수준의 농도 범위 값이다. 따라서 수입해 매트리스에 사용한 모나자이트의 방사능 농도는 270Bq/g이므로 고농도로 보기 어렵다'라고 적혀있다. 이와 관련, 원안위 관계자는 "270Bq/g은 자연상태 농도값의 범위에 드는 것이 팩트(사실)를 적시한 것"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런 설명은 '천연' 또는 '자연'이라는 말을 교묘하게 사용해 국민에게 혼란을 준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는 "농도라는 것은 '자연상태로 존재하는지'의 여부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인체에 해로울 수 있느냐'에 의해 결정되어야만 한다. 그런데 원안위는 자연상태에서 측정되는 정도의 수준임을 강조한다. 이는 별문제가 아니라는 오해를 충분히 불러일으킬 만하다"고 지적했다.
또 원안위는 문건에서 '모나자이트를 제품 그대로 사용하지 않고 희석해서 사용했으므로 대진침대 결함 매트리스의 농도 분석 결과는 1~4Bq/g'이라고 했다. 원안위 관계자는 "270Bq/g 농도의 모나자이트를 희석했으므로 해당 매트리스에서 1~4Bq/g이 측정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기서 짚어야 할 점은 '희석'이라는 용어다. 모나자이트를 희석한다면 모래를 섞는 것을 의미하는데, 업체가 모나자이트에 모래를 섞어 사용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이런 애매한 변명의 틀에 원안위가 스스로 갇혔다는 게 전문가의 지적이다.
이 교수는 "희석이라는 말로 마치 인체에 무해한 것처럼 주장하는데, 이는 사실을 왜곡하는 것이다. 모래를 섞어 희석했다고 쳐도 모나자이트의 방사성물질의 총량은 변하지 않는다"며 "270Bq/g이란 방사성물질 1g에서 270Bq이 측정된다는 얘기다. 만일 매트리스에 100g을 사용했다면 2만7000Bq/g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원안위의 설명엔 심각한 오류가 있다. 원안위는 모나자이트를 침대에 넓게 뿌리고 일부분만 측정해 1~4Bq/g이라고 했다. 이는 밀도가 아니라 단순방출량일 뿐이다. 즉 원안위는 밀도와 단순방출량을 혼동하는 등 전문성이 의심스럽다. 국민이 염려하는 것은 실제 인체에 유해 정도다. 따라서 원안위는 복잡한 수치나 용어 사용으로 국민을 현혹하지 말고, 밀도에 사용량을 곱한 피폭량으로 설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제적으로 의료용을 제외한 방사성물질은 피하라는 게 상식이다. 피폭량이 얼마든 방사성물질은 인체에 유해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방사성물질을 침대 매트리스 등 생활용품에 사용했다. 원안위는 이 사실을 오래전부터 알았지만, 모나자이트 사용 중지를 명령하거나 이를 사용한 제품을 조사하는 등의 조치를 하지 않았다. 오히려 문제의 모나자이트를 수입한 업체에 사용 인가를 내줬고, 대진침대 매트리스 제조 업체에도 올 3월 사용 신청을 인가했다. 원안위는 합법적인 방사능 생활용품의 탄생을 방조한 셈이다. 그러나 아직 원안위는 관리 소홀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