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 기억, 장자연·일본·조선일보

[노혜경의 시시한 페미니즘] 은폐하려는 자들과 기억하려는 자들

2019-05-25     노혜경 시인

대검찰청 과거사 진상조사단이 장자연 사건의 재수사를 권고하지 않기로 했다는 발표를 접하면서,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지난 2월25일부터 3월20일까지 서울도시건축센터에서 열린 ‘기록 기억: 일본군 ‘위안부’ 이야기, 다 듣지 못한 말들’이라는 제목의 전시다. 

서울대학교 정진성 교수를 주축으로 한 연구팀이 오랜 세월에 걸쳐 전 세계에서 찾아낸 일본군 위안부 관련 자료들과 증언과 기록을 다양한 관점에서 보여주는 전시였다. 여기서 나는 오키나와의 배봉기 할머니와 관련된 강연을 들었다. 배봉기 할머니는 한반도에서 위안부로 끌려간 여성 중 최초의 증언자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선 오랫동안 그 존재를 모르거나 잊었다가 뒤늦게 알려진 분이다. 전시에서는 배봉기 할머니처럼 잊혔다가 다시 기억의 이편으로 등장한 분들 이야기도, 미얀마로 끌려간 위안부들처럼 이동경로와 산발적인 기록자료들만 있을 뿐 증언은 전혀 없어 실제로 어떤 일이 벌어졌던 것인지는 오로지 유추할 수 있을 뿐인 이들의 사연도 있다. 

이렇게 분명한 기록과 기억으로도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의 사죄를 이끌어낼 수 없다는 분노에 조선일보 방 사장과 그를 감싼 검경을 단죄할 수 없다는 분노가 겹쳐졌다. 그러나 나는, 끈질기게 기록하고 기억하는 힘이 우리에게 있으므로 일본은 세계사적 악행의 기록을 사면받지 못하는 반인권적 국가로 역사의 법정에 거듭 소환된다는 사실을 떠올린다. 조선일보도, 그의 주구가 된 검경도 그럴 것이다. 

용기 있게 자신의 피해를 증언했던 배봉기·김학순·김복동 등에 힘입어 우리는 시작했고, 지워지고 잊혔던 수많은 위안부들의 삶을, 그 흔적을 다시 기록하고 기억하는 작업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 만행을 저지른 일본이 부정하고 은폐하고 회유하려는 끈질긴 노력을 하고 있어도, 기억하려는 사람들의 기록은 조금씩 진상을 향해 나아가며, 그 기록은 다시 새로운 기억을 만들어낸다. 잊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노력이라는 기억이다. 

5월20일

기록과 기억의 힘으로 역사에 남겨야

장자연은 연예계의 성폭력뿐만 아니라 조선일보 방 사장을 고발했고, 한국의 검찰이 사법정의가 아니라 조선일보에 복종했다는 증거로 남았다. 당장 법적 처벌을 못 한다 해도 우리는 몇십 년을 두고 또 다른 기록 기억 전시를 할 거다. 장자연은 기록하고 증언했다. 그 기록은 바로 지금 우리의 기억이 되었다.

‘장자연 리스트 사건’ 조사 및 심의 결과 보도자료는 새로 기록된 중요한 기록이다. 실제 보고서는 훨씬 자세할 것이지만, 보도자료만으로도 2009년 사건 당시 경찰과 검찰이 얼마나 수사를 회피했는지, 얼마나 중요한 관련자들을 숨기려 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장자연이 남긴 문서에서 핵심적으로 거론된 가해인물은 셋이다. 기획사 사장 김종승, 조선일보 방 사장, 조선일보 방 사장 아들인 ‘스포츠조선 사장’. 이 가해자 리스트에 검찰과 경찰의 수사회피와 조선일보의 다양한 압력과 회유라는 사건이 추가되어 기록되었다. 앞으로 드라마와 소설 작가들이 수시로 이 기록을 열어볼 것이고, 우리는 검색순위에 이들을 올려놓을 것이다. 기억하는 힘은 우리의 무기다. 기록하는 힘은 우리의 처벌이다. 장자연도 위안부 할머니도 그 밖의 모든 고발자들과도 우리는 함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