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불교, 너무 귀족적이다”
  • 이문재 편집위원 (moon@sisapress.com)
  • 승인 2002.05.20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불교환경연대 상임대표 수경 스님
터널 공사를 반대하는 현수막이나 연등이 걸리지 않았다면, 영락없는 난민촌이었다. 국내에서 가장 작은 사찰. 지난해 11월 말, 북한산 회룡사 비구니 스님들이 천막을 친 이래, 지금까지 모두 네 채의 움막이 들어섰다. 최근에는 망루까지 세웠다. 경기도 양주군 장흥면 교현리, 북한산 국립공원 사패산 입구.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에서 남양주시 별내면에 이르는 서울외곽순환도로(총 길이 36.3km)가 북한산 국립공원 서북 사면을 관통하는 사패 터널(길이 4.6km) 진출입구 공사 예정지이다.





불교환경연대 상임대표 수경 스님은 지난 3월6일부터 이곳 움막을 ‘선원’으로 삼고 있다. 부처님오신날을 8일 앞둔 지난 5월11일 토요일 오전. 구둘이 울퉁불퉁한, 한 평 남짓한 움막에서 부처님오신날을 맞이하고 있는 수경 스님은 “사패 터널 반대 운동은 불교계 내부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들 삶의 방식을 개선하기 위한 운동의 출발점이다”라고 말했다.



움막에서 부처님오신날을 맞이하는 심경이 남다를 것 같다. >


지금 이 현장에 부처님이 계시다면, 과연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실까라는 생각에 몰두하고 있다. 불교적 방식으로 이 문제를 풀어 가는 것이 내 화두이다.
(스님은 1966년 수덕사로 출가한 이래, 30년 넘게 선방에서 정진해온, 조계종의 대표적 선승 가운데 한 사람이다. 1990년 이후 실상사에서 수행해온 수경 스님은, 2년 전 실상사 주지 도법 스님의 권유로 환경운동에 투신해, 낙동강 살리기 도보 순례와 ‘지리산 위령제’를 추진했고, 새만금 간척사업 반대 운동에도 참여했다. 지난해 6월에는 해인사 청동 대불 조성 계획을 정면 비판한 뒤, 도법·연관 스님 등 실상사 스님들과 21일 참회 단식 기도를 올린 바 있다).


불교계 내부의 인식은 어떤가?>


예전보다 나아졌지만 아직도 문제를 깊이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구체적인 피해가 생기니까 반대하고 나선다면, 설령 그 사안이 해결됐다 하더라도 큰 의미가 없다. 근본적인 변화는 오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과 자연이 하나라는 동체대비를 구현해야 한다. 생명을 중심 가치로 두는 삶으로 전환해야 한다.


건설회사 담당자나 정부 당국자와 대화하는 과정에서 혹시 분노를 느낀 적은 없는가?>


자연과 내가 둘이 아니라고 하면서도, LG건설 담당자나 정부 정책 입안자들이 적으로 보일 때가 있어 내가 깜짝깜짝 놀란다. 화 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내가 화를 내는 것은 그들이 자연을 파괴하는 것과 다를 게 없다. 내가 탐진치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이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


근원적으로 해결되는 상태란 어떤 상태인가?>


사안만 놓고 보면 북한산 국립공원을 우회하는 대안 노선을 관철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문제는 모두 우리들 삶의 방식이 잘못됐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폭넓게 보면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의 생활이 변화해야 근본적으로 해결될 것이다.
(불교환경연대는 공사중지 가처분 신청과 함께 도로 구역 결정을 취소하라는 법정 싸움을 벌이고 있다. 한편, 정부 당국자와 환경단체 전문가가 모여 국립공원 관통 구간을 원점에서 다시 심의하고 있다.)


불교와 생명운동은 본래부터 사상적으로 상당히 밀접해 있는데.>


연기론이 바로 생명론이다. 우주 전체가 한 생명이라는 화엄 사상을 능가하는 생명 사상은 찾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한국 불교가 환경운동에 관심을 보인 것은 최근의 일이다.>


수행과 전법을 올바르게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행과 전법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불교와 현실 사이에 거리가 생겼다. 수행과 전법에 전념한다면, 그것이 곧 생명운동이고 불교의 사회화이다.


‘자발적 가난’이 환경운동의 관건으로 등장해 있다. 불가에 좋은 전통이 있지 않은가?>


옛 스님들은 무소유를 철저하게 실천하셨다. 바리때와 옷 두 벌이 들어가는 걸망 하나가 전재산이었다. 입산한 직후, 밥을 짓다가 쌀 몇 톨과 콩나물 대가리 몇 개를 흘린 적이 있다. 그때 벽초 스님께서 다가와 수챗구멍에 있는 쌀과 콩나물을 바구니에 주워 담아 물에 한번 헹구고는 그 자리에서 드셨다.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그리고는 사흘 후, 나를 불러 ‘내려가라, 넌 자격이 없다’라고 하셨다. 쌀 한 톨에 들어 있는 우주를 보지 못한다면, 수행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


해인사 청동 대불 조성 문제는 그후 어떻게 되었나?>


문화재청에서 승인이 났지만, 해인사측이 아직 공식 발표를 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안다. 부처님을 크게 만들어서 불교를 표현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한국 불교는 귀족 불교다.


귀족 불교라니?>


스님들 의식도 그렇고, 생활도 귀족적이다. 구조 조정 해야 할 데가 바로 불교계다. 선원에도 물질이 너무 풍요하다. 이 문명으로부터 탈피해서 가능하면 원시적으로 자급 자족하며 수행 정진해야 한국 불교는 되살아난다.


‘교계 내부 문제를 너무 드러내는 것 아닌가’라는 비판이 있는데.>


드러내는 게 아니다. 이미 다 드러나 있다. 부처님이 지금 여기 계신다면, 이런 형태로 사찰을 운영하실까? 스님들이 돈을 만지는 한 불교계의 변화는 불가능하다. 스님들은 수행과 전법에 힘쓰고, 나머지는 다 재가 불자들에게 맡겨야 한다. 귀족으로 살면서 사회적 역할은 외면하는 스님들, 정신차려야 한다. 법복을 입은 비구니가 폭행을 당하고(지난 2월18일, LG건설 인부들이 움막에서 농성하던 비구니 스님들에게 폭력을 행사했다), 조계사 법당에 공권력이 들어가고, 북한산의 천년 고찰이 훼손되는데도 모르쇠하고 있다. 수모를 당하고 있는 줄을 모르고 있다. 자업 자득이다. 이번 기회에 참회하고, 진정한 수행자로 돌아가야 한다.



오는 5월15일 종교계·학계·문화예술계와 시민·환경 단체 인사들이 참여해 ‘북한산 국립공원 살리기 2002인 선언’을 채택한다. 지난해 지리산 위령제에서 촉발된 종교간 대화가 성숙해, 시민·환경 단체와 손잡고 생명운동의 새로운 대안을 창출하려는 것이다.


스님은 올 하안거(음력 4월15일~7월15일) 때 사패산 입구 움막에 시민선방을 개설한다. 물질주의에 물든 삶의 방식을 반성하고, 생명 가치를 중심에 두는 새로운 삶의 방식을 모색하는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