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모던 시대에 군주를 부르는 뜻
  • 강유원(동국대 강사) ()
  • 승인 2005.09.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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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근대 군주론>/그람시 사상의 실천적 함의 제시

 
그것을 발판으로 삼아 뭘 더 해보겠다는 욕심만 없다면 대학의 야간 강좌에서 교양 과목 하나를 강의하는 것은 새로운 도전이 된다. 2005년 1학기 동안 나는 강좌 제목과는 관계없이 학생들과 함께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을 읽었다.

한국 사회는 자본주의 사회이다. 따라서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진출할 학생들이 갖추어야 할 가장 기본적인 지식은 ‘자본주의란 무엇이고 그것은 어떻게 작동하는가’에 관한 것이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학생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하게 되면, 노동의 대가로 임금을 받으며, 더 이상 이윤을 창출해내지 못할 때 폐기되는 노동자가 된다는 현실을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글로벌 시대에 대처하는 다양한 능력을 키우고 몸값을 올려 받을 준비를 하는 것은 이것이 이해된 다음의 일이다.

야간 강좌 학생 중에는 직장에 다니다가 입학한 이들도 제법 된다. 그들 중에는 <공산당 선언>을 처음 읽는 이도 있었으며, 심지어 칼 마르크스라는 이름을 처음 들어본 이도 있었다. 그러면 어떤가, 책 내용이 중요하고 그것이 현실을 잘 설명해주면 그만 아닌가. 어쨌든 그들은 <공산당 선언>을 한 자 한 자 짚어가며 읽으면서 이 책이 참으로 쓸모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알튀세르와 푸코를 ‘배부른 소리’로 치부

그러면 그것을 깨닫게 된 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현실이 그러하다는 것을 알았다 해도 여전히 우리는 인간의 능력을 포함한 모든 것을 상품화하고, 또 그것을 갈수록 빠른 시간 안에 소모해 버리는 체제에서 벗어날 수 없지 않은가. 그러한 대안을 물어오는 이들에게 나는 더 읽어볼 만한 책을 몇 권 추천하는 것에서 그칠 수밖에 없었다.

 
좌파는 낡은 것을 붙잡고 매달려 있는 수구 집단처럼 여겨져 온 것이 몇년 동안의 사실이다. 시민운동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많은 활동이 전개되고 있지만 몇몇 사람에게서 ‘그것도 다 권력 잡으려는 수작’이라는 냉소를 받아온 지도 제법 된다. 그러다 보니 사회를 변혁해 살 만한 곳으로 만들려는 시도들은 나와는 거리가 먼 것으로 간주되고, 결국 사람들은 몇몇 논객과 정치인 들의 화려한 수사학에 감탄만 하게 된다.

존 산본마쓰의 <탈근대 군주론>(신기섭 옮김, 갈무리 펴냄)은 미국에서도 이러한 사태가 벌어지고 있음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물론 이 책은 그러한 사태에 대한 보고서 이상이며, 흩어져 있는 좌파에게 현실적 전략과 이론적 지향을 제시하려는 의도를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책은 모두 일곱 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각각은 서로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있지만 관심 있는 부분만 읽어도 무방하다.

1장 ‘좌파를 낭만화하기’는 미국 신좌파의 낭만적 저항의식이 어떤 모습을 띠고 전개되었는지,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체제내화되었는지를 다룬다. 2장 ‘방언으로 말하기’와 3장 ‘장식적인 이론’은 이론가들이 발명한 요상한 언어에 주눅 든 이들이 읽어보면 그들의 이론이 결국 현실과 괴리된 문화 상품임을 알 수 있게 한다. 4장 ‘프랑스 이데올로기’는 알튀세르와 푸코가 전략 없이 배부른 소리를 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5장 ‘군주와 고고학자’는 저자가 되살리려 하는 그람시의 사상과 푸코를 비교하는 곳이다. 간단히 정리하면 그람시의 노선을 따라 전세계에 걸쳐 이미 존재하는 해방운동의 에너지를 하나로 모아서 단일한 세계 역사적 운동의 형태를 부여하게 되는 ‘집단 지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6장 ‘탈근대 군주’와 7장 ‘메타인문주의’는 이러한 집단 지성의 본질과 작동 메커니즘, 그리고 그것의 바탕이 되는 철학적 근거를 다룬다. 전반적으로 보아 이론적 비판과 실천 전략 제시라는 두 가지 목적을 단번에 달성하려는 과욕이 보이기는 하나, 이것이 저자의 첫 저작이므로 차츰 다듬어지리라 생각한다.

책을 읽다 보면 현대 구미의 거의 모든 사상가와 학자의 저작으로부터 인용한 내용이 쉴새없이 쏟아져 나와 질려버릴 수가 있다. 그것 역시 ‘모르면 어때’ 하는 마음으로 읽으면 된다. 다만 이론적인 관심을 가진 이들은 이것이 크게 보아 계몽주의와 낭만주의, 마르크스, 그람시, 푸코, 데이비드 하비 등의 논의에서 가지를 쳐 나온 것임을 염두에 두고 정리하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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