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들은 왜 이건희 다루지 않나”
  • 안철흥 기자 (epigon@sisapress.com)
  • 승인 2005.09.09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건희 시대> 쓴 강준만 교수/“삼성에 대한 대화와 토론이 우선적 의제”

 
강준만 교수(49·전북대 신문방송학과)가 <이건희 시대>(인물과 사상사)를 썼다. 이제 정치인을 넘어 경제인에게까지 실명비판의 펜끝이 도달했나 싶지만, 그렇게만 보면 오해다. 그는 이미 1997년 1월 무크지 <인물과 사상> 창간호에 ‘이건희 신드롬의 허와 실’을 게재한 바 있다. 이 글은 그가 쓴 최초의 실명비판에 속한다.

강준만 교수가 다시 인간 이건희에 천착한 결과가 이번 책이다. 관련 자료를 섭렵해 정리해는 강준만식 글쓰기는 여전하다. 다만 독설과 촌철살인 대신 시종 양시양비적 거리감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기대하는 독자들은 실망할 수도 있다. 강교수와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인터뷰했다. 얼마 전 치과 임플런트 수술을 받은 그는 대면 인터뷰를 부담스러워했다. 

<이건희 시대>를 쓴 이유는?
‘왜 이건희를 책의 주제로 다룬 대학교수가 거의 없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 온당하다고 생각한다. 이건희가 중요하지 않은 인물인가? 나는 당연한 일을 한 거니까 ‘이유’에 대해 말할 필요가 없고, 사회과학도들이 이건희를 다루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지 그걸 묻는 게 옳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책에 이건희가 어떤 인물인지는 잘 정리되어 있지만, 정작 강교수의 이건희관은 잘 드러나지 않는 것 같다.

요즘 나를 사로잡는 테마는 ‘갈등의 조정’이다. 민주당 분당 사태가 미친 영향이 컸던 것 같다. 나의 이건희관이 잘 드러나지 않는 것 같다고 봤다면 그게 바로 나의 이건희에 대한 평가이다. 그게 바로 내 포지션이라는 거다. 거의 모든 사회적 의제들에 대해 양 극단의 진영이 형성된 상황에서 이젠 나같은 사람들이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역사비평>과 <문화과학> 가을호 특집에서 보듯, 삼성과 이건희 회장에 대한 진보적 지식인들의 평가는 매우 비판적이다.

진보적 지식인들의 삼성 혹은 이건희 평가가 인색한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평가 잣대에 문제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제가 문제삼는 건 생각을 달리하는 사람들 사이의 ‘소통’ 부재이다. 상호 소통의 시도조차 아예 포기한 채 상대편을 무시하고 ‘마이 웨이’만 치닫는 게 지금 우리의 현실이다. 어떤 기자는 장하준 교수에게 ‘장 교수님은 극좌 민족주의자입니까, 아니면 극우 보수주의자입니까?’라는 질문을 했다고 한다. 이 기막힌 담론 수준이 화두가 되어야 한다는 게 내 주장이다. 그 기자가 특별히 수준이 낮은 게 아니다. 그게 곧 지식계 전반의 현실이다. 제가 책 ‘머리말’에서 한 말이 바로 그런 한심한 상황을 염두에 두고 한 것이다. 삼성과 이건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삼성과 이건희에 대해서조차 (정치는 말할 것도 없고) 차분한 대화와 토론이 어려운 우리의 현실이 더 우선적인 의제가 되어야 한다는 거다.

(강교수는 <이건희 시대> 머리말에서 이렇게 썼다. ‘나는 삼성과 이건희가 구사하는 대(對) 국민 ‘레드오션’ 전략의 책임을 삼성과 이건희에게만 물을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한국사회의 ‘전시 체제’ 구조에 다분히 책임이 있다는 게 나의 판단이다. 그건 불행한 동시에 파란만장했던 한국 현대사의 업보일 것이다. 그 업보는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구조’나 ‘아비투스’(습속)나 ‘망탈리테’(정신자세)로 존재하기 때문에 대적해 싸우기가 매우 힘들다.)

삼성과 이건희만큼 한국 사회에서 경제적 성과를 거둔 집단이나 인물은 없다. 서점의 경제·경영서 코너에 가보면 삼성과 이건희에 대한 책이 많이 나와있다. 하지만 과거 김우중이나 정주영씨를 다룬 책만큼 화제를 끌지 못한다. 그 이유가 뭐라고 보나?

김우중과 정주영은 자수성가형에 ‘스타 기질’이 있는 경영자들이었다. 김우중은 김용옥, 장기표 등 유명인사들과 여행을 같이하며 스스로 뉴스를 만들기도 했다. 정주영은 ‘코리언 드림’의 드라마성이 강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반면 이건희는 재벌 2세인데다 코쿤형 스타일이다. 이정도나마 책이 나온 것도 ‘신경영’이다 뭐다 해서 한동안 전혀 다른 자세를 취한 덕분이었다고 봐야겠다.

다른 인물과 비교할 때 이건희 인물 분석을 하면서 느낀 특별한 재미가 있었다면?

이건희뿐 아니라 기업인에 대한 인물분석은 정치인·지식인에 대한 분석과는 성격이 다르다. 정치인·지식인은 담론 중심으로 내면의 세계까지 파고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부담스러운 면이 있다. 반면 이건희의 경우 상반된 사회적 평가의 상호 소통을 염두에 둔 것이었기 때문에 깊이 개입할 필요가 없었다. 나는 책 쓰는 것 자체를 재미로 삼기 때문에 각기 다른 재미라고밖엔 말할 수 없겠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