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춤형 비료로 매출 ‘쑥쑥’
  • 소종섭 기자 (kumkang@sisapress.com)
  • 승인 2006.02.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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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군청이 추천한 농민 4명의 ‘틈새 뚫기’ 신농업 비법을 소개한다.


 
함양딸기연구회 박승문 회장(55)의 비닐하우스에는 빨간 딸기들이 한창 익어가고 있었다. 5천5백 평 땅에 22동의 딸기 하우스 농사를 짓고 있는 박씨는 한 해에 1백40t의 딸기를 생산하는 ‘딸기박사’다. 1990년 초 전자 회사에 다니다가 부모의 권유로 함양에서 처음 딸기 농사를 시작한 그는, 지금은 한국에서뿐 아니라 일본에까지 가서 딸기 재배에 대해 강의한다. 딸기로만 지난해 1억5천만 원의 매출을 올렸는데 순수익은 8천만원 정도다.

바깥 기온이 영하 10도를 맴돌았지만 박씨의 하우스에는 난방 장치가 되어 있지 않았다. 이중 비닐을 친 하우스에 수막(水幕) 장치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수막 장치는 바깥 비닐과 안 비닐 사이에 지하에서 뽑아 올린 물을 흘려 내부 열을 보존한다. 품질 좋은 명품 딸기를 생산하고자 하는 박씨는 비료도 손수 만들어 쓴다. 폐고기류나 깻묵·콩가루 따위를 압축해서 만든 액체 비료는 그의 발명품이다. 이 발명 비료에 현미식초와 닭의 유정란을 섞어 뿌려주면 딸기에 병이 침투하는 속도가 느려지고 당도가 높아지며 표면이 훨씬 반짝거린다. 이것은 그가 개발해 낸 재배 비법 가운데 하나다. 그는 “새로운 재배 기술과 경영 기법을 끊임없이 공부하지 않으면 소득을 늘릴 수 없다”라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경작 규모를 줄이는 대신 부가가치가 높은 딸기를 집중적으로 생산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 생각이다. 고품질의 딸기를 생산해 브랜드화 하는 것이 치열한 경쟁을 뚫고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일할 수 있는 농촌 인력이 갈수록 줄어드는 것도 도외시할 수 없다.

일본 품종인 ‘장희’를 재배하는 박씨는 로열티 문제가 걱정이다. 빠르면 내년부터 딸기 1포기당 100원 정도의 로열티를 지급해야 하기 때문이다. 박씨는 “우수한 국산 품종이 개발되고 있으니 점차 국산 딸기로 바꿀 작정이다”라고 말했다.


“농사는 종합 학문이다”
명품 사과 없어서 못 판 권윤경씨

 
함양군 수동면에 사는 권윤경씨(47)는 10년 전 부산에서 번듯한 입시 학원을 경영하고 있었다. 3년간 미국에 유학했던 그는 대형 버스 두 대를 굴리며 매월 3백명이 넘는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러나 생각보다 들어오는 돈이 많지 않았고 권씨는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추석 때 찾은 고향에서 그는 빛을 보았다. 아버지가 운영하던 2천평짜리 사과 농장이었다.

거창 기상대에 가서 20년간 함양의 기후와 관련한 자료를 구했다. 대구 사과연구소를 찾아가 조언도 받았다. 함양 지역 땅에 대한 지질 조사도 벌였다. 1년여 준비 기간을 거쳐 권씨는 대학에서 시간 강사를 하고 있던 부인과 함께 낙향했다. ‘땅을 살리면 나무가 건강해지고 나무가 건강해지면 좋은 과실이 열린다’는 지론을 갖고 있는 그가 제일 먼저 한 일은 땅을 살리는 것이었다.

화학비료를 쓰는 대신 팔 수 없는 사과를 썰어 흑설탕과 섞어서 미생물을 발효시킨 퇴비를 한 해에 세 번씩 밭 전체에 깔았다. 1만2천 평의 농장을 운영하는 권씨는 퇴비를 만드는 데만 한 해 1천5백만원을 들인다. 맹물과 30대 1로 섞은 바닷물에 목초액을 넣어 한 해 세 차례 사과나무에 뿌려주는 것도 그만의 영농 비법이다. 이렇게 하면 사과의 당도가 높아지고 새가 사과를 쪼는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대학에서 종교철학을 전공한 그는 농사는 생물학·물리학 등이 어우러진 ‘종합 학문’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품질을 관리했기 때문인지 지난해 그는 수확을 하기도 전에 사과를 다 팔았다. 소문을 듣고 예약 주문이 밀려들었기 때문이다. 청와대에도 수십 상자를 팔았다. 권씨는 “우리 사과를 한번 먹으면 다른 사과를 먹기가 힘들다”라고 자신했다. 지난해 2억4천여만원의 매출을 올려 1억8천여만원의 순수익을 거둔 권씨는 오늘도 세계 최고의 사과를 만들기 위해 농장 곳곳을 누비고 있다.

족보 있는 고기로 ‘대박’
흑돼지 길러 6억 매출 기록한 박영식씨

 
함양군 유림면에서 ‘복 있는 농장’을 경영하는 박영식씨(47)의 축사에 들어가자 수백 마리의 새끼 흑돼지들이 사람 냄새를 맡았는지 일제히 꿀꿀거렸다. 쾌쾌한 돼지 냄새가 코를 찔렀지만 흑돼지에 인생을 건 박씨의 표정은 밝기만 했다.

연암축산원예대학을 나와 2002년까지 축협에 근무했던 그는 농림부에서 지원 사업을 공모하는 것을 계기로 오랜 꿈에 도전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흑돼지’를 함양군 특화 사업으로 내세운 기획안으로 그는 농림부에서 6억원에 가까운 지원금을 타냈다. 박씨는 “시대가 바뀌면서 축산에서도 양보다 질을 원하는 수요가 생겼다고 판단했다. 흑돼지를 가지고 이 시장을 공략하겠다고 마음먹었다”라고 독립하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새끼까지 포함해 흑돼지만 4천 두가 자라는 농장은 아시아에서 이곳이 유일하다고 박씨는 말했다. 농장은 사료 공급에서부터 분비물 처리까지 완전 자동화되어 있다. 어미돼지 축사, 새끼를 낳는 축사, 새끼돼지가 커가는 축사가 따로 있어서 그에 맞는 사료가 공급되고 관리가 이루어진다. 100% 순수 흑돼지 혈통을 자랑하는 박씨 농장의 흑돼지 가운데 2백70두는 한국종축개량협회에 혈통이 등록되어 있다. 이들 돼지가 낳은 새끼는 이른바 ‘족보’가 관리된다.

박씨는 함양군 농업기술센터·진주산업대와 공동으로 흑돼지를 활용한 새 상품인 ‘옻돼지’를 선보이기 위한 준비를 마쳤다. 옻나무의 잎이나 가지를 분쇄해서 독성을 뽑아낸 뒤 흑돼지에게 먹여서 고기질이 좋은 돼지를 생산하는 것이다. 함양군은 박씨에게 경영 자금을 지원해주고 경영컨설팅을 해주는 등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서울 대형 할인점 등에 판로를 뚫은 박씨는 “흑돼지는 근섬유질이 가늘어 고기가 부드럽고 쫄깃쫄깃하다. 지방에 탄력이 있어 씹어도 구수한 맛이 있다”라며 일반 돼지보다 35% 정도 비싼 값을 받고 있다고 자랑했다. 지난해 6억5천만원의 매출을 올렸다. 그의 올해 목표는 월 2천 두의 흑돼지를 생산하는 것이다.

머리로 경작한 ‘황금의 땅’
임대차·위탁 영농으로 고수익 올린 권취석씨

 
함양읍에서 복합 영농을 펼치고 있는 권취석씨(48)는 군에서 제대한 1982년, 소 네 마리를 가지고 농사를 시작했다. 지금은 부인과 둘이서 논농사(2만4천 평)와 양파 농사(3천여 평)를 지으며 한우 열 마리를 키운다. 권씨는 물론 부인 박원자씨도 트랙터와 콤바인, 이앙기 등을 다루는 데 선수다.

하지만 이 가운데 권씨가 소유한 땅은 8천 평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임대차나 위탁 방식으로 농사를 짓고 있는 것이다. 대신 농사를 지어주는 위탁 영농과 땅은 있으나 농사를 짓지 않는 공무원 등 부재지주의 땅을 임대해서 농사를 짓는 임대차 영농은 농촌에서 급격히 늘어나는 추세다. 나이가 들어서 농사를 짓기 힘든 사람들이 쌀값까지 떨어지니까 위탁하거나 임대를 하기 때문이다. 권씨는 이런 환경 변화를 적극 활용해 수익을 늘려가는 농민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러나 권씨가 높은 수익을 올리는 것은 규모가 크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함양 농민 38명이 가입해 있는 ‘쌀연구회’ 감사를 맡아 공부에도 열심이다. 회원들은 두 달에 한 번 정도 모여 정보를 교환하고 고수익을 올리기 위한 방법을 짜내기 위해 머리를 맞댄다. 권씨는 “쌀연구회에서 활동하면서 밥맛이 좋고 다른 쌀보다 5만원 정도 비싼 일본종 고품질 쌀을 알게 되어 재배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아버지를 일찍 떠나보내고 농사를 지으면서 두 동생과 두 아들을 대학에 보낸 권씨에게는 빚이 1억원 있다. 몇 해 전 1억원을 들여 논을 사들이면서 진 빚이다. 하지만 매출액의 평균 70%를 순익으로 올리는 그는 “부담이 되지는 않는다”라고 말했다. 평당 8만원을 주고 산 땅값이 최근 4만원까지 떨어졌지만, 올해 임대차 영농을 더 늘리고 소도 더 사들일 것이라는 그의 의지를 꺾을 수는 없을 것 같았다. 함양군 농업경영인회 부회장인 그는 지난해 1억1천만원의 소득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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