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시장’ 위한 서울 ‘쇼쇼쇼’
  • 고재열 기자 (scoop@sisapress.com)
  • 승인 2006.04.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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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문화재단, 홍보성 행사에 돈 ‘펑펑’

 
‘서울시장 선거를 봄맞이 대축제로 만들겠다’며 출사표를 던진 열린우리당 서울시장 예비 후보 강금실 전 법무부장관은 정치적 승부처를 ‘문화’로 잡은 듯하다. 문화를 통해 서울 시민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하고, 문화의 힘으로 강남과 강북을 통합하겠다는 의지가 곳곳에서 엿보이기 때문이다. 왜 강후보는 ‘놀기 좋아한다’는 이명박 서울시장의 비아냥을 뒤로 하고 ‘문화정치’를 자신의 코드로 삼은 것일까? 

보라색으로 대표되는 강후보의 문화정치는 장고의 결과였다. 문화정치가 바로 이명박 시장과의 차별화 지점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강금실 선거 캠프에서는 그동안 상당한 노력을 기울여 서울시 행정을 분석했다. 결론은 이명박 시장의 시정 밑그림이 워낙 탄탄해서 웬만해서는 이를 넘어설 수 없다는 것이었다. 캠프에서는 대안으로 ‘내용 채우기’에 주력하기로 하고 문화를 그 대상으로 삼았다.

문화정치로 방향을 잡은 데에는 이시장이 그다지 문화적이지 못하다는 자체 평가도 큰 영향을 끼쳤다. 이시장은 취임 2년차를 넘어설 무렵 ‘문화시장’을 표방하고 그러한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상당한 공을 들였다. 그러나 문화시장은 신기루처럼 끝내 잡히지 않았다. 아무도 그를 문화시장이라고 불러주지 않는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그렇다고 노력이 부족했던 것도 아니다. 서울문화재단을 만들고 ‘하이서울 페스티벌’을 열었다. 창동 열린극장을 만들었고 국악 전용 공연장, 그리고 뮤지컬 전용 공연장도 건립 중이다. ‘노들섬 예술센터’ 건립을 마지막 대업으로 남기고자 문화단체와 환경단체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건설을 진두 지휘하고 있다. ‘노들섬 예술센터’ 반대집회에 참석한 문화개혁을위한시민연대 김완 실장이 “이시장에게는 문화도 건설이 된다. 문화 시설만이 그의 업적이 된다”라고 비꼴 정도다. 

 
문화예술 분야에서는 유독 이 시장이 점수를 얻기보다 잃는 사례가 빈번했다. ‘위대한 의자전’에 이시장의 사진이 실린 일이나 창동 열린극장에서 개막 작품으로 무대에 오른 연극을 관람하다 도중에 빠져나온 일은 그의 반문화적 감각을 보여주는 대표 사례로 회자되었다. 서울문화재단 대표를 맡으며 대표적인 문화 참모로 활약하고 있는 탤런트 유인촌씨도 이시장을 ‘문화시장’으로 이끌지 못했다. ‘위대한 의자전’에 그의 의자 사진도 내걸렸고, 그도 이시장과 함께 공연 도중 극장에서 걸어 나왔다. 

‘문화시장’을 표방한 이시장은 문화에서 왜 ‘득점’은 못하고 ‘실점’만 하는 것일까? 그 까닭은 그가 염불보다 잿밥에 관심이 많기 때문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성과 내기’에 매달리는 이시장의 문화정책은 개발독재 시대의 시혜 의식을 드러내는 것으로 문화를 통해 자신의 이미지를 상승시키려는 시도가 문화의 본질을 왜곡하고 있다는 비난을 사고 있다.

문화에 대한 이시장의 접근법을 살필 수 있는 곳은 바로 그가 설립한 ‘서울문화재단’이다. 문예 지원, 문화 진흥, 문화 교육 등 각종 문화 사업을 벌일 주체로 세우기 위해 그는 서울문화재단을 꾸렸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서울문화재단이 벌이는 사업의 성격이, 기전문화재연구원 기전문화대학을 설립하는 등 중후장대한 문화 정책을 시행하는 경기문화재단에 비해 경박단소하다고 입을 모은다.

5월 강금실 대 이명박 ‘문화 전쟁’ 가능성

서울문화재단이 이런 평가를 받는 것은 첫 단추가 잘못 꿰어졌기 때문이다. 서울문화재단이 하이서울페스티벌과 함께 선보이면서 행사 기획팀이라는 인상을 강하게 남겼다. 지난해에도 서울문화재단은 사계절음악회(1억5천만원), 서울숲 준공식(3억원), 사랑의 문화나눔 행사(4억원), 청계천 복원 기념식(4억9천만원) 따위를 기획했다. 한 공연계 관계자는 “공연계에서 서울문화재단은 ‘서울기획’으로 불린다. 현재도 여섯 개 실무 부서 중 두 개가 축제 기획팀이다”라고 말했다. 

 
매년 예산 17억원이 투입되는 하이서울페스티벌은 서울문화재단이 주력하는 행사다. 이 행사는 과연 누구를 위한 이벤트일까? 2004년 서울문화재단으로부터 의상 제작비 3천8백50만원(모델료 제외)을 받고 한류백야패션쇼를 연 패션디자이너 김봉남씨(앙드레 김)는 이 행사의 의미를 잘 파악했던 것 같다. 그는 곤룡포를 응용한 디자인의 옷을 이시장에게 입혀 주었다. 이시장은 행사의 절정에 이 옷을 입고 좌우에 한류 스타를 거느리고 등장했다. 하이서울페스티벌이 온전히 이시장에게 ‘봉헌’된 것이다.

이시장 주변의 각종 이익 단체는 또 하나의 수혜그룹이다. 하이서울페스티벌 행사장에 가면 한국 사회의 진보와 보수세력의 대립을 볼 수 있다. 언제부터인가 서울시 문화 행사에 보수 단체들의 주점이 빠지지 않고 등장하고 있다. 문화연대 등 진보 단체들이 한 구석에서 ‘A/S 하이서울페스티벌’을 열며 행사 자체에 문제 제기를 하는 동안 자유총연맹·국제승공연합 같은 보수 단체들은 행사장 목 좋은 곳에서 돈벌이에 나섰다.

한편 하이서울페스티벌이 괴로운 사람들도 있다. 바로 기업가들이다. 하이서울페스티벌과 관련해 서울문화재단은 마치 건설 회사가 하도급 업체를 부려먹듯이 서울시와 관계 기업을 동원해 물의를 일으키고 있다. 2005년 하이서울페스티벌에 우리은행과 하나은행은 각각 5억원과 1억원을 기부했다. 우리은행과 하나은행은 서울문화재단 기금이 각각 6백억원과 2백3억원 예치된 은행이다. 올해 월드컵 기간에 서울광장 사용권을 얻은 SK텔레콤의 경우 30억원을 서울문화재단에 기부하기로 약정했다. 

서울문화재단은 기업체로부터 받은 돈을 대부분 일회성 이벤트를 벌이는 데 썼다. 2004년에 LG화학과 LG전자에서 각각 1억5천만원을 기부받아 이 중 1억4천3백50만원을 SBS 방송 제작 및 광고료로, 8천4백20만 원을 한류백야 패션쇼에 사용했다. 2005년도에는 우리은행으로부터 5억원, 현대자동차부터 2억원을 받아 PIGI 쇼에 3억5천3백50만원을 사용했다. KT는 논란이 되고 있는 청계천 복원 기념 조형물 제작비로 서울문화재단을 통해 35억원(현재까지 19억7백만원 지불)을 낼 예정이다.

 
2005년 서울문화재단은 하나은행으로부터 3천만원을 받아 KBS <TV 책을 말하다>의 제작비를 지불하기도 했다. KBS 김학순 PD는 “전례가 드문 일이기는 하지만 ‘책 읽는 서울 만들기’ 운동을 하고 있는 서울시측으로부터 제안이 들어와 받았다. 3천만원은 외주사에서 받아 특집 공개방송 제작비로 사용했다”라고 해명했다.

개인 기부자 중에서는 이시장과 특수한 관계인 사람들의 기부가 눈에 띈다. 현재 한나라당 서울시장 예비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오세훈 전 의원이 2004년 1천만원을 서울문화재단에 기부했다. 오 전 의원은 이시장의 지지를 이끌어 내기 위해 애썼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SH공사(옛 서울도시개발공사) 김승규 사장도 지난해 1천만원을 청계천 문화 성금으로 기부했다.

기업가와 정치인의 기부에 대해서는 여러 뒷말이 나온다. 얼마 전 국회 문화관광위원회에서 서울문화재단의 운영에 관해 질의했던 열린우리당 민병두 의원은 “기업체가 서울문화재단에 준 돈은 준정치 자금 성격을 갖는다. 기업이 차기 대선을 의식해 보험금조로 낸 돈을 받아서 이시장 개인을 홍보하는 행사에 썼기 때문이다”라고 지적했다.  대선 가도를 달리는 이시장에게 서울문화재단은 서울시체육회처럼 자칫 지뢰가 될지도 모른다. 재단 운영과 관련한 각종 비리 혐의를 검찰이 내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는 5월4일, 다시 하이서울페스티벌의 막이 오른다. 이명박 시장의 고별 무대가 될 올해 하이서울페스티벌은 더욱 화려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문화시장’ 이미지 구축을 위해 막판 화력을 다하려는 이시장과 이를 부정하고 진짜 ‘문화시장’이 되어 보겠다는 강금실 전 장관 사이에 ‘문화전쟁’이 불꽃 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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