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시련 겪는 아랄해의 한인들
  • 누크스 김은남 기자 (ken@sisapress.com)
  • 승인 2000.09.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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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오염 민족 차별 이중고에 시달려 강제 이주 이후 40여년 만에 방랑길 올라

아랄 해 연안에 한인이 집단 거주했다는 사실은 그간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한국과 이 지역 간에 왕래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1937~1940년 극동에 거주하던 한인(이른바 러시아 고려인)이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된 것과 관련해 블라디미르 김씨(우즈베키스탄 한국문화협회 이사)가 발굴한 옛 소련 정부 문서를 살펴보면 아랄 해 연안이 대표적인 강제 이주지였음을 알 수 있다(중앙아시아 한인 강제 이주사)

1937년8월21일 스탈린은 극동구로부터 일본 간첩이 침투하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 극동 국경 지역의 모든 한인을 이주시키자고 제안하면서 이주 대상 지역으로 남카자흐스탄 주 아랄 해 지역 발하 시 우즈베크 공화국을 꼽았다. 이에 대해 우즈베크 공화국을 곱았다. 이에 대해 우즈베크 공화국 인민위원회는 한인 이주에 가장 적합한 장소가 카라칼팍스탄)의 쿤그라 지역이라고 회신했다.

쿤그라는 누크스와 무이냑크의 중간 지점에 있는 마을이다. 이 마을이 한인 강제 이주지로 적합한 이유는 세가지로 설명되고 있다. 첫째 비옥한 유휴지가 만ha있고 용수도 충분해 쌀 농사에 유용하다. 둘째 어업 또하 활발하다. 셋째 호수나 아무다리야 강 같은 자연 경계에 의해 주위로부터 고립되어 있다.

아랄 해에서 내쫒기는 고려인들
그래서였을까 이 지역으로 강제 이주된 한인은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고생을 덜했다고 한다. 물론 초창기 몇 년 동안은 이들도 굶주림과 감시에 고통받았다(문서에 따르면 1937년11월5일 현재 극동에서 쿤그라 지역으로 이주한 한인은 2천3백가구 1만6백여 명에 이른다)

그러나 카레이스키들은 부지런하고 공부를 많이 해 얼마 안가 다들 일 없이(괜찮게)살았다라는 것이 정조야씨(64 카라칼팍스탄 고려인문화협회 회장)의 말이다. 아랄 해가 물반 고기 반이던 시절 무이냐크 생선 통조림 공장에서 일하는 한인도 상당수였다.

이 지역에 거주하는 한인은 최근 들어오히려 혹독한 시련을 맞고 있다. 그 하나는 아랄 해 환경 재앙 때문이고 또 하나는 소련이 해체된 후 급변하는 환경 때문이다. 카라칼팍스타의 수도 누크스에서 수입품 판매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석 라이사(62)씨는 1968년까지만 해도 아무다리야가 넘쳐 누크스에 큰물이 들었다고 회고했다.

아무다리야 강의 주기적인 범람은 누크스~쿤그라~무이냐크 일대로 이어지는 삼각주를 비옥하게 만들었다. 그렇지만 아무다리야 강물이 급격하게 줄어들면서 이 지역은 점차 황무지로 변해 가고 있다.

석씨는 말한다. 아랄 해에서 불어오는 소금 모래 때문에 항상 목구멍이 따갑다. 물은 짜다 손주녀석이 자주 병치레하는 것을 볼 때면 이건 사람 살 땅이 아닌뎨 하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몇 년 전 세상을 떠난 그의 남편 또한 자식들에게 하루 빨리 이땅을 떠나라는 유언을 남겼다.

소련이 해체된 이후 경제 상황이 크게 악화하고 있는 것도 이들에게는 시련이다. 아랄 해 연아 지역 대부분은 전형적인 농업 기반 경제를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대학 나온 젊은이들이 일자리가 없어 놀고 있으며 간신히 일자리를  얻어도 1년씩 월급을 못 받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이 정조야씨의 설명이다. 최근 카라칼팍스탄에서는 젊은이들의 마약 복용이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

소련 해체 이후 또 하나의 특징적인 현상은 소수 민족의 입지가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다. 카라칼팍스탄의 경우 전체 인구 1백20만명 가운데  고려인은 8천명 비록 1%도 되지 않는 비율이지만 옛 소련 시절 고려인 가운데 국회의원 내각 장관 같은 큰 사람(고위 공직자)이 제법 나왔다고 정조야씨는 말했다. 그런데 옛 소련으로부터 독립한 이후 자민족 중심주의가 서서히 고개를 들고 있다는 것이다. 한 예로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독립 이후 자민족 고유어를 공식어로 채택했다. 이를 구사하지 못하는 사람은 국가고시 등에서 불이익을 받는다. 문제는 한인 대다수가 러시아어 이외의 언어를 배우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같은 요인이 얽히면서 아랄 해 연안을 떠나는  한인은 해마다 늘고 있다. 지난 30년간 카라칼팍스탄을 떠난 한인만 7천명에 이를 것이라는 추산이다. 스탈린 시대의 강제 이주에 이어 바야흐로 역이주가 이루어지고 있는 셈이다.

그나마 이들에게 희마이 있다면 한국과 교류가 증대되는 것이다. 특히 지난해 한국의 한의사들이 누크스에서 의료 봉사를 벌이고 돌아간 뒤 이에 대한 답례로 카라칼팍스탄 정부가 고려인문화협회에 건물(연면적 1천5백여 평)을 한 채 기증한 뒤로 이 지역 한인의 위상은 한층 높아졌다.

아랄 해 연안의 열악한 보건 상황을 감안해 건물 1층을 진료실로 개조하고 한인 교육 시설 양로원을 단계적으로 확충하겠다는 것이 협회측의 구상이다. 이에 따라 환갑을 넘긴 한인 2세들이 40℃ 가 넘는 뙤약볕 아래 맨손으로 벽돌을 쌓는 고행을 자처하고 있지만 전반적인 수리 비용이 턱없이 모자라 애를 태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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