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생 해외유학
  • 여운연 차장 ()
  • 승인 1991.01.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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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입학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면서 중고생의 해외유학이 급증하고 있다.

찬성 - 손승호 “적성에 맞는 진로를 선택하는 데 도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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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생의 해외유학을 찬성하는 이유는?
 해외유학에는 성격이 하위권에 속하는 학생들의 도피성 유학만 있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자신의 진로에 대한 확고한 결심이 있고 학업성적이 상위권인 학생들에게 좀더 폭넓은 교육의 기회를 주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확고하게 진로를 결정한, 성실한 학생의 해외유학은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인생이란 스스로 개척하고 노력하여야 한다는 것을 알고있는 아이라면 좀더 넓은 세상으로 옮겨 놓아도 좋을 것이다.

·고졸 학력 이상인 사람의 자비유학 및 문교부가 인정한 특기자 이외의 국민학생이나 중학생의 유학은 불가능하다. 굳이 법을 어겨가면서까지 유학을 보낼 필요가 있는가.
 관광비자로 출국해 현지에 그대로 남는 것은 불법이지만 외국학교의 입학허가서를 받아 정식으로 출국하는 것은 위법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중고교 재학생이 유학생비자를 얻기 위해해서는 현재 학교에서 요구하는 몇가지 시험을 통과해야 하고, B학점 이상의 성적을 취득해야만 입학허가서를 받을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유학생비자를 발급받아 출국하는 것은 적법행위이다.

·외국유학은 자신의 정진해야할 학문의 분야를 결정할 수 있을 때 하는 것이 좋지 않은가.
 국내 대학에 진학하는 경우 자신의 적성이나 진로에 맞게 진학하는 학생이 과연 몇 퍼센트나 되는가. 성적에 맞는, 합격할 수 있는 대학과 학과를 선택하여 우선 붙고 보자는 학생의 수가 더 많은 게 현실이다. 어디 그뿐인가. 어느 부모, 어느 교사가 아이의 진로나 적성을 중시하는 교육을 하고 있는가. 우리나라 현행 교과과정은 다양한 학문의 각 분야를 소개하지 못하고 있으며 적성에 맞게 자신의 진로를 선택할 수 있는 기회조차 막고 있다. 중고생 유학은 이곳에서 경험할 수 없는 다양한 학문과 진보적 사고를 접함으로써 스스로 자신의 적성에 맞는 진로를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중고생의 해외유학은 ‘도피성 유학’이 대부분이다.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도피성 유학에는 반대한다.

·‘편법’으로 행해지는 중고생의 해외유학은 계층간 위화감을 조성하는 행위라는 지탄의 소리가 높은데….
 계층간 위화감을 조성하는 것이 어디 해외유학뿐인가. 주택의 크기, 과소비 등이야말로 모든 국민이 매일 느끼는 위화감의 주원인이다. 빈부의 차이는 자본주의 사외의 장점이자 단점이 아닌가. 따라서 조기 해외유학은 이 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불평등요인 중 지극히 작은 일부분이다. 이보다는 국내 대학진학을 위한 고가의 과외야말로 계층간 위화감을 조성하고 빈부의 격차를 더욱 두드러지게 하는 요인이다. 유학생의 경우 이미 이곳 학교를 떠난 상태이므로 급우들에게나 친구들에게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위화감을 지속적으로 주지 않는다. 그러나 과목당 수십만원에 수백만원에 이르는 과외를 하는 학생은 그들과 한 교실에서 공부하는 급우들에게 수업시간은 물로 각종 시험의 결과를 통해 엄청난 위화감을 주고 있다.

·어린 유학생은 외국생활을 함으로써 받는 문화적 충격, 소외감·애정결핍 등을 이기지 못해 불행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
 고려해볼 만한 문제이다. 그러나 우리 고교생의 하루 일과를 볼 때, 부모가 자녀들과의 대화를 통하여 그들을 정서적으로 보살필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되는가. 새벽별을 보고 등교하여 자정이 가까워 귀가하고, 눈만 마주치면 공부하라는 말을 던져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아이를 곁에 두고 보살피는 본능적 애정교류도 좋지만 함께 살지 못하는 점을 살려 좀 더 이성적으로 애정표현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정기적으로 아이들과 편지를 주고받아 얼굴을 마주하고 이야기 할 수 없는 것까지 소통한다면 곁에 두고 키우는 경우보다 나은 결과를 얻을 수도 있다. 시험에 쫓겨 세계명작 한권 읽을 수 없고 고전음악 한곡 제대로 들을 수 없는 상태인 우리의 교과과정을 생각할 때, 오히려 외국유학을 통한 정서교육이 효과적일 수 있다. 외국의 입시제도는 학과 성적보다 다양한 과외활동을 중요하게 여기는 제도이다. 유학을 통해 정서함양은 물론 이웃에 봉사할 수 있는 기회 또한 많이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금요일 오후 3시면 일주일의 교과과정이 모두 끝나 과외활동을 하고 싶은 사람은 마음껏 운동을 하고, 학교의 오케스트라에 참여하여 악기를 연주하고, 자원봉사 활동으로 병원에 나가 붕대를 감아주고 있다는 한 유학생의 말을 새겨들을 만하다. 한국에서 염려하는 것과 같은 경우만 있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반대 - 김성은 “확실한 교육투자라 할 수 없다”

·중고생의 해외유학을 반대하는 이유는?
 외국에서 공부하는 것은 힘든 일이다. 더구나 감수성이 예민하고 심리적으로 불안한 시기에 있는 중고생의 유학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부모형제와 같이 있으면 쉽게 해결할 수 있는 정도의 스트레스도 혼자 풀어야 하니 힘들다. 심지어는 스트레스 때문에 자살한 예도 있다. 심리적 외로움과 스트레스 외에도 문화의 차이와 언어장벽, 공부하는 스타일이 다른 것도 힘든 이유이다. 중도에 탈락하여 현지에서 범법자가 되는 경우도 있다.

·현행 대입제도는 수험생의 4분의3을 탈락시키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해외유학은 탈락하는 학생들의 자구책이라 할 수 있지 않은가.
 현재 중고교 교육구조는 대학입시의 절대적 영향을 받는다. 대학에 진학하지 못하는 학생이 70% 이상에 달하고 있다. 공부와 진학문제로 자살하는 학생이 매년 수십명씩 나오고 있다. 다른 나라에 가서 고생하는 것이 여기서 최악의 상황에 처하는 것보다 나을지도 모른다. 입시교육의 모순이 극복되지 않는 한 그들의 나무랄 수는 없다. 단지 유학은 여기서 공부 못하는 학생이 해볼만한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해외유학은 학생들에게 ‘입시’라는 과중한 부담을 덜어주고 좀더 폭넓은 교육의 기회를 줄 수 있지 않은가.
 획일적이고 창의력을 살려주지 못하는 주입식 교육은 하루빨리 고쳐져야 한다. 그러나 해외, 특히 미국의 중고교 교육의 질은 높다고만 볼 수 없다. 형편없는 학교도 많다. 좋은 지역이나 나쁜 지역을 막론하고 중고생의 마약·알콜중독, 폭력·성문제는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다. 10대 학생들이 숯총각·숯처녀인 급우를 놀리는 형편이다. 수유실을 설치하는 학교가 늘고 있다. 파티에서 마약을 같이 즐기는 것을 우정의 표시로 강요하기도 하는 ‘또래 문화’ 속에서 이를 거부하기란 힘들 것이다,

·학부모가 과외비로 지출하는 액수가 연간 2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좀더 확실한 교육투자를 취해 과외를 택하느니 유학을 보내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늘고 있는데….
 해외유학에는 돈이 많이 든다. 아무리 한국의 교육현실이 나쁘다 해도 돈 없는 부모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과외도 마찬가지다. 이것은 모두 입시로 인한 과열 경쟁 때문에 소모되는 사교육비다. 유학과 과외 모두 확실한 투자일 수 없다. 돈있는 부모와 정부가 힘을 합해 사교육비를 사회로 환원해야만 한다. 돈이 많은 집 학생은 해외에 나가서도 문제가 많다. 공부를 열심히 하기보다는 한국 학생들끼리 몰려다녀 영어나 미국생활을 잘 익히지도 못하고, 고급 자동차를 몰고다니는 등 외화를 낭비해 현지 주민으로부터 지탄을 받기도 한다. 현지에 집을 사고 과외선생까지 채용하는 부모도 적지 않다.

·조기유학은 학생들에게 선진국의 앞선 학문을 일찍 접하게 해준다는 긍정적 측면도 있을 것이다.
 획일적·권위주의적 교육에 의해 희생되는 우수한 학생이 일찍부터 개별적 교육을 받는 것은 이해한다. 그러나 중고생 유학은 부담이 크다. 알게 모르게 당하는 인종차별도 심하다. 주체성이 형성되는 시기에 유학을 가면 자신이 어느 나라 사람인지 혼돈에 빠지기 쉽다. 또한 그들의 한국적인 것도 아니고 현지의 것도 아닌 어정쩡한 문화를 형성하여 돌아왔을 때 다시 한번 한국문화에 적응해야하는 어려움도 있다. 현 지도층에는 유학을 다녀온 사람이 많지만 앞으로의 세대에서는 그 반대일 수도 있다. 서양의 양식있는 학사들은 동양의 정신문화 속에서 미래의 희망을 찾기도 한다.

·유학을 가려는 이들에게 제시할 수 있는 차선의 해결책이 있다면 얘기해달라.
 차선의 해결책을 생각하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다. 현행 교육제도를 혁명적으로 개혁해야 한다. 교육이라는 이름 아래 인간성을 말살하는 비교육적 입시위주 교육이 계속되는 한 아무리 도덕성의 회복과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해도 소용없다. 대학생 선발을 대학에 맡겨 모든 대학이 똑같은 조건과 방법으로 하루에 결판을 내는 잔인한 제도를 고쳐야 한다. 중고교 교육을 대학입시라는 억압구조로부터 해방시켜야만 한다. 사교육비를 가장 많이 거둬들이는 수많은 학원을 정비하여 실업전문대나 특수대학으로 바꾸는 것도 한 방법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다른 일을 하다가도 본인이 원하면 언제든지 대학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이제는 기업에 주던 재정적 특혜를 교육분야로 돌려 교육을 살려야 한다. 유학생 부모나 사교육비를 가장 많이 거둬들이는 입시학원, 대학 문교부 대통령에게 가장 시급한 것은 진정한 교육을 위한 전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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