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원 안기부 차장 왜 옷 벗었나
  • 한종호 기자 ()
  • 승인 1993.06.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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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개혁 세력 음해설, 개혁팀 강경파 견제설 엇갈려

전국가안전기획부 제2차장 金正源(56)씨가 전격 사임한 배경을 둘러싸고 미묘한 논란이 일고 있다.  김씨는 3월4일 취임한 직후부터 국적 시비에 휘말리다가 한 월간지에 자신을 비난하는 기사가 나간 뒤 취임 66일 만인 지난 5월8일 사표를 냈다. 

 주변에서는 김씨의 퇴임으로까지 이어진 일련의 사태가 단지 언론의 ‘오보’에 기인한 것만은 아니며 김대통령의 개혁을 방해하는 세력이 대통령의 신임을 받고 있는 김씨를 음해한 것으로 보고 있다.

 ‘반개혁 세력의 음해설’이 나오는 이유는 김씨가 안기부 2차장으로 취임한 뒤 점진적이지만 대폭적인 개혁을 추진하려 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3월 중순에 단행한 안기부 조직 개편은 김씨 등 신임 지도부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기존 간부들의 주도로 진행됐으며 그 후 김씨는 안기부 조직 개편을 위한 새로운 개혁 작업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 사임에 대한 또 다른 해석은 새 정부개혁팀 내부의 진보적 인사들이 김씨의 전력에 불만을 품고 그를 물러나게 했으리라는 내용이다.  김씨는 경기고를 졸업한 뒤 55년 미국 유학길에 올라 87년 김영삼 당시 통일민주당 총재의 외교안보특보로 돌아올 때까지 33년간 줄곧 미국에서 살았다.  그는 명민한 두뇌와 노력으로 하버드∙컬럼비아∙존스홉킨스 등 미국 명문대학에서 국제정치학을 공부했고, 변호사자격을 얻은뒤 미국인과 결혼하여 시민권까지 얻었다.

 바로 이같은 경력 때문에 김씨는 한국국적포기, 병역 미필, 중앙정보부 관련등의 시비를 감수해야만 했다.  그런데 김씨가 맡았던 안기부 2차장 자리는 안기부의 해외 및 북한 정보수집과 공작을 총괄하는 중책이다.  김씨를 잘 아는 한 인사는 “민족적 관점을 중시하는 개혁팀의 강경파가 김박사를 미국 편향 인물로 몰았을 수 있다.  어쩌면 김박사는 개혁의 희생자인지도 모른다”라고 주장했다. 

 정작 당사자인 김씨는 너무도 짧은 기간에 파국으로까지 이어진 상황 전개에 무척 당황해 하는 모습이다.  그는 취임한 지 겨우 1주일 만에 북한의 핵금조약(NPT)탈퇴라는 긴급 상황을 맞았다.  업무파악 조차 안된 상태에서 그는 하루 24시간을 부족해하며 뛰어다녀야 했다.  그러다가 자신의 문제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을 때는 이미 여론이 악화될 대로 악화된 뒤였다.  그는 “항변자료는 충분히 갖고 있었지만 대통령의 개혁에 부담을 줄 수 없어 물러나기로 결심했다”라고 말했다. 

 김씨는 아직 자신에 대한 전력 시비를 정식 해명할 기회를 갖지 못한 상태이다. 왜 그가 사임이라는 선택을 해야만 했는지도 분명치 않다.  그는 오히려 적극적인 해명이 대통령에게 새로운 부담을 안겨주지 않을까 우려하는 것 같다.  김씨는 지금 서울 용산에 있는 자기 연구소에서 조용히 지내고 있다.  그는 소감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그냥 “아쉽다”고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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