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림받은 집권당 날개 단 제3세력 시작된 정계재편
  • 이흥환 기자 ()
  • 승인 1993.06.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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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야인맥, 개혁 핵심 포진…민자 ‘9월 위기설’

집권 민자당이 떠돌고 있다. 진통을 겪는 민자당의 속사정은 집안 문제로만 끝나지 않는다. 집권당이 집권당 노릇을 하지 못한다는 것은 권력 핵심부에 공백이 생겼음을 뜻한다. 민자당은 밉든 곱든 새 정부 권력 창출의 견인차 노릇을 한 권력의 한 축이었다. 그러나 민자당이 새 정부가 출범한 지 4개월째 접어든 지금 아무런 역할도 못하는 것은 권력 판도의 재편성을 예고한다.

 민자당과 권력 핵심층 주변의 일부 인사 사이에서는 최근 민감한 내용의 정치 사안이 거론되고 있다. 김영삼 정부가 추진하는 개혁 ‘열매’의 수혜자가 과연 누구냐 하는 문제를 놓고 미묘한 기류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이 문제는 정가에서 뿐만 아니라 학계 교수들과 일부 지식인층, 학생 운동권과 재야 일각에서도 은밀한 화제거리로 등장했다.

 사태가 어떻게 진전되느냐에 따라 엄청난 파문을 몰고올 수도 있기 때문에 아직까지는 전면에 떠오르지 않고 있으나, 9월 정기국회를 전후하여 첨예한 정치 현안으로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 이 사안이 집권 민자당을 비롯해 정가를 바짝 긴장시키는 이유는, 개혁 수혜자가 현역 정치집단이 아닌 제3의 정치 세력이 될 수 있다는 전망 때문이다.

 새 정부의 개혁은 현재 진행중이다. 개혁의 산물은 아직 눈에 드러나지 않았으며, 개혁의 성패 여부를 점칠 시점도 아니다. 따라서 개혁 산물의 수혜자를 논하기에는 아직 때가 이른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개혁 산물의 혜택을 직⋅간접으로 넘겨받을 자, 또는 집단이나 계층은 다음 정권의 핵심 세력을 이루게 된다. 그러므로 개혁의 결과 정치적으로 가장 이득을 많이 얻을 제3 세력이 어떤 집단이냐 하는 것은 최대 관심사이다.

“대통령은 민자당 내팽개쳤다”
 신흥 정치 세력의 윤곽은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이름 밝히기를 거부한 한 정치학 교수는 “이대로 가면 재야가 정권을 장악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조건을 지니게 된다. 재야 인맥이 정권 장악을 꾀하는 뚜렷한 움직임은 아직 없다. 하지만 권력 주변에 재야 인사 숫자가 늘어나게 되면 상황은 달라질 것이다”라고 말한다. 기존 정치인이나 기득권 세력의 반대편에 서서 신흥 정치 세력으로 떠오른 광범위한 재야의 연대 인맥이 권력의 핵심에 자리잡을 경우 권력 판도는 일대 변화를 겪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변화는 기존 정치 세력과 완전한 단절을 이루지 못한 채 ‘동거’ 형태를 취하고 있는 새 정부에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 밖에 없다. 또 정국 지휘권을 독점한 김대통령의 통제 범위를 넘어설 경우 자칫 혼란으로 비칠 수도 있다.

 이미 원내에 진출한 일부 현역 의원을 비롯해 재야 인맥은 권력 주변에 폭넓게 퍼져있다. 이 인맥 사이에서는 여야 구분이나 영호남을 구별짓는 선이 뚜렷하지 않다. 또 과거 정치 형태의 맹점이던 특정인 중심의 붕당 의식도 희미하다. 집단화하거나 조직화하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춘 셈이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무기는 아직 세밀한 검증을 받지는 않았지만 구정치인 집단과 비교할 때 비교적 높은 점수를 얻는 도덕성⋅신선감⋅성실성이다. 반면 뒤떨어진 현실 감각과 독선적인 성향이 제일 큰 약점으로 지적되기도 한다.

 새로운 정치 세력의 태동이 눈길을 집중적으로 끈 반면에 집권 민자당의 존재 가치는 점차 묽어지고 있다. 민자당 민정계의 한 당무위원은 ‘민자당에 주인이 없다’고 못박아 버린다. 주인 잃은 민자당. 과연 민자당에는 주인이 없는가. 형식상 당 주인은 민자당 총재인 金泳三 대통령이다. 그러나 김대통령 자신이 민자당을 과연 자기 당이라고 생각하는지는 의문이다. 김대통령이 민자당을 대하는 태도가 이런 의문을 갖게 한다.

 정치학을 전공한 ㅇ교수는 김대통령과 민자당의 관계를 이렇게 표현한다. “자기를 대통령으로 만들어준 당이긴 하지만 김대통령은 당에 대한 애착이 없는 것 같다. 좀 과장해 말하면 민자당을 내팽개쳐 놓은 게 아닌가 싶다.” 이 교수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민자당은 지금 방치된 상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민자당 내에서조차 ‘김대통령은 민자당 없이 혼자 질주한다’는 말이 나올 지경이다. 사실상 김대통령의 개혁 구상과 민자당은 상당히 거리가 멀다.

 김대통령이 민자당과 민자당 사람을 평가하는 시각은 청와대 비서진과 첫 내각 인사에서 이미 극명하게 드러났다. 민자당은 완벽하게 배제되었다는 평가가 나올 만큼 당 인맥은 철저하게 소외당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참여했던 민정계 인사들도 철저하게 배제되었다. 또 재야 출신 인사 등 김대통령이 새로 충원한 개혁 정부의 핵심 인사들은 모조리 민자당이 아닌 청와대와 행정부쪽에만 배치되었다. 그뿐 아니다. 행정부 개혁을 담당할 핵심 세력도 당이 아닌 재야에서 충당했다. 민자당이 내팽개쳐졌다는 소리를 들을 만하다. 일단 민정⋅공화계를 포함한 민자당 인사들은 김대통령과 같이 일할 사람들의 기준에서 벗어나 있는 셈이다.

 민자당 다수파인 민정계 중진들은 무장해제된 상태이다. 속수무책이다. 李韓東⋅李春九 의원은 말할 것도 없고 金潤煥 의원조차 “나도 기득권 세력의 한 사람이다. 나도 시험을 거쳐야 한다”라고 백기를 들어버린 상황이다.

 김의원이 판단한 정치 상황은 ‘개혁 대세론’이다. 개혁 대세론의 핵심은 개혁 주체 세력이 전면에 나설 때 기득권자들은 뒷전에 물러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5월22일 민자당 경북 예천지구당 개편대회에 참석한 자리에서 그는 “우리(TK)가 푸대접 받는다는 얘기가 많이 나오는데 나도 알고 있다. 난들 그런 생각이 들지 않겠느냐. 그러나 우리는 지난 30년간 기득권 세력이었다. 새 정부가 개혁하는 마당에 지금은 좀 물러나 있어야 한다”라고 말햇다.

 그러나 김대통령이 민자당을 외면하지는 않으리라는 게 김의원의 판단이다. “그분(김대통령)도 임기 5년 동안 민자당을 기반으로 하지 않겠느냐”라는 것이다. 김종필 대표의 측근인 공화계 한 의원도 김대통령이 민자당의 큰 틀을 바꾸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ㅅ교수는 민자당의 병세를 중병이라고 진단한다. “민자당이 개혁을 주도하겠다고 하는데, 지금까지 한국 정치사에서 집권당이 개혁을 주도한 적은 단 한번도 없다. 한국이 정치풍토가 그렇지 못하다. 더구나 지금 민자당에 있는 사람들 대부분은 개혁을 추진할 사람들이 아니다. 일부 개혁 지향적 인사가 있다지만 당을 끌고갈 만큼 핵심적인 역량을 구축하지 못하고 있다. 당 대표와 3역 등 핵심 당직을 장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민주계가 개혁을 주도해 나간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민자당은 정치개혁특위를 가동해 지난 166회 임시국회에서 민주당과 합의하여 공직자윤리법을 통과시키는 성과를 올렸다. ㅅ교수는 이마저 부정적으로 평가한다. “공직자윤리법을 통과시킨 것은 당 스스로 하고 싶어 한 일이 아니다. 그나마 위(대통령)에서 하라고 했으니 한 것이다.”

 민자당이 준비하는 정치자금법 개정안 등 개혁입법도 마찬가지라는 게 이 교수의 시각이다. 그는 “당은 개혁을 주도할 만한 능력도 없고, 조건도 전혀 마련되어 있지 않다. 지금의 정당 형태로는 여든 야든 당내에서 의원의 역할을 기대하기 힘들다. 위에서 결정하면 그저 따라가는 것이 조작이다. 민자당에는 아무런 힘이 없다”라고 주장한다.

 당 총재인 김대통령이 취임 1백일을 맞아 자신감 넘친 기자회견을 한 지난 6월3일에도 민자당 분위기는 무덤덤하다 못해 썰렁하기까지 했다. 金鍾泌 대표위원은 보궐선거 지역인 강원도 명주⋅양양에서 열린 당원 단합대회에 참석하느라 당을 비웠다. 우연의 일치이긴 하지만 김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중단없는 개혁’을 소리 높이 외치던 시간에 당의 얼굴인 김대표가 집안을 비웠다는 사실은 민자당의 현주소를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김명윤씨 상승세…김종필 대표 하락세
 당의 간판격인 김종필 대표위원은 곤혹스럽기 그지없다. 당에서는 ‘청와대의 하청업자’라는 말까지 나돈다. 김대표가 당에서 하는 일이란 고위당직자회의와 당무회의를 주재하고, 매주 한번씩 김대통령과 주례 회동을 하는 일뿐이다. 그나마 과거 盧泰愚 전 대통령과 김영삼 총재의 주례 회동처럼 무게가 실려 있지도 않다. 여의도 당사 6층에 있는 당   대표실보다는 바로 옆에 붙어 있는 황명수 총장실에 출입기자들의 발길이 잦은 것도 당 대표의 위상을 읽게 해주는 부분이다.

 설상가상으로 민주당 李基澤 대표는 5⋅16 ‘쿠데타’를 빌미삼아 김대표에게 맹공을 퍼붓고 있다. 안팎으로 시달리는 김대표가 민자당에서 차지할 자리는 시간이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특히 金命潤씨의 등장은 김대표의 신경을 자극한다. 김씨가 민주계 개혁 세력의 구심점으로 떠오를 경우 김대표는 본인이 원치 않더라도 상대적으로 기득권 세력의 대표주자로 인식될 가능성이 높다. 김명윤씨가 주목되는 이유는 바로 이때문이다. 김씨는 지난 13대 총선 때 서울 종로구에서 김영삼 총재가 이끄는 통일민주당 후보로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지난 14대 국회의원 전국구 공천 당시에는 민자당 대표였던 김대통령이 盧泰愚 당시 대통령과 실랑이를 벌였지만 결국 김후보를 전국구 명단에 올리는 데 실패했다. 김대통령은 김씨에 대한 마음의 빚을 진 셈이다.

 김씨를 평가하는 데는 상반된 시각도 있다. 김씨가 민자당에 자리를 잡더라도 그리 큰  일은 할 수 없으리라는 견해다. 김씨의 성품과 당의 역학구조에 비추어볼 때 그가 당의 실세로 전면에 나서는 것은 예상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설령 김씨가 민자당의 간판이 되더라도 김대통령의 정치력을 따라잡기에는 역부족이고, 당의 복잡한 역학관계를 조정할 만큼 정치 경륜이 풍부하지도 않다는 견해다.

 민자당에서 힘의 공백은 어차피 메워져야 한다. 지금은 개혁 정국이 총지휘권을 거머쥔 김대통령의 정치력이 당의 공백을 메우고 있다. 어쩌면 김대통령이 의도적으로 민자당을 ‘진공 상태’로 만들어 놓았다고 볼 수도 있다. 힘의 빈자리를 메우기에 가장 적당한 정파는 민주계다. 그러나 민주계는 수적으로 열세다. 결구 민주계는 ‘인맥이 피’를 공급받아야 한다. 지금까지 김대통령이 개혁세력에 공급한 인맥의 피는 과거 정권에서 진보적 지식인으로 분류되었던 넓은 의미의 재야 인사들이다.

 명주⋅양양 보권선거에서도 김명윤씨가 공천받기 직전까지 강력한 공천 예정자로 거론되었던 사람은 한겨레민주당과 민중당 경력이 있는 탓에 강경 재야 인사라는 평을 들었던 朴容逸 변호사다. 공천과 관련해 그를 접촉한 여권 핵심 인사는 청와대 金正男 교육문화수석과 정무1장관실 鄭聖哲 보좌관(차관급)이었다. 박변호사는 막바지에 법조계 대선배인 김씨에게 밀려나 의회로 진출하는 기회를 잡는 데는 실패했으나 처음엔 가장 유력한 공천 후보였다.

 김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15대 총선 때 정치권 물갈이를 예고했다. 인위적인 정계 재편이 아닌 선거를 통한 개편을 의미한다. 민자당 일부에서는 15대 총선 전에 민자당 국회의원 솎아내기와 연이은 보궐선거로 점진적인 의원 교체가 이루어질 가능성이 점쳐진다. 하지만 이런 방법에는 한계가 있다. 어쨌거나 동기야 어떻든 민자당 의원들은 하나둘씩 당을 떠나고 있다. 김대통령이 당을 떠나는 의원들을 잡으려는 제스처를 보인 적은 없다.

민자당의 방황은 언제 끝날 것인가
 민정계의 한 당무위원은 “김대통령이 당에 비중을 두지 않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만약 당을 중시한다면 김윤환⋅이한동⋅이춘구 의원 등 민정계 중진 중에서 단 한명이라도 포용했어야 하는데 전혀 그런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민자당은 껍데기나 마찬가지다”라고 말한다. 재산 공개 파동 이후 계속 ‘피고인석’의 가시방석에 앉아 있는 민정계 의원들이 조직적인 저항을 꾀할 기미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당내에서의 조직화보다는 목전의 불화살을 피해 당을 탈출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국회의원들이 당의 테두리, 특히 집권당의 테두리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기존 정치세력의 공동화를 뜻한다. 민자당을 비롯한 정가일각에서 ‘9월 위기설’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현대와 같은 정치 상황이 계속될 경우 방치된 채 흘러갈 민자당이 9월 정기국회에서 야당과 재야 세력의 큰 저항에 부닥치리라는 것이 위기설의 핵심이다.

 민자당의 민정⋅공화계 인사들, 그리고 권력 핵심에서 소외됐거나 개혁 알맹이의 혜택을 받지 못할 것으로 판단한 일부 민주게 의원들이 될 대로 되라는 자포자기 식이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게다가 9월 정기국회에서 야당의 집중포화를 맞을 경우, 소속 의원들이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지 않게 될 집권 민자당은 정국 주도권을 송두리째 빼앗길 수 있다는 것이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3당 합당으로 민자당을 출범시켰으나 민자당을 ‘자기 당’으로 만드는 데에는 실패했다. 그 실패는 민자당의 다수 정파인 민정계가 재집권에 실패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김영삼 대통령은 이 과정에서 민자당을 기반으로 정권을 장악했으나 집권 민자당의 손발을 묶어버렸고, 애정을 표시하기는커녕 “아직도 참회의 눈물을 보이지 않는다”고 사뭇 부정적인 눈길을 거두어들이지 않고 있다.

 민자당의 방황은 언제나 끝날 것인가. 개혁 세력이 예고한 물갈이, 15대 총선은 3년후인 96년에야 치러진다. 지금의 불안정한 정치 상황이 3년을 버텨낼 수 있을지 매우 의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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