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미라 아키토 동경대학교 총장
  • 김춘옥 국제부장 ()
  • 승인 1992.04.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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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부정엔 대학인도 책임”



 학부학생 1만5천명 대학원생 5천명, 조교ㆍ연구원 2천명을 포함한 교수요원 4천명. 10개의 학부와 13개의 연구소. 이 거대한 조직을 거느리는 동경대학교의 총장으로 선출된 사람은 동시에 일본의 97개 국립대학교의 대표이자 일본 대학전체를 상징한다. 세계적으로 권위있는 상(1988년 훔볼트상, 1989년 웨더릴상 등)을 여러 차례 수상한 원자핵물리학자인 아리마 아키토(有馬朗人ㆍ61)총장은 1백14년의 역사를 지닌 이 대학이 바라는 ‘훌륭한 학자 총장’ 기준에 의해 선출됐다 한다. 그는 1949년 동경대학교 물리학과에 입학한 이래 세차례에 걸친 미국에서의 연구생활(59~61ㆍ67~68ㆍ71~78)을 제외하고는 줄곧 동경대학에만 재직해 온 동경대인이다. 89년 5백86표 동수를 얻어 추첨으로 총장으로 선출된 아리마 총장이 85년과 89년에 이어 세 번째로 한국을 찾았다.

 

한국의 인상은 어떻습니까?

한국은 대단히 깨끗한 나라입니다. 특히 예의 바르고 윗사람에게 공경을 표하는 태도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동경대학 총장으로서 가장 중요한 역할은 무엇입니까?

나는 동경대학뿐만 아니라 일본 전체의 대학의 대표이기도 합니다. 97개나 되는 전국의 국립대학협회의 회장으로서 그 입장을 대표하고 있습니다. 또 학내적으로는 예산결정을 비롯해서 동경대학의 장래를 연구하는 것이 내 임무입니다.

 

동경대학 총장이 되려면 어떤 자질이 우선 필요합니까?

가장 중요한 것은 학자로서의 자질입니다.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일본은 학문중시 사회이므로 대학총장으로 권위있는 학자를 원합니다. 두번째는 인간적으로 모두에게 신뢰를 얻는 것입니다.

 

학생수만 2만명의 동경대학교 총장에게 행정능력은 필수적이라고 보는데요.

그런 부분이 일본 국립대학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탁월한 행정가가 총장을 지원하기도 하지만 꼭 그런 사람이 총장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미국에서는 총장의 임기가 6년이나 8년 이상으로(일본은 4년에서 6년) 선출된 총장은 탁월한 행정능력을 발휘해야 합니다. 어떤 점에서는 미국의 총장선출 기준이 일본보다 낫다고 봅니다. 미국 총장들에 비하면 나는 아마추어에 불과합니다. 한 2년 정도 뛰니 이제야 행정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 조금 알겠더군요.

 

동경대학의 최대 문제점은 무엇입니까?

예산이 부족합니다(연간 총예산은 1천5억엔, 한화 5천5백억원 정도). 낡은 건물을 당장 개수해야 하고 캠퍼스는 점점 좁아지고 있습니다. 1980년까지만 해도 일본 정부는 너무 많은 국채를 발행해서 이자를 지불하느라 최근 10년 동안 긴축재정을 폈습니다. 그 영향이 동경대학에까지 미쳐 유능한 인재를 확보하지 못하고 기자재를 교체하거나 새로 구입하는 데 필요한 예산이 불충분했습니다. 물론 기본예산은 줄지 않았으나 건설용 예산은 10년 전 수준으로 동결되어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다행히 건설용 예산과 과학분야 투자예산이 늘어났습니다.

 

정부와의 관계는 어떻습니까? 간섭은 없습니까?

간섭이라는 단어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나는 정부의 입장에 찬성합니다.

 

항상 정부입장에 찬성하십니까? 대학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충돌하는 일이 있지는 않습니까?

때때로 있습니다. 정부는 동경대학에게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라고  하지만 우리는 반대하고 있습니다. 일본정부는 대학에 무척 관대한 편이고 또 대학은 정부가 개입하지 않아도 적절한 결정을 내립니다. 정부는 필요한 충고를 할 뿐입니다(그 예로서 아리마 총장은 법에 따라 일반교양교육을 실시했으나 학생들의 반대에 부딪혀 교양과목을 선택으로 바꾸었다고 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정부도 법을 바꾸기는 했으나 그 법의 준수여부는 대학의 자율결정에 달려 있다고 했다).

 

동경대에서 진행되고 있는 대학원 중심의 교육 등 개혁에 관해 설명해 주십시오.

그 사실을 어떻게 아셨습니까?… 동경대학에서 박사학위 획득은 너무 힘들어 교수 10명 중 3명만이 학위소지자입니다. 우리대학의 박사학위는 선망의 대상입니다. 공학부나 농학부 의학부에서는 미국식을 따르기 때문에 좀 더 쉽게 박사학위를 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문학부 법학부의 박사학위취득은 전쟁 이전과 마찬가지로 아주 어렵습니다. 교수들이 박사학위가 없으니 젊은 학생들에게 박사학위를 주려고 하질 않습니다. 그러나 박사학위의 수준은 변했습니다. 미국에 유학하면 쉽게 박사학위를 딸 수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미국식으로 학제를 바꿔나가고 있습니다. 논문심사위원수를 5명에서 3명으로 줄이고 대개 5백여페이지에 달하는 논문을 1백페이지만 쓰도록 해서 심사시간을 줄이려고 합니다. 또 최근에는 일본식으로 학위 이름을 바꿔 문학박사ㆍ이학박사가 아니라 박사-문학 또는 박사-이학으로 할 예정입니다. 영어로는 모두 닥터 오브 레터스 또는 닥터 오브 사이언스입니다.

 

학생문제로 화제를 돌리겠습니다. 학생들과 대화는 어느 정도 자주 하십니까?

1년에 두번은 최소한 학생회 간부들과 만납니다.

 

70년대 초의 동경대사건을 떠올리는 사람들은 최근 일본 대학생들이, 특히 동경대생들이 너무 조용하다고 의아해 합니다.

지금은 조용합니다. 학생은 정부에 반대하는 것보다는 성실해야 좋다고 생각합니다.

 

젊은이에게 대학은 무엇이어야 한다고 보십니까?

역시 새로운 지식을 쌓아가는 곳입니다. 뭔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곳입니다. 그들은 새로운 것을 창조해내는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혹자는 동경대학생들이 너무 조용하고 신사적이라고 하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들은 어떤 계기가 주어지면 대단히 적극적으로 나옵니다. 나는 그들이 정치뿐만 아니라 사회문제에도 적극적이길 바랍니다. 또 환경문제 등 중요한 문제에 적극적인 관심을 가져주기 바랍니다.

 

대학생들은 사회문제에 어느 정도 참여해야 한다고 봅니까?

지난 3월28일 졸업식에서 나는 다음과 같은 졸업치사를 했습니다. “부패한 사람들을 보라. 뇌물을 받는 정치인이나 버블경제에 뛰어든 경제인들을 보라….사회부정은 단지 그들때문에만 생기는 것은 아니다. 우리도 거기에 책임을 져야 한다. 우리 스스로 그것을 일소해야  한다…. 자신을 먼저 다스리라. 그리고 나서 나라를, 그리고 세계의 평화를 얻을 수 있다” 이말 아시죠. 修身薺家 治國平天下.

 

동경대학은 지나치게 이론교육에만 치중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특히 미국대학에 비해서 사회의 현실과는 괴리되는 교육을 한다는 평가를 어떻게 받아들이시는지요?

실제로 그렇습니다. 우리의 취약점이지요. 그런 점에서 지혜의 일부를 가르치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해결방안은 없습니까?

그렇지 않아도 지난번 졸업식에서 나는 사회와 연결된 교육, 즉 도덕교육이라 할까요, 그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이같은 교육은 대학에서 하기에는 너무 늦습니다. 국민학교 때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일본 고위관리의 50%이상이 동경대 출신입니다. 일본 사회에서 엘리트의 역할은 무엇입니까.

일본의 평화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일본의 현 경제력을 지켜나가면서. 예를 들어 국제관계에서 어떻게 하면 갈등을 줄일 수 있는가 등을 연구해야 합니다.

 

동경대생들이 그런 역할을 잘 하고 있다고 봅니까? 동경대 출신이 가장 많은 대장성의 경우 오히려 급변하는 현실에 잘 적응 못한다는 지적이 있더군요.

언론의 그런 지적을 나는 믿지 않습니다. 텔레비전에서 국제문제를 토론할 때는 늘 동경대 출신이 나와서 이야기합니다. 또 동경대를 욕하는 사람들도 대개는 동경대 출신입니다. 그런 기사를 쓰는 언론인 역시 동경대 출신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대학을 고여 있는 물이라고 합니다. 사회변화에 대한 적응능력의 순서가 기업ㆍ관료ㆍ대학으로 돼 있습니다.

대학이 변화에 느린 것은 분명합니다. 대학은 사회의 변화에 천천히, 비판적으로 대응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동시에 대학은 과학의 발전에 재빨리 대응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나는 상아탑이란 말을 좋아합니다. 세상이 어떻게 변한다 하더라도 역사는 역사이고 철학은 철학입니다. 우리는 학문에 깊은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상아탑의 세계에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사회가 뭔가를 요구할 때, 가령 급격한 사회발전으로 환경을 보호해야 할 때 대학은 이에 협력해야 합니다. 어떻게 지구온난화를 막고 화학물질의 해독을 없앨 것인지, 이런 문제에는 아주 신속하게 대응해야 합니다. 또 도덕적으로 사회가 잘못된 길을 걷고 있을 때 대학은 이를 저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2차대전 때 일본대학은 정권의 파시즘을 비판했던 적이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대학의 역할은 무엇입니까?

첫째 학생에게 수천년 동안 전해 내려온, 그리고 우리가 배운 지혜를 심어주는 것입니다. 지식을 포함해서입니다. 둘째는 가르칠 뿐만 아니라 변화하는 사회의 필요를 충족시켜주어야 한다는 기술적 측면입니다. 물론 가르치는 것도 기술적인 것이긴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뭔가 새로운 것을 창조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일본이나 한국에서는 입시 지옥이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복안이라도 있으신지요?

그 문제에 대한 방책은 나도 없습니다. 정말 걱정입니다. 나는 일본사람들에게 부모가 자식을 일류대학에만 보내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고 말하곤 합니다. 요즈음에는 언론도 경력을 중시합니다. 또 소니를 비롯한 많은 기업도 신입사원을 출신학교만 보고 선발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능력과 자질을 중시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들은 동경대를 비롯해 와세다나 게이오대학에 자녀를 보내려고 합니다.

 

텔레비전에서 한국의 대학생들이 화염병을 던지는 장면을 많이 보셨지요?

89년 한국을 방문했을 때 연세대 앞에서 데모가 있어서 정문으로 못들어가고 뒷문으로 들어간 적이 있었습니다.

 

이같은 문제는 누구에게 책임이 있다고 봅니까?

학생에 관련된 문제라면 제1차 책임은 교수와 정치인에게 있습니다. 언론도 학생들의 요구사항을 잘 파악해서 그들이 옳다면 지지하고 그르다면 분명히 얘기해야 합니다.

 

정치가 잘못됐을 때 교수들이 학생을 상대로 무엇을 할 수 있다고 봅니까?

학생들과 얘기해야 합니다. 교수와 학생은 어버이와 형제사이입니다. 교수가 전능하고 완벽할 수는 없습니다. 교수는 학생들이 옳다고 생각한다면 그들이 하는 일에 협력해야 합니다.

 

훌륭한 교수의 최우선 조건은 무엇입니까? 잘 가르치는 것, 훌륭한 연구업적을 남기는 것, 학생지도를 잘하는 것, 이 가운데서 말입니다.

아주 좋은 질문입니다. 그 질문에는 대답할 것이 없습니다. 어떤 교수는 학생지도는 잘하나 가르치는 데는 서툴고, 또 어떤 교수는 연구업적은 훌륭해도 학생지도에는 전혀 무능하기도 합니다. 대학원에서는 연구업적이 훌륭하고 잘 가르치는 교수가 이상적입니다. 일본이나 한국에서는 전통적으로 교수들이 잘 가르치는 것보다는 연구에 업적을 남기고 싶어합니다. 어쨌거나 학생수가 많이 늘어나 지금 교수는 우선 잘 가르쳐야 된다고 봅니다.

 

한ㆍ일 관계는 늘 미묘합니다. 지식인으로서 두 나라의 관계 개선에 도움이 될 만한 의견은 없습니까?

나는 한국을 아주 높이 평가합니다. 4백여년 전의 일본의 침략이나 근세의 사건 등 모두 사과드리고 싶습니다. 우리는 이같은 과거의 오류를 어떻게든 극복해야 합니다. 국제적 교류를 통해서 말입니다. 유럽국가들은 곧 통합됩니다. 미주지역에서는 미국ㆍ캐나다ㆍ멕시코가 단결했습니다. 동북아 지역과 아프리카에서만 그런 징조가 없습니다. 중국 한국 일본 대만 홍콩이 통합까지는 아니더라도 보다 밀접한 협력을 해야 할 것입니다. 아니면 생존하기 힘들 것입니다. 일본도 혼자서는 생존하기 힘들 것입니다. 인적교류와 문화교류를 통해 이 지역국가간의 우의를 돈독히 해야 할 것을 특별히 강조하고 싶습니다 (아리마 총장은 4월8일 한국대학교육 협의회가 주최한 국제회의에서도 ‘대학간의 국제교류’라는 제목으로 주제 발표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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