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방석 앉은 ‘노동개혁 장관’
  • 이흥환 기자 ()
  • 승인 1993.07.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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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제 장관 ‘진보노선’에 재계 ․ 신경제팀 눈총 ․ ․ ․ 노사분규로 사면초가

李仁濟 노동부장관이 가시방석에 앉아 있다. 현대자동차 노조의 부분파업 등 노사분규가 개혁 정국의 현안으로 떠오른 마당에 주무 부처인 노동부장관이 무풍지대에 있을 수는 없겠지만, 좌불안석하는 이유는 그뿐만이 아니다. 이장관은 그렇지 않아도 취임 이후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추진해온 개혁 정책 때문에 가뜩이나 재계와 신경제팀의 눈총을 받아왔다. 이미 미운털이 박혀 있던 차에 노사분구가 터져나온 것이다.

 재계와 신경제팀은 이구동성으로 경제활성화를 부르짖어 왔다. 노사분규 없는 산업계의 안정 분위기 조성과 이에 따른 경기부양책이야말로 신경제 추진팀의 지상목표였다. 이들은 신경제정책의 기반구축 단계인 신경제 1백일의 마감 시간을 코앞에 두고 터져나온 노사분규를 치명타로 여긴다. 신경제 추진팀이 이장관에게 드러내놓고 불평을 터뜨린 흔적은 없다. 오히려 불안한 쪽은 노동부다. 이장관이 노사분규의 책임까지 몽땅 뒤집어쓰기 딱 좋은 상황이라는 것이다.

 이인제 장관은 주목받고 있다. 노사분규 때문만이 아니다. 이장관과 노동부가 추진하는 개혁의 방향과 성격이 새 정부 개혁의 잣대처럼 비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장관은 ‘태풍의 눈’ 인 셈이다. 정가 일부에서는 그를 개혁 세력과 기득권 고수 세력이 대치하는 접점에 서 있다고 평한다. ‘진보 장관’이라는 별명이 붙은 지는 이미 오래다. 역대 정권에서는 어느 노동부장관도 이장관처럼 주목받는 위치에 있어 보지 못했다. 그가 주목받는 이유는 또 한가지 있다. 벌집 쑤시듯 노동계를 발칵 뒤집어놓았던 무노동 부분임금지침을 내놓고 한발짝도 물러서지 않을 듯이 보였던 이장관이 결국은 뒷전으로 물러섰기 때문이다.

 이장관은 취임한 지 한달이 갓 넘은 지난 3월 29일 국회 노동위 월례회의 자리에서 노동계의 ‘태풍’을 예고했다. “대법원 판례와 어긋나는 노동부의 각종 행정지침은 곧 모두 정비하겠다”는 것이 그의 제일성이었다. 그리고 이장관은 한국자동차보험 김준기 회장을 부당노동행위로 소환 조사함으로써 첫 행동을 보였다. 파란이 일었다. ‘노동부는 사용자편’이라는 기존 인식을 완전히 뒤엎어버린 것이다.

 사용자측은 긴장하기 시작했고, 재계를 안심시켜 투자 의욕을 고취하려던 신경제팀은 이장관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이장관은 김회장 소환에 앞서 이렇게 말했다. “이 문제는 새 정부 노동정책의 시금석이자 시험용이다. 절대 흐지부지 처리하지 않겠다.” 김회장을 소환한 것이 얼마나 충격으로 받아들여졌는지는 당시 노동부 관료들의 반응에서 나타난다. 노동부의 한 관계자는 “아무도 아무 말을 하지 못했다”라고 말한다.

법치주의가 이장관의 소신
 김회장 소환에 이어 이장관의 개혁 행진은 계속됐다. “인사 ․ 경영권 참여를 목적으로한 노조의 쟁의행위도 절차만 적법하면 불법으로 볼 수 없다.”(5월12일 국회 노동위 발언) “해고 효력을 다투는 근로자의 조합원 자격을 인정키로 한다.”(5월15일 노동부 방침 결정) "파업 기간에도 생활보장적 성격의 임금을 지급할 수 있도록 하겠다.“(5월18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무노동 부분임금 원칙 적용 방침 밝힘)

 노조의 인사 ․ 경영 참여 문제야말로 노동현실에서 가장 민감한 사안이었다. 한국경영자총협회(이하 경총) 등 경제 단체들이 들고일어났다. 첫 발언을 한 지 사흘후 이장관은 “노조의 경영권 참여 요구는 부당하지만 요구 자체를 불법으로 보지는 않겠다는 의미”라고 예봉을 누그러뜨리려 했으나 여의치 않자, 이틀후 ‘근로자의 근로 조건에만 한정한다’는 단서를 달아 최종 입장을 정리했다. 이장관의 일방통행에 제동이 걸리기 시작한 것이다.

 13대 국회 때부터 이장관을 보좌해 같이 일해온 공인노무사 蔡浩一씨는 “과거 권위주의 정권은 대법원 판례와 모순되는 지침이 무엇인지조차 밝히려 하지 않았다. 이장관이 새로운 노동 정책을 제시한 것이 아니다. 법치주의가 이장관의 소신이다”라고 말한다. 노동부의 입장도 이와 마찬가지다. 노동부의 한 관계자는 “지금까지는 노사관계에서 노동부가 중립을 지키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노사 모두로부터 신뢰를 받지 못했다. 이제 노동부는 중립으로 돌아가려 한다. 사용자 쪽으로 기울어있던 것을 똑바로 세우자니 현기증이 나고 당황하는 것이다. 예상됐던 부작용이다. 노사양쪽으로부터의 신뢰 회복이 당면 과제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노동계 현실을 외면할 수 없는 ‘샌드위치 부서’ 노동부의 입장은 곤혹스럽다. “이장관 지침이 객관적으로는 백번 옳다. 하지만 그 원칙을 과연 현실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다.”

 법대로 원칙대로 하겠다는 이장관의 소신은 여러 곳에서 검증된다. 민주당 노동위 소속인 申溪輪 의원도 “국회 속기록을 통해 이장관의 과거 야당 때 입장을 모두 검토해보았다. 지금과 다를 게 없다. 이장관이 취하고 있는 노동지침 정비는 바른 해석이고 용기있는 행동이다”라고 말한다. 법외 단체인 전노협도 이장관의 개혁 조처를 환영하지만 내놓고 거들지는 못하는 입장이다.

“노동부 단독으로는 개혁 추진 힘들다”
 ‘경제부처 장관 중에서 그나마 개혁 인사는 이장관뿐’이라는 말은 이제 정설이 되어버렸다. 서울시립대 강철규 교수는 “신경제팀이 보수성향으로 물꼬를 잡으면 노동부 단독으로는 개혁을 추진하기 힘들다. 노동부장관이 누구냐라는 것보다 정부 전체의 성향에 따라 개혁의 정도가 좌우된다”라고 말한다.

 이장관이 맞닥뜨린 현실의 벽은 높다. 우선 재계가 강력하게 반발한다. 겨우 안정되어가는 노사관계를 뿌리째 뒤흔든다는 게 재계의 일관된 주장이다. 지난 5월 29일 투자동향을 파악하기 위한 이경식 부총리와 업계의 간담회 자리에서는 재계의 불평이 터져나왔다. 노동부의 정책 변화가 노동자들에게 높은 임금 인상을 요구하도록 부추기고 있다. 신경제 1백일 계획의 뼈대인 고통분담에 대한 노동자들의 참여 분위기가 사자지고 있다는 등의 불평은, vygusd이 완곡했다 뿐이지 노동부정책에 대한 전면적인 부인이었고 이장관에 대한 압력이었다. 경제기획원과 상공부 등 신경제 1백일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경제부처도 속으로 앓는 소리를 냈다. 경제부처 일부에서는 청와대 박재윤 경제수석비서관과 이장관의 힘 겨루기로 상황을 파악하기도 했다.

 민자당이 이장관을 쳐다보는 시선은 더욱 곱지 못하다. 이장관이 무모동 부분임금 적용 문제를 거론했을 때는 같은 민주계의 한 핵심 당직자는 이장관의 노동정책을 반대했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우선 기업 활동을 활성화하기 위해 특별법까지 강구하는 마당에 노동부가 무노동 부분임금 적용 정책을 펴면 모든 기업이 반대하고 나설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기업의 협조 없이 어떻게 신경제가 가능하겠는가. 노동 행정도 형평 감각이 있어야 한다. 원칙을 중시하는 이장관의 노동행정에는 공감하지만 시기가 좋지 않다.” 한마디로 이장관이 현실을 무시했고 정치 감각이 둔했다는 평가다. 이 당직자는 또 경제 활성화가 새 정부의 당면 목표라면서 “당이나 행정부가 경제에 실패할 경우 곧바로 김영삼 대통령의 통치 부담으로 연결된다. 그렇게 만들 수는 없다”라고 말한다.

 신경제팀 일부에서는 새 정부가 비장의 무기로 가지고 있던 것을 이장관이 미리 써먹는 바람에 휴지조각이 되어버렸다고 불평하기도 한다. 시기가 맞지 않아 신선감을 떨어뜨렸고, 이제는 노사분규의 위기 상황에서 새 정부가 써먹을 카드가 없어졌다는 불만이다. 시기상조론을 편 민주계 핵심 당직자의 시각과 일치하는 부분이다.

 이장관이 현재 처해 있는 입장은 행정부에 있든 당에 있든 개혁주체 세력의 일정 부분을 정유하고 있는 민주계 출신 인사들이 겪는 공통적인 어려움이다.

 사용자측은 이장관의 노동 정책에 적대감마저 품고 있다. 중소기업인 ㅅ주식회사의 ㅈ사장은 노동부 정책을 조목조목 반박한다. 그는 무노동 부분임금과 관련해 “일하기 싫은 자는 먹지도 말라고 했다. 무노동 부분임금은 어불성설이다. 회사 간판만 달면 장마비에 샘물 솟듯 이익이 쏟아지는 줄 아는데, 노동현장에서 땀 흘려 보지 않은 사람들이나 하는 말이다”라고 경제 활성화 조처도 언발에 오줌 누는 격이라서 실효를 거두기 힘든 마당에 노사분규를 부추기는 듯한 정책을 시행하면 어떻게 되겠느냐“고 반문하면서 ”과거 노동자 한 사람 봉급이 쌀 한 가마니 값이었다. 지금은 쌀 몇 가마니 값보다 한달 봉급이 더 높다“라고 말한다. 경총 등 경제 단체도 표현만 완곡할 뿐 근로자의 고임금 등과 관련해 ㅈ사장의 입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

 ‘노동자 봉급이 쌀 한 가마니 값’이었던 시대의 논리를 펴는 사용자측과, 법치 행정을 강조하면서 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하려는 이장관 논리 사이의 괴리. 신경제팀의 경기부양 우선 논리도 이장관의 법치 행정 우선 논리와는 거리가 멀다. 게다가 정작 노동 행정을 적용받는 당사자인 사용자와 노동자의 입장도 사뭇 다르다. 노동부의 한 관료는 노동부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입장을 호소한다. “과거에는 집단적인 노사 대립에 정부, 즉 노동부가 개입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제는 자율성 원칙에 따라 노동부는 조종자 위치에서고 문제 해결은 노사에 맡기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노동부는 산재 예방이나 근로자 복지등 개별적 노사관계에 치중하려 한다. 그러나 노동부가 개입하지 않는다고 문제가 풀리는 것은 아니다. 노동부가 개입하지 않더라도 노사 양쪽으로부터 왜 개입하지 않느냐, 적극 행정을 펴지 않는다고 비난받기 일쑤다.”

이장관의 독창적 노동 정책은 없어
  강철규 교수는 시대의 변화를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지금은 산업구조 조정기다. 과거는 저임금 장시간 노동의 ‘조립 시대’였다. 이제는 ‘설계 시대’다. 노동력의 질이 바뀌어야 한다. 노동의 질이 한단계 높아져야 하는 것이다. 저임금 장시간 노동정책으로는 국제 경제에서 살아남기 힘들다”라고 말한다. 그는 또 “노동부도 그런 생각은 가지고 있지 않은 것 같다. 비전이 없다는 말이다. 대법원 판례에 까르겠다는 노동 정책 변화도 수용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노사가 의사를 공동으로 결정한다는 논리는 기대하기 힘들다”라고 지적한다.

 이장관은 합리적 보수주의자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노동위 소속 국회의원에서 노동부장관으로 자리를 바꾼 후 새 정부 내에서조차 미운 오리새끼 취급을 받긴 하지만, 새로운 노동 정책을 제시한 것은 없다는 비판도 있다. 비정상적인 노동 행정을 정상상태로 되돌려 놓으려 한 것일 뿐, 그리고 과거 관행에 비추어 볼 때 노동행정지침 정비가 획기적인 조처로 받아들여졌을 뿐 사실은 이장관이 독창적으로 제시한 새 노동 정책은 없다는 말이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경총의 한 관계자는 이장관을 노사가 벌이는 한판 경기의 심판에 비유했다. “이장관이 노동자의 권익 보호 입장에 서 있는 것은 사실이다. 심판은 판정을 번복하면 신뢰받지 못한다. 그리고 심판은 여러번 봐줄 필요가 없다. 결정적인 순간에 한번만 봐주면 된다.”

 7월초쯤 노동부는 노동법 개정안을 선보일 예정이다. 노동법 개정안이 ‘핵폭탄’이 될지 ‘불발탄’이 될지 주목된다.
李興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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