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국 지키는 미국속유대인
  • 워싱턴ㆍ이석렬 특파원 ()
  • 승인 1991.02.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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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성향은 ‘진보’ ··· 62%가 팔레스타인인 추방 반대
지난해 부시 대통령이 동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점령지로 규정하자 의회가 벌떼 같이 들고 일어나 이를 반박하는 결의안을 내놓았다. 또 73년에는 이스라엘ㆍ아랍 전쟁 이후 의회가 이스라엘과 교전한 나라들에게는 미국 무기를 팔 수 없다고 결의하여 계약이 취소 됐으며 75년에는 당시 포드 대통령이 미ㆍ이스라엘 관계를 재조정하려 하다가 70명의 상원의원들이 연명으로 이를 중지하라는 연판장을 돌려 뜻을 이루지 못했다. 유대인의 막강한 영향력을 실감케하는 예이다.

 그러나 지난 40년 동안 미국이 꾸준히 이스라엘을 지원한 것이 전적으로 미국에 사는 유대인의 로비 활동에 의한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어떤 집단도 미국의 대외정책 결정을 좌우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대부분의 미국인이 이스라엘에 친근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레이건 시절 미 · 이 관계 급속히 밀착
 미국인은 미국과 같은 정치제도를 갖고 있는 이스라엘을 중동의 유일한 민주국가로 생각하고 있다. 또 같은 주데오 크리스찬(기독교와 유대교)으로서 기독교의 성지인 이스라엘에 대해 문화적으로나 종교적으로나 깊은 애착을 느끼고 있다. 게다가 이스라엘이 나치 독일의 유대인 대량학살 이후 세워졌기 때문에 이 나라를 돕고 보호할 책임이 있다는 잠재의식을 갖고 있다.

 닉슨과 카터의 대이스라엘 정책은 이스라엘의 전략적 가치를 고려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보다는 다른 아랍국과의 관계를 생각한 나머지 중간입장의 조정자로서 균형을 유지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그러다가 미국과 이스라엘이 갑자기 ‘전략적 동맹관계’로 밀착된 것은 소련에 대한 군사력 우위로 공산주의 팽창을 막는 것을 으뜸가는 정책목표로 삼은 레이건 행정부가 들어서면서부터이다. 81년 두나라 국가원수는 양국간의 공동 정치 및 군사협의체 발족을 선언하고 두나라 대표가 주기적으로 만나 군사ㆍ안보문제는 물론 경제발전을 의논하기로 했다.

 이로써 미국은 명실공히 이스라엘의 ‘보호자’요 ‘대부’라는 사실을 확인한 셈이다.
 기본적으로 레이건의 대외정책을 그대로 물려받아 집행해오고 있는 부시 행정부는 3년째  악화일로에 있는 이스라엘 점령지역내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봉기와 이에 대한 이스라엘의 무자비한 탄압으로 샤미르 정권과 긴장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걸프전쟁 이후 이라크가 스커드 미사일로 이스라엘을 공격하면서부터 군사 및 경제원조를 더 늘리기로 하는 한편 앞으로 있을 전후문제 처리에서도 이스라엘을 따돌리는 일이 결코 없을 것이라고 약속함으로써 두나라 관계는 다시 긴밀해지고 있다.

 대이라크 전쟁개시에 앞서 있은 미 의회의 ‘무력사용 승인’ 결의는 유대계 미국인의 로비 활동으로 근소한 표차이로나마 통과되었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가 걸프 위기에 대처해오면서 이스라엘의 강한 반발을 무릅쓰고 사우디아라비아에 첨단 전투기 F-15 24대를 팔기로 결정했을 때나 예루살렘 서쪽 성벽에서 있은 팔레스타인인 학살문제로 유엔에서 미국이 앞장서서 이스라엘의 만행을 규탄한 결의안을 내놓았을 때도 ‘막강한’ 유대인 압력단체들이 침묵한 것을 보면 유대계 미국인의 힘에도 한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6백만명에 달하는 유대계 미국인을 대변하는 단체는 대부분 60년대 이후에 생겼는데 그중 약 70개가 비교적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버드대학의 슈트어트 아이젠스타트 교수는 유대계 미국인은 대부분 모국 이스라엘의 정치에 관심이 거의 없으며 정치적으로 진보적인 성향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친이스라엘을 내세운 레이건이 88년 선거에서 유대계 미국인 30%의 지지를 받은 반면 듀카키스 민주당 대통령 후보는 70%의 지지를 받았던 것이 그 증거이다.

 이스라엘이 점령한 웨스트 뱅크에서 팔레스타인 원주민을 추방하는 데 찬성한 사람은 불과 7%인 데 반해 반대는 62%나 되었다.

 또 유대계 미국인 시사잡지 가운데 《티쿰》같이 팔레스타인의 인권을 보장하고 자치제도를 주장하는 진보적인 색채의 잡지는 재정이 흔들리지 않지만 《프레센트 탠스》나 《모멘트》 같은 중도 내지 보수적인 잡지는 문을 닫을 위기에 있다.

 어쨌든 유대계 미국인의 이러한 성향은 걸프전쟁을 마무리짓는 과정이나 그 뒤에 필연적으로 뒤따르게 될 아랍ㆍ이스라엘 문제해결을 위한 협상에서 부시 행정부가 좀더 현실적인 방안을 들고 나올 수 있도록 운신의 폭을 넓힐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줄 수도 있다는 점에서 일단 환영할 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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