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권의 새 지도자 꿈에 부푼 이집트
  • 카이로ㆍ진철수 유럽지국장 ()
  • 승인 1991.03.07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군사ㆍ외교 입지 강화 노려…사우디 등의 경제원조도 기대

이집트 카이로 거리에서는 반미ㆍ친이라크 데모를 도무지 찾아볼 수가 없다. 배기가스와 모래먼지가 자욱한 거리에는 자동차들과 보행자들이 부딪칠 듯 말 듯 아슬하슬하게 공존을 계속하는 교통 무질서가 있을 따름이다. 대규모 반미데모가 빈발하고 있는 모로코ㆍ알제리 등 다른 북아프리카 아랍국가들 수도와는 매우 대조적인 상황이다. 어찌된 일일까. 진보적 야당인 사회노동당 당수 이브라힘 초크리씨의 설명은 간단했다. ‘경찰국가’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지난 2월9일 그는 몇몇 야당의 간부들과 함께 반미 행진을 시도했으나 경찰이 저지하는 바람에 1백m도 못나가서 해산당했다. 무바라크 정권은 민심의 동요를 우려하여 대학개교를 최근까지 늦추었으며 스포츠 행사를 취소한 일도 있다. 사담 후세인을 지지하는 여론이 있기는 해도 억제돼 있는 상태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집트 국민 사이에 이라크에 대한 반감이 상당히 크게 도사리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라크가 이란과 8년간 전쟁을 하는 동안 약 1백50만명의 이집트 사람들이 이라크에 취업했으며, 이들이 모국에 송금한 금액은 연간 총 10억달러에 달했다. 전쟁이 끝나자 재정난에 직면한 이라크는 이들의 송금을 중단시켰고, 심지어는 이집트 사람들이 구타 등 학대를 당하거나 살해되는 사례까지 생겼다.

이집트 사람들은 1948년 이스라엘이 탄생된 이래 아랍권의 권익을 위한 전쟁을 다섯 차례나 수행하는 과정에서 이집트가 남달리 큰 희생을 감수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군인과 민간인 사망자수는 도합 2만명이 넘는다. 이집트 사람들은 아랍권의 대국으로서 큰 역할을 담당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다른 아랍국가들이 그만큼 평가해주고 있는지 의심스럽게 여기고 있는 것이다.

또 79년에는 이스라엘과 정식 수교를 함으로써 이집트는 아랍권에서 독보적인 존재가 되었으며, 그때 대부분의 아랍국가들은 이집트와 국교를 끊었다. 81년 사다트 대통령이 암살된 뒤 후임 대통령이 된 무바라크는 꾸준한 노력 끝에 아랍연맹 21에 전회원국과 국교를 회복했으며 튀니스로 옮겨갔던 아랍연맹 본부도 카이로로 되돌아왔다.

무바라크 대통령과 그의 측근들은 앞으로 중동의 전후질서를 구축함에 있어서 군사적ㆍ외교적 측면에서 이집트가 아랍권 지도자의 위치에 서게 될 것이라는 기대에 부풀어 있다고 보도되고 있다. 무바라크 대통령의 견해를 반영하는 신문으로 알려진 <알 아람>의 편집국장 살라마 아메드 살라마씨는 중동평화를 위한 관계국 협의 결과에 따라 이집트 병력이 사우디아라비아와 기타 걸프국가에 주둔하게 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말했다.

이집트의 전후역할에 대한 견해는 물론 전쟁이 장기화하지 않음으로써 무바라크 대통령의 대외정책에 대한 국민의 대체적인 지지가 유지될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며, 또한 전쟁결과로 이라크의 군사위협이 충분히 감소되리라는 것도 전제로 하는 것이다.

이집트는 특히 경제적 측면에서 전후 중동상황이 자국에 크게 유리하게 돌아가게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일찌감치 반이라크 연합군 전열에 참여한 이집트(참여병력 3만8천명)는 이미 외채 중 미국이 70억달러, 걸프국가들이 70억달러의 부채탕감 조처를 약속하고 있으므로 총 5백억달러였던 대외부채가 근 절반으로 줄어들 전망이다. 그러나 이집트 정부는 앞으로 국제통화기금(IMF)의 긴축재정책 권유를 받아들여할 입장에 있으며, 에너지 가격의 상향조절, 이집트 파운드質의 평가절하 등의 조처를 통해 경제안정을 도모해야 할 것이다.

걸프국가들의 지원자금 기대
그러나 이집트 정부는 걸프국가들이 과거에 팔레스타인(PLO)과 시리아 그리고 이슬람 원리주의 세력에게 제공하던 지원자금을 앞으로는 중동지역의 ‘보호자’ ‘중재자’ 역할을 맡은 이집트쪽으로 많이 돌릴 것이라는 기대를 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우디 혼자서도 연간 10역~20억달러의 원조는 가능할 것이라는 예측도 나돌고 있다. 그뿐 아니라 이집트측은 걸프국가들이 과거에 많이 고용하던 예멘 사람들 대신 이제는 이집트 사람들을 다수 취업시킬 것이며, 나일강변의 각종 개발계획에도 적극 투자하게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라크가 거세되는 상황에서 전쟁이 마무리될 경우 전후질서를 잡는 데 있어 아무래도 결정적인 발언권을 가지게 될 미국에 대한 이집트의 기대 또한 크다. 이집트는 미국의 지원을 받아 한편으로 시리아와 이란의 야심을 견제하면서 중동지역의 지도자로서 지나치게 미국에 의존한다는 것 그 자체가 아랍세계에서는 큰 부담이 될 것이라는 점에도 유의해야 할 것이다. 더구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간의 대립관계가 해소되지 않는 한 미국과의 밀착은 피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