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가톨릭 ‘한몸’에서 두 목소리
  • 김당 기자 ()
  • 승인 1991.04.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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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 平放사태 이어 반월노동사목 폐쇄 … ‘진보’ 교회쇄신운동으로 대응

“주교님, 죽어서 천당에 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살아서 이땅에서 인간답게 사는 것도 중요합니다.”

 “교구장 임기제는 교회쇄신의 첫걸음입니다. 평화방송은 세상의 빛과 소금이어야 합니다.”

 “평방사태 침묵하는 주교단은 각성하라!”

 최근 천주교 교구청과 주교회의가 열린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그리고 명동성당 앞에서 간헐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신자들의 피킷시위와 농성에서 흔히 보거나 들을 수 있는 구호들이다. 교회 내부 문제를 밖으로 표출하는 데는 비교적 참을성이 강한 가톨릭의 이같은 변화는 그동안 물밑에서만 전개되던 보수?혁신의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 가톨릭 내부갈등 중 겉으로 불거진 대표적인 사례는 수원교구(교구장 김남수 주교)의 반월노동사목 폐쇄와 공권력을 투입해 기자를 구속시키기에까지 이른 서울대교구(교구장 김수환 추기경)의 평화방송 사태이다.

 반월노동사목(노동교육상담소)폐쇄사건은 지난해 3월 김남수주교(한국천주교 주교회의 의장)가 경기도 안산시 반월공단 안에 있는 원곡성당을 방문, 성당 안의 노동사목 활동을 중단하라고 지시한 데서 출발했다. 그 이후에도 김주교는 수차례 걸쳐 원곡성당 신부에게 노동사목 사무실을 폐쇄하라는 압력을 가하였는데, 그 이유는 “노동사목이 주교회의 비공인단체인 가톨릭노동사목전국협의회(회장 윤순여)에 가입해 활동하고 있고, 노동사목이 노동운동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에 신자들이 교회에 나오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다.

 결국 이 사건은 노동사목전국협의회 실무진과 청년신도들을 중심으로 11월16부터 사흘간 수원교구청에서 ‘반월 노동사목 폐쇄철회를 위한 기도회’를 갖고 피킷시위를 벌인 끝에 당시 주교회의를 앞두고 있던 김남수 주교가 철회라는 표현은 쓰지 않았지만 “새로 오는 신부와 상의하되 가톨릭이란 이름을 빼고 노동상담소라는 이름을 지어놓고 활동하자”는 쪽으로 양보하는 선에서 끝났었다.

 그러나 지난해 12월 새로 부임한 본당신부(황규철 신부)가 최근 사목협의회의 결정으로 “3월20일까지 노동사목 사무실을 폐쇄한다”고 공고함으로써 노동사목 폐쇄를 둘러싼 갈등이 재연되고 있다. 이에 대해 노동사목 관계자들은 “반월노동사목재폐쇄 조처는 가톨릭 전체의 보수화구도 속에서 살펴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지난해 가을 주교회의 의장으로 재선출된 김남수 주교를 비롯해 가톨릭을 보수화로 이끌고 있는 세력의 노동운동을 보는 시각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갈등표출 도화선은 평방 ‘진압’
 현재 가톨릭의 진보세력들은 가톨릭을 보수우경으로 이끄는 대표적 인물로 주교회의 의장인 김남수 주교와 평화방송 재단이사장인 서울교구 총대리 김옥균주교 그리고 지난해 한국 민주화와 관련 파문을 일으킨 로마교황청 대사 이반 디아스 대주교등을 꼽고 있다. 특히 이들 진보세력들은 공권력투입과 기자구속이라는 비교회적인 방법으로 더 악화된 평화방송 사태를 계기로 교회 내부의 전반적 보수화흐름에 쐐기를 박을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 사제와 신도로서 용인되는 최대한의 대응자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3월4일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천정연) 등 5개 단체 주최로 전진상교육관(서울 중구 명동)에서 열린 ‘평화방송 정상화를 위한 토론회’도 그와 같은 대응자세의 하나로 풀이된다. 이날 참석자들은 “교회의 대표적 평신도기구로서 ‘내탓이오’운동을 펼치고 있는 평신도사도직협의회가 이번 사태를 두고 ‘내탓이오’라고 외치기는커녕 오히려 경영진의 입장을 지지하고 나서는 등 교회분위기를 흐려 원만한 해결을 어렵게 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이번 사태를 계기로 정말 교회가 살아날 수 있으려면 진짜 ‘내탓이오’ 하고 진정한 회개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같은날 춘계 주교회의가 열리는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서울 성동구 능동) 건물 입구에서는 전국가톨릭청년단체협의회등 5개 단체를 중심으로 한 ‘교회쇄신과 평화방송 사태 해결을 위한 천주교 청년학생대책위원회’(회장 박영대) 회원 20여명이 피킷시위를 벌이는 한편 ‘존경하는 김수환추기경님과 주교님들께’라는 글을 전달했다. 특히 청년신자들은 “바티칸대사 이반 디아스는 즉각 물러나야 합니다” 등 구호를 외치며 10여분간 디아스 대사가 탄 차량을 둘러싸고 실랑이를 벌였다. 이날 개회된 주교회의는 당초 7일까지 열릴 예정이었으나 어수선한 분위기가 계속되자 이틀만에 서둘러 폐회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3월7일에는 천정연?가톨릭농민회 등 9개 평신도단체로 구성된 ‘평화방송 정상화를 위한 대책위원회’가 명동성당 입구에서 신자 5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한국 천주교회의 거듭남을 위한 촛불기도회’를 가져 주목을 받았다. 이날 대책회의는 “평화방송사태는 디아스 교황청대사의 발언 파문, 수원교구 반월노동사목 폐쇄 움직임 등 몇년 전부터 변화하고 있는 교회의 모습에 뿌리를 둔 현상이다”라고 전제하고 “먼저 평신도가 교회쇄신에 앞장설 때에만 갈림길에 서 있는 교회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밝혔다. 대책회의는 현재 매주 금요일마다 기도회를 가지는 한편 평화방송 정상화 촉구 서명운동, 리번달기 등을 통해 교회쇄신 운동을 전개하고 있는데, 구속자 재판을 앞두고 3월28일 명동성당에서 다시 대대적인 철야기도회를 열 계획이다.

교구 주보마다 ‘노선’다르다
 평신도들이 교회쇄신 차원에서 평방사태를 풀기 위해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는 반면 평신도들의 기대와 주목을 받고 있는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하 사제단)은 겉으로는 좀처럼 나서지 않는 신중함을 보이고 있다. 사제단은 지난 3월4일 비상상임위원회를 열어 노사 양측에 대해 비공개로 중재노력을 기울이기로 결정, 몇차례 중재에 나섰으나 성과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사제단은 3월18일에도 대전에서 확대상임위원회를 열고 평방사태를 깊이 논의했다. 사제단 관계자에 따르면 이날 회의 참석자들은 평화방송 사태가 단순한 노동쟁의가 아닌 교회 내부의 보수적 흐름이 6공화국의 언론정책과 들어맞아 일어난 것으로 자칫하다가는 교회 지도부 전체가 보수화할 우려가 있다는 데에는 인식을 같이했으나 교회내부의 분열로 비칠 수도 있는 공식대응은 신중히 결정하기로 했다고 한다.

 그러나 평화방송 사태와 관련, 회사쪽의 강경책이 계속되는 가운데 서울교구에서는 “회사는 오래 참고 설득해왔는데 노조가 회사의 실체를 부정하고 있기 때문에 취한 불가피한 조처”라는 경영진의 정당성을 홍보하는 <서울주보>와 함께 사보 <평화방송>을 뿌렸다. 또 광주?인천교구에서는 공권력 투입을 비난하는 주보와 노조 회보 <평화노보>를 뿌려 교구 주보마다 ‘노선’이 다른 천주교의 분열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처럼 보수적 평신도 단체를 중심으로 펼치고 있는 ‘내탓이오’운동과는 정반대로 가는 -어쩌면 ‘갈 데까지 간’-노선갈등은 ‘내탓이오’운동으로까지 변질되는 느낌이다. 또 노조와 회사쪽은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른 것을 서로 ‘사장 신부를 잘못 뽑은 탓’과 ‘기자들을 잘못 뽑은 탓’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내탓인지, 네탓인지, 누구를 잘못 뽑은 탓인지는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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