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와의 대화 모순 극복하려는 큰소리
  • 김당 기자 ()
  • 승인 1991.05.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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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반핵장편소설 ≪검은 노을≫낸 박혜강씨

 한번 잃어버린 것을 되찾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것이 누군가의 주머니 속에서 모물이 아닌 우리들의 삶의 터전이고 더 나아가 온 인류가 공유해야 할 자연과 환경일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최초의 반핵장편소설’로 여겨지는 ≪검은 노을≫이 제1회 실천문학상을 받게 된 으뜸가는 배경은 잃어버린 공동체를 되찾으려는 작가의 노력에 있을 것이다. 실천문학상 심사위원회는 박혜강씨의 ≪검은 노을≫을 “사회변혁의 세계관에 바탕하여 우리 현실의 모순을 이해하고 극복하려는 노력을 보인 점에서 실천문학상이 지향하는 바와 일치하는 작품”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를 ‘작가의 말’로 옮기자면 “말 그대로 잔소리에 불과한 것”인 소설을 “잔소리가 아닌 큰소리”로 만든 공에 있을것이다.

 80년대 첫발을 내디딘 ‘실천문학’이 보다 더 진보적이고 성숙한 리얼리즘 문학을 창출하는 과제로 떠안은 ‘민중성과 예술성의 결합’이라는 기준에서 보자면 이번 첫 번째 수상작은 민중성에 더 무게를 둔 듯하다. 작가는 핵발전소 건설에 대한 농민들의 다양한 반응과 투쟁에 이르는 과정을 그리면서, 맑은 공기를 마시며 살 자유와 삶의 터전에서 쫓겨나지 않고 살 자유를 억압하는 것의 정체가 무언인지를 끈질기게 파헤치고 있다.

 3년 동안의 집요한 취재에 작가가 판 다리품은, 소설의 초입과 대미를 장식한 풍물에 대한 뛰어난 묘사와, 소설 전반에 걸친 건강한 토속어의 구사로 드러난다. 그래서 이 작품을 읽노라면 때때로 ≪녹두장군≫(송기숙)이나 ≪장길산≫(황석영)의 일부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또 가끔은 ≪객지≫(황석영)나 드라마 <똠방각하>를 보는 듯하다. 무엇보다도 작가는 이 소설에서 농민봉기 노가다판 운동권 땅투기판 등의 현장을 총체적으로 다루어 ‘연대의 틀’을 짜내려고 애쓴 흔적이 엿보이기 때문이다.

 박혜강씨는 이 작품에서 르포와 소설의 결합을 시도했다고 말한다. 실재 인물과 허구 인물이 혼재하는 까닭도 거기에 있다. 역사적 사실이라는 뼈대에 작가의 상상력이라는 살을 붙인 작품일수록 그 메시지가 독자에게 강렬하게 전달되기 마련이다. 물론 함평고구마사건이니 돼지파동이니 하는 어설픈 뼈대는 짜임새를 흐트러뜨려 가끔 드라마 <야망의 세월>을 보는 기분이 들게 하기도 한다. 이런 허술함은 민족수난사와 계급모순을 모든 등장인물을 통해 보여주려는 작가의 과욕에서 비롯된 것이라 해도 크게 틀리지 않겠다.

 이 작품이 반핵소설의 처음은 아니다. 얼른 떠오르는 것으로도 전남대 ‘5월문학상’수상자인 정도상씨의 중편소설 ≪겨울꽃≫이 있다. (박혜강씨는 광주 조선대학을 나왔다.) 핵발전소는 고리(경남)에도 울진(경북)에도 있는데 영광(전남)을 무대로 한 반핵소설만 나오는 것도 특이하다. 그러나 핵을 비롯하여 작가가 반민중적이라고 규정한 모든 것들이 ‘5월 광주’와 뗄 수 없는 관계임을 인정하면 그리 이상한 일도 아니다. 작가에게 ‘그해 5월’은 작가가 핵폭탄과 원자력의 매개물로 상정한, 춘옥네가 체험한 ‘그해 8월’처럼 “아무것도 존재하지 못하게 철저하게 파괴시키며 살판을 죽을 판으로 뒤집는 괴물”이기 때문이다.

 군복무중에 터진 5월 광주의 현장에 접근하지 못했던 죄책감과 두려움 탓에 ‘5월’을 다루지 못했던 작가는 앞으로 6권쯤 되는 대하소설로 5월을 담을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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