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회 기능 마비가 혼란 불렀다
  • 정리·서명숙 기자 ()
  • 승인 1991.05.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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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달중 / 지배권력이 개혁의지·실천 보여야 한다. 최장집 / 정당 중심 민주화가 선결과제이다

 장달중: 현재 상황이 ‘정치적 위기’라는 인식에는 정부·야당·시민세력·재야 모두 일치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정치적 위기의 성격이나 원인에 대해선 정치세력의 입장에 따라 견해가 상당히 다릅니다. 정부 내에도 두 흐름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한 흐름은 “현 위기는 어디까지나 소수의 과격파에 의한 체제전복운동의 일환”으로 규정하고 단호히 대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또다른 한 흐름, 즉 어떻게든 내각총사퇴와 개혁조처 등으로 위기국면을 수습해보자는 정부 내의 온건개혁파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갈등구조로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반면 재야세력은 기득이익을 공고화하려는 지배세력과 지연되는 민주화에 대한 저항없이는 근본적으로 민주화가 불가능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습니다. 야당의 경우는 정권퇴진운동을 둘러싸고 입장 차이는 있지만 총괄적으로는 강경 입장인 정부와 재야의 중간 입장인 것 같습니다. 제도적 대안, 즉 내각총사퇴와 개혁입법 등을 통해 현재의 보수회귀화 현상을 시정함으로써 이 정치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다만 이 위기를 정권퇴진운동과 결합시켜야 하느냐, 민주화에 대한 충격법으로 만족해야 하느냐에 대해선 야당간에 입장 차이가 있다고 보여집니다. 이같은 정치세력의 향배를 좌우할 수 있는 것이 시민세력인데, 제가 파악하기에는 최근 저항운동에 대한 시민세력의 심정적 동조가 상당히 큰 것 같습니다. 이것이 이번 정치적 위기의 중요한 함수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최장집: 5월9일 저녁 서울시내 여러 곳에서 대규모 집회와 데모행렬을 지켜보았습니다. 참여한 학생·노동자·시민세력의 범위와 규모가 6월항쟁을 방불케 할 만큼 대단하더군요. 물론 87년 6월항쟁만큼 시민들이 적극적이고 분명하게 참여하진 않았지만, 심정적 동조를 피부로 느낄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이것은 이번 위기의 폭과 깊이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현재의 위기는 6월항쟁 이후 민주화 요구 수준은 매우 높아졌는데 이에 대응하는 집권세력의 행태나 정책이 과거 군부 권위주의 정치체제하의 태도나 관념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했고, 그 결과 양 세력간의 민주화 인식수준의 격차가 너무 커진 데서 빚어진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현 정부는 이 복잡한 위기상황에 대처하는 확고한 비전과 지도력을 못가진 게 아닌가 하는 인상을 받게 됩니다. 보수 기득세력과 경찰·안기부 등의 강권적인 국가기구에 일차적으로 의존하면서 표류하고 있어서 위기를 더 가중시키고 있습니다.

 장달중: 그렇다면 6공화국의 민주화가 뒷걸음 치게 된 원인을 진단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민주화가 시작된 87년 이후 의회를 중심으로 한 정치세력과 노멘클라투라(특권간부 또는 특권적 관료기구)간의 대결과 갈등구조가 수서사건 이전까지는 그런대로 균형을 가지면서 진행돼왔다고 봅니다. 그런데 수서사건을 계기로 기득권층이 결정적으로 우위를 점하게 되었습니다. 4당체제하에선 의회를 중심으로 정치가 이뤄지고 민주화 결실을 기대할 수도 있었는데, 한국정치 주도세력으로서의 의회 역할이 상실되고 대신 기득권층이 재등장하게 된 것입니다. 이번 위기를 계기로 의회와 기득권층간의 대결구조가 체제세력과 반체제세력의 대결구도로 갑자기 확산되고 전이된 듯한 느낌도 듭니다.

 최장집: 6월항쟁 이후 정당과 의회의 기능이 급작스럽게 부각된 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6월혁명 자체가 민중에 의한 정권을 창출하는 데 실패한 ‘불완전한 민주혁명’이었기 때문에 국가의 강권적 관료기구인 안기부나 경찰 등은 그대로 유지되는 불안한 균형상태이기도 했지요. 그러다 89년 4월 이른바 공안정국을 시작으로 내부의 권력구조가 역전됐다고 봅니다. 공안정치는 정치공간을 점점 좁히고 의회기능을 약화시키는 한편, 의회 밖에서는 일반시민들의 민주화 요구에 역행하는 현상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공안정치는 당장은 공안세력의 승리를 담보해주는 것처럼 보였지만, 결국은 이번 위기에서 입증되듯이 오히려 보수 지배세력 전체의 이익을 위협하게 된 것이지요.

 장달중: 6월항쟁이 지녔던 한계와 기본적인 제약성을 지적하셨습니다만, 이 항쟁이 시민사회의 힘이 국가권력과 균형을 이룰 정도로 비대해졌고 따라서 시민세력의 힘을 무시한 정치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 것만은 분명합니다. 그럼에도 6공하에서 민주화가 지연된 이유를 세가지 정도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첫째가 흔히 외국에서는 한국사회의 정치문화가 기본적으로 권위주의적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하는데, 이런 견해에는 개인적으로 동의하고 싶지 않습니다. 80년대 한국 정치문화는 60년대보다 훨씬 개방적이고 민주적으로 변화했는데도 우리가 경험한 정치는 60년대보다 훨씬 더 억압적인 형태였지 않습니까. 두번째, 기득세력의 힘이 지나치게 크다는 점입니다. 기득세력 내에서 잠시 시도됐던 개혁이 좌절된 것을 보더라도, 민주화와 개혁을 지연시킬 수 있는 기득세력의 물적·사회적 기반이 더 커진 것 같습니다. 세번째로, 이 불완전한 민주혁명의 완수를 가장 큰 목표로 추진해온 재야운동 세력이 어느날 갑자기 민족혁명으로 전환된 인상을 받게 됩니다. 시민민주혁명과 민족혁명이 맞물려들어간다고 볼 수도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민족통일 우선 움직임이 기득세력에게 사회민주화를 지연시킬 시간과 명분을 준 게 아닐까요.

 최장집: 우리 사회의 시민세력이 국가권력을 제어할 정도로 성장한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그러나 민주화에는 국가권력에 대한 시민사회의 권력증대라는 측면 외에도, 지배권력에 대한 민중권력의 증대라는 측면이 있습니다. 5공과 6공의 핵심 지배권력은 군부·관료엘리트·독점재벌 3자 동맹이라고 봅니다. 특히 6공 들어 군부세력이 일부 후퇴하면서, 재벌세력이 군부가 남겨둔 정치적인 공백을 급속히 메우는 양상이 나타났습니다. 민주화가 이렇게 지지부진한 데에는 민주화과정을 부정적으로 인식해온 대기업의 영향력이 크게 작용했습니다. 민주화의 한계는 경제력 집중화 현상을 어떻게 조정하느냐 하는 문제와도 직결돼 있는 것이지요.

 장달중: 우리나라의 민주화운동은 매우 특이한 양상인 것 같습니다. 세계사적으로는 독립적인 부르조아 계층의 등장이 민주화의 결정적인 변수가 돼왔습니다. 우리의 경우 그동안 경제성장 과정에서 독립적인 부르조아 계층이 상당히 성장했는데도 이 세력이 민주화를 촉발하는 세력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대신 학생·종교집단 등 비경제적 세력이 민주화운동을 주도하는 특이한 양상입니다. 우리나라 민주화운동은 경제적 변화과정과는 별개의 독립적인 변수를 가진 것으로 보일 정도입니다. 하지만 이번 민주화운동을 경제적 측면에서 설명할 만한 상황이 많지 않습니까. 시민들의 심정적 동조에는 공안 정국이라는 정치상황만이 아니라, 물가와 주택난 등 경제사회적 불안에 대한 좌절감도 크게 작용했다고 보여집니다만….

 최장집: 민주화에는 두가지 측면이 있다고 봅니다. 첫째는 군부독재에 정치적으로 저항해온 시민의식의 형성과 발전인데, 민주화를 크게 촉진해왔습니다. 다른 한면으로는 민중적인 측면이 상당히 중요합니다. 우리는 서구처럼 진보적 부르조아지가 국가권력에 맞서고 민주화를 쟁취한 게 아니라, 오히려 군부독재와 밀착돼 형성되어왔습니다. 그런 만큼 진보적이기보다는 권위주의적이고 민주화에 역행되는 의식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나라의 민주화에는 국가와 대기업 중심의 경제성장으로부터 소외되고 배제된 민중세력이 경제적 권리의 요구, 생존권을 주장하는 측면이 동시에 포함돼 있습니다. 민주화과정에서 비단 정치적 민주화만이 아니라 경제적 민주화까지 이중적으로 해결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지요. 지배권력이 문제를 풀기에 더 어려운 요소이기도 합니다.

 장달중: 정치위기의 성격과 원인을 살펴보았으니, 이제 해결책을 이야기해보지요. 지금은 시민세력이 완전히 권력을 잡아서 부르조아 민주혁명을 일으킬 수도, 그렇다고 집권세력이 저항세력을 억눌러서 억압 정치를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닌 듯합니다. 혁명이냐 개혁이냐 하는 질문이 나올 수 있습니다. 흔히 과거와의 완전한 단절없이 개혁은 이뤄지지 않는다고 이야기하지만, 스웨덴과 같은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은 혁명없이도 민주화를 달성했습니다. 이런 사례가 주는 교훈은 지배엘리트들이 혁명 직전의 상황에서 그 심각성을 인식하고 문제 해결의 의지와 능력을 보여야 한다는 것, 그것도 단순한 개혁이 아니라 혁신적인 개혁을 주도하지 않으면 주기적인 사회혼란과 위기를 극복하기는 힘들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지배세력에게 사회적 저항의 평화적 해결을 도모하려는 의지가 있는가, 또 의지를 갖고 있다하더라도 리더십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혁신적 개혁이 이뤄질 수 있는가 의문입니다. 노내각이 물러나더라도 신임 내각이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대통령의 뜻과 개혁의지를 충실히 이행하리라는 보장이 없는 것 같습니다. 결국 이런 상황에선 의회라든가 정치제도의 문제가 상당히 중요할 것 같은데요.

 최장집: 혁명적 개혁없이는 현재의 정치적 위기상황을 극복하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집권세력은 민주화와 개혁에 대한 국민의 열망이 얼마나 강렬한가를 인식해야 합니다. 6월항쟁이 이미 있었고 또 지금 그런 상황이 눈앞에 벌어지는데도 개혁의지를 보이지 않는 게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따라서 정당체제 문제가 우리나라 정치위기를 극복하는 데 있어서 가장 선결 과제가 아닌가 합니다. 하지만 이 정당체제라는 것도 여당은 권위주의적인 체제하에서 당내 민주화의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발전하지 못했고, 야당은 야당대로 끊임없는 탄압과정 속에서 정당 기능이나 당내 민주화 등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습니다. 우리 사회의 발전속도는 굉장히 빠른데도, 사회체제를 대표하는 정당들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 채 조직이나 행태면에서 구태를 답습해 온 것입니다. 산업사회의 변화와 다양한 이해관계를 반영하지 못하는 구태의연한 정당구조가 정당 중심의 민주화를 일궈내는 데에는 오히려 저해 요인이 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정당체제는 민중적 이익을 대변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현재 정당지지 심리가 급전직하로 떨어진 것은 야당에 걸었던 기대감이 좌절됐기 때문입니다. 이는 권위주의 통치의 산물이기도 하지만 상당 부분 야당의 책임도 있습니다. 차제에 사람도 다르고, 조직체계도 다르고, 이념도 다른 형태의 야당이 출현해 민주화를 주도해야 하는게 아닐까요. 대만의 경우가 그랬잖습니까.

 장달중: 지난날의 4당체제야말로 한국 여론을 자연발생적으로 표출한 것이라 봅니다. 사실 정당의 조직원리도 한 사회의 조직원리에 바탕을 둔 것인만큼 사회현실을 고려해야 한다고 봅니다. 어쨌든 지금 현실은 ‘밑으로부터의 저항’과 지배권력이 교착상태를 이루어 있어, 좌로도 우로도 혁명이 불가능한 상황인 것 같습니다. 이럴 때 지배엘리트들이 ‘위로부터의 개혁’에 대한 의지와 방법을 보여야 할텐데요.

 최장집: 혁명은 아니더라도 정말로 혁명적 방법의 개혁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장달중: 저는 ‘혁명적’이라는 표현보다는 ‘혁신적’이라는 말을 쓰고 싶습니다. 어쨌든 정당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의회를 한국정치의 본류로 되돌려놓는 게 급선무인 것 같습니다. 사실상 6공 초기에 의회는 정치세력의 본류로 등장했는데, 어느 때부터인가 달라졌습니다. 체제적으로는 경제세력이 권력공백을 대체했고, 정치적으로는 월계수회 같은 비공식 세력이 실세로 등장했습니다. 이제 의회를 정치의 본류로 삼고, 그 공간에서 개혁입법 등이 이뤄지도록 국민과 정부가 함께 지원해야 합니다.

 최장집: 의회의 기능복원에 공감하면서 한가지만 덧붙이고 싶습니다. 경제발전과정에서 소외되고 억압된 민중적 이익을 대변할 수 있는 혁신정당이 진출해 그 이익을 반영하고 대변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이런 조건을 마련하기 위해선 국가보안법 폐지와 악법 개폐등이 제대로 이뤄져야 합니다. 왜곡된 부의 축적과 분배구조를 시정하고 바꾸는 경제민주화가 향후 민주화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과제가 돼야 한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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