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열기 누르지 말아야
  • 정리·변창섭 기자 ()
  • 승인 1991.05.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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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순승 / 통일지향 정부가 실현 가능한 통일방안 내놓아야 한다. 김남식 / 통일을 핵심에서 뺀 국내·외교정책은 실패작이다

 조순승: 현재와 같은 난국의 촉발제는 물론 강경대군의 치사사건입니다. 그러나 분신사건의 기저에는 바로 통일문제가 깔려 있다는 점을 지적해야 할 것입니다. 금년에도 8·15범민족대회가 다가오면서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서서히 통일열기가 달아오르고 있습니다. 이를 정부에서 눌러버리면 문제가 커질 것입니다.

 김남식: 작금의 소요사태는 통일문제와 긴밀히 연결돼 있다고 봅니다. 재야나 학생들은 통일과 연결된 민주화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가끔 민중통일론이란 얘기를 듣습니다. 민주화, 특히 경제 민주화가 이뤄지지 않으면 민중통일론은 자꾸 확산되리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소외계층은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받지 못하는 민주화를 기대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대담한 개혁이 필요한데, 이 개혁이 부진할 경우 바로 통일문제와 연결됩니다. 통일되면 지금 체제보다는 낫지 않겠느냐 하는 기대감 때문입니다. 등록금 문제·수서비리·물가고 등이 통일과 연결됐을 때 ‘민중통일론’이 득세하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현재의 난국을 수습하려면 민주개혁, 특히 경제와 분배의 개혁을 이루고 이를 통일문제에 연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조순승: 해방 후 통일논의는 여러번 그 모습이 바뀌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통일문제가 정권안보적 차원에서 이용돼왔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지요. 그렇게 되니 자연 통일문제는 국민에게 좌절감만 안겨주었습니다. ‘통일=좌절’이란 등식이 오늘날까지 이어져오고 있습니다. 우리 국민은 마음속으로는 누구나 통일을 염원하고 있는데 이를 실현시킬 수 있으려면 통일지향적 정부가 출범해 실현가능한 통일방안을 내놓아야 합니다. 불행하게도 과거의 역사는 그렇게 못했고, 바로 그점 때문에 젊은이들의 불만이 폭발했다고 봅니다.

 김남식: 50년대 진보당 사건 이후 그간 별로 통일정책이 없었습니다. 72년 7·4남북공동성명 후 남북조절위를 통해 남북대화를 이끌어왔는데 70년대에 3단계 통일방안이 나왔습니다. 이 방안은 먼저 남북관계의 평화적 정착을 이루고 다음으로 교류·협력을 실현하며 마지막으로 통일을 이룬다는 것이지요. 80년대에 들어와 ‘민족화합민주통일방안’이 등장했습니다. 이 방안은 중간 과정 없이 정상회담을 통해 기본관계를 설정하고, 그런 연후에 교류·협력을 강화해 국가연합을 이루어가자는 것입니다. 6공에 들어서는 ‘한민족통일방안’이 나왔습니다. 이 방안은 중간 단계인 민족연합, 즉 국가연합을 거쳐 통일하자는 것입니다.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80년대 들어서 정상회담이 남북관계 개선에 있어 늘 일차적인 문제로 부각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북한은 늘 통일방안을 내세우기 전에 “정치·군사적 긴장상태를 해소하고 휴전상태에서 평화상태로 환경을 조성한 후 교류를 하자”고 전제조건을 내세웠습니다. 북한측의 고려연방제안도 미군철수·보안법 철폐 등을 통해 먼저 ‘통일환경’을 만들자는 것이었으나 우리측은 이를 무장해제 측면에서 바라보았습니다. 따라서 남북 당국간에 심한 불신이 존재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조순승: 통일의 열기가 지난 2~3년 동안 식었다는 얘기가 있으나,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신민당도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이 왜 우리는 통일이 안되는가 하는 의구심을 갖고 있습니다. 이같은 배경에는 지난89년 동서독의 통일, 예멘의 통일이 크게 작용한 것 같습니다. 최근 국제의원연맹총회에 참석차 8박9일간 북한을 방문했습니다. 북한의 통일열기는 남한에서 생각하는 것 이상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소년궁전에 갔더니 어린 소녀가 “통일이 된다고 약속하면 이 글씨를 주겠다”고 말할 정도입니다. 북한은 통일이라는 슬로건을 가지고 전 국민을 단결시키고 있습니다. 정치학자 라스웰은 국가 전체를 통합할 수 있는 슬로건이 없을 때 국가의 체제는 약화된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현 노태우 정권의 크나큰 약점 가운데 하나가 통일이라는 심볼을 가지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북한사회가 안정성을 가지고 있는 것은 통일이라는 하나의 심볼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성세대는 아무래도 안정을 추구하는 면이 강해 젊은 층에 비해 통일열기가 낮을 것입니다. 이탈리아의 통일도 따지고 보면 학생운동에 힘입은 바 큽니다. 민족사적으로 볼 때 학생의 힘에서 나오는 통일기운은 크나큰 운동으로 발전해나갈 수 있다는 증거이지요.

 김남식: 통일열기가 고조되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젊은 학생들은 임수경양이 89년 평양에서 열린 세계청년축전에 참가한 모습을 비디오로 다 봤습니다. 학생들이 흥분하는 것은 자연스런 일입니다. 이렇게 볼 때 이념이나 체제가 뭐 그리 대단한 것이냐 하는 생각을 가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작년에 8·15범민족대회가 판문점에서 열렸고, 고위급회담도 서울과 평양에서 잘 되었습니다. 이런 것을 보고 일반 대중은 남북한 통일문제에 뭐 그리 걸림돌이 많은가 하는 의문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이같은 의문을 갖게 된 데는 합의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 정부가 설득력있는 설명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고위급회담도 당국만 믿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일부 사람들 사이에 퍼지기도 했습니다. 고위급회담이 중단되긴 했지만 남북은 탁구 단일팀 구성에 성공했습니다. 남북한 선수가 한팀이 돼 외국 선수와 겨루는 모습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46년간의 단절이란 것은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다”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대중은 정권 차원의 대화보다는 체육교류와 같은 것을 통해 남북관계 개선이 그리 어렵지 않다 하는 느낌도 강하게 가졌을 것입니다. 이런 점에 자극받아 재야나 민주세력이 향후 모든 것을 통일문제와 연계시키는 작업을 계속하리라 봅니다.

 조순승: 이번에 국제의원연맹 평양총회 기간에 북한의 조국평화통일특별위원회 부위원장 윤기복씨와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김일성이 80년에 내놓은 고려연방제안은 연방정부가 외교권과 국방권을 보유한다는 내용이기 때문에 우리 정부가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윤기복이 ‘1민족1국가2체제’안을 들고 나왔습니다. 그는 2체제와 관련, 남북이 지방정부를 구성하며 외교권과 국방권을 각각 보유한다는 말을 했습니다. 이는 상당한 변화입니다. 따라서 현실적으로 남북 양측은 통일방안에 있어서는 접근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정부의 통일의지가 아닌가 합니다.

 김남식: 전적으로 동감입니다. 북한은 60~70년대에 과도적인 통일방안을 내놓았다가 80년 10월에 국가 형태로서의 연방안을 내놓았습니다. 그후 83년에 최고민족연방회의 의장과 상설회의 위원장을 복수로 추천해 윤번제로 운영하자고 제안했습니다. 그러나 89년 문익환 목사가 월북해 조평통측과 얘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북측은 단번에 연방제를 수립할 수도 있고 점진적으로 할 수도 있다고 하는 등 신축성을 보였습니다. ‘고려’라는 명칭도 고집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올해 김일성의 신년사를 보더라도 처음에는 지역정부에 권한을 일부 주되 점진적으로 연방정부에 권한을 위임한다는 얘기를 했습니다. 이것을 실무자선에서 구체화한 것이 바로 외교권과 국방권 문제입니다. 이런 흐름을 볼 때 북한이 처음에 내놓은 고려연방제는 연방국가와 국가연합의 절충형이었으나 지금은 국가연합쪽으로 기울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다시 말해 북한의 통일방안은 연방이란 ‘틀’만 갖추면 국가연합도 좋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는 우리가 주장하는 민족연합이라는 것과도 부합되는 것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봤을 때 방법상에 있어 남북은 크게 차이가 없습니다. 남북의 한반도 통일방안은 상당히 근접해 있는데, 정부가 이를 실현하려는 의지를 가지고 있느냐가 중요한 문제입니다.

 조순승: 13대 국회가 시작됐을 때 우리는 정치권을 초월해 범민족 통일자문기구를 만들어 제도권 밖에 있는 사람들의 의견도 수렴하자고 주장했습니다. 그대신 정부의 평화통일자문회의를 폐지하자는 것이였죠. 그러나 정부는 이러한 우리의 제안을 거부하고, 국회내에 ‘통일특위’를 구성했습니다.

 김남식: 통일문제의 주체는 민중입니다. 지금까지는 통일문제를 놓고 국민의 여론을 수렴하는 과정이 별로 없었다고 봅니다. 수렴하는 과정도 극히 한정된 범위내에서 정부측 사람들에 의해 행해졌습니다. 심지어 국회의 의견도 수렴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국민은 통일방안에 대한 여론을 왜 수렴하지 못하는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북한의 제의를 국론분열을 노린 술책이라고 비난하지만 우리 스스로 통일문제에 대한 의견수렴을 하지 않은 것도 반성해야 합니다. 북측의 제의를 비난만 할 것이 아니라 여론수렴 과정을 거쳐 우리의 통일방안을 빨리 도출해내야 합니다. 최소한 정치권에서만이라도 통일방안을 ‘통일’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정부의 안만 일방적으로 밀고나가려고 하면 국민이 따라가지 않을 것입니다.

 조순승: 이번 국제의원연맹총회 때 독일대표단을 만났는데, 저에게 이런 얘기를 해서 깜짝 놀랐습니다. 즉 독인 통일이 한 5년이나 10년 뒤에 이루어졌으면 훨씬 좋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현재 독일은 통일의 후유증으로 몸살을 심하게 앓고 있습니다. 빌리 브란트 전 총리의 얘기처럼, 적어도 5년 정도 동서독이 교류를 증진시켜 동독의 경제수준이 서독과 비슷한 수준으로 올라갔을 때 통일이 이루어졌으면 그런 부작용이 크게 줄어들었을 것이라는 지적이지요. 그런 얘기를 염두에 두면서 북한을 다시 관찰해보니 빠른 시일내에 완전한 통일을 이룬다는 것은 상당히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좀더 시간이 지나면 가능성이 매우 높아질 것입니다. 제가 보기에 북한은 근대화를 이룰 수 있는 골간은 돼 있습니다. 다만 살이 안 붙어 있는 것 같습니다. 살을 붙이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면, 예를 들어 북한이 일본으로부터 40억원을 받든 1백억원을 받든 될 수 있으면 많이 받도록 내버려둬야 합니다. 그리고 합영법 같은 것을 통해 무엇이든지 자꾸 만들어내도록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북한 사람들의 생활이 윤택해질 수 있다면 통일을 위한 기본적 요건이 충족되는 것입니다. 현재 서로 심하게 불신하고 있습니다. 불신의 제거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70년대 독일에서 브란트나 슈미트가 했듯이 라디오방송이나 통신 등을 서로 개방해야 합니다 북한 주암산초대소에서는 KBS 라디오방송을 전부 들을 수 있더군요. 이 정도라면 서로 탁 터놓고 통신을 개방해 서로를 좀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통신개방이나 체육교류 등 비정치적 분야에서 교류를 해나가고, 한편으로는 우리도 북한이 잘 살 수 있도록 지원해줘야 할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쌀 같은 것을 주고받을 때 큰소리로 떠들 게 아니라 서로 말없이, 우리는 쌀을 주고 북한으로부터는 석탄 같은 것을 받아오면 될 것입니다.

 김남식: 2차대전 이후 냉전체제하에서 분단됐다가 통일을 이룬 독일과 베트남을 비교해봅시다. 독일형은 흡수통일이고 베트남은 무력통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통일방안을 한반도에 적용할 수도 없고 바람직하지도 않다는 게 일반적인 견해입니다. 우리는 이런 경험을 잘 연구해 좋은 방안을 택할 수 있으리라 봅니다. 그래서 그 절충형을 찾으라고 한다면, 양체제가 반세기 동안 서로 다른 체제를 유지해왔기 때문에 갑자기 하나가 되는 것은 어려운 문제이고, 각기 독자적인 활동을 하는 공존단계가 불가피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고 일방에 의한 흡수통일이나 무력통일을 생각하게 되면 매우 어려워지겠지요.

 조순승: 그렇게 되면 큰 싸움이 일어나겠지요

 김남식: 더군다나 6·25도 있었기 때문에 역시 갈라져서 공존단계를 거쳐야 합니다. 그러나 그 공존은 단순한 공존이 아니라 통일지향적 공존이어야 합니다. 즉 남북한이 이 과정에서 통일이라는 하나의 목표에 대해 분명하게 약속하고, 그 다음에 양체제, 양국가가 공존하는 과도적 단계를 거쳐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러면서 서로 교류·협력을 통해 합칠 수 있는 것은 합쳐 나가고 합치기 어려운 것은 뒤로 미뤄가면서 점진적으로 해나가면 통일도 어렵지 않다고 봅니다. 현재 국제적으로 엄청난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다면 우리 민족은 낙오하고 말 것입니다. 이런 변화를 따라가려면 이데올로기나 체제 문제에 있어 지나치게 경직되어서는 안됩니다. 보수주의라는 것도 발전을 위한 보수주의여야지 발전을 저해하는 보수주의는 역사에서 저항을 받아 사라지게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조순승: 이번에 북한에 가보니까 북한 사람들은 95년이면 통일이 된다고 믿고 있더군요 김일성 주석이 그렇게 말했으니까 믿는 거죠. 우리도 NCC나 재야 등에서는 95년을 통일을 완성하는 해로 하자고 주장합니다. 95년이면 분단된 지 50년이 되는 해 아닙니까. 반세기를 분단상태로 지내왔으니 완전통일은 아니더라도 통일국가를 지향하는 어떤 국가 연합적 체제라도 만들 수 있도록 모든 사람들이 노력해야 할 것 같습니다. 통일을 핵심에서 빼버린 외교정책이나 국내정책은 실패작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통일을 국가이념의 핵심으로 삼아 민족을 하나로 단결시켜 이끌어갈 때 우리 민족의 앞날이 밝아지리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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