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유배달 하면서도 ‘참교육’ 걱정
  • 서명숙 기자 ()
  • 승인 1990.01.07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전교조 해직교사들 생활고 딛고 활발한 움직임 … 12 · 10 대의원대회로 조직 복원

 소위 전교조 해직교사인 李柱映(35 · 전 장충국민학교)교사는 12월11일 저녁부터 13일 4시까지 만44시간을 ㅅ경찰서에서 보냈다. 여느 해 이맘 때 같으면 방학과 제물준비, 성적처리, 아이들과 학급문집 만들기, 비행학생 지도대책에 여념이 없을 터인 데 엉뚱하게도 경찰서 신세를 진 것이다. 李교사가 경찰서에 연행된 이유는 이날 오후 전국에서 모여든 해직교사 1천여명과 함께 명동성당에서 ‘해고교사 원상복직’을 외치는 시위를 벌이고 이어 문교부를 찾아가 책임있는 당국자와의 면담을 요구했기 때문이었다.

 이날 연행된 6백여명 가운데 주동자를 찾아내려는 경찰의 조사가 계속되는 동안 신원만 밝힌 채 묵비권을 행사한 이교사는 경찰로부터 ‘빨갱이 교사’ ‘공부 가르치기 싫어하는 선생’ ‘정치좋아하는 선생’ 이라는 폭언을 여러번 들었다.

 ‘정치선생’으로 낙인찍힌 李교사는 원당 국민학교, 탑동국민학교, 장충국민학교를 거치는 동안 이른바 ‘모범교사’였다. ‘청소년 지도를 잘한다’고 서울시장 표창을 받기도 했고 아이들을 끔찍히 아낀다고 동료교사들로부터 ‘페스탈로치’라는 소리도 들었다. 하지만 이런 개인적 지도만으로 교육현장에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한계를 느끼던 터에 지난 5월 전교조 소식을 들었다.

 반가운 마음에 망설임 없이 가입했다. 그러나 5월28일 전교조가 공식출범하고 가입교사 명단이 공개되자 학교 교장과 동료교사, 가족들의 끈질긴 사퇴압력에 시달려야 했다. 워낙 아이들을 좋아하는 천성이라 학생들을 못 볼지도 모른다는 것 때문에 가장 큰 갈등을 느꼈지만 끝내 버티었다. 그러자 서울시 교육위원회로부터 7월16일에 징계위원회를 여니 출두하라는 통보가 날아들었다. 자기변론을 할 수 있는 진술시간은 15분. “교직생활 14년을 15분만에 변론할 수는 없다”며 충분한 시간을 달라고 했지만 7월18일자로 일방적인 파면 결정을 통고받았다.

 그로부터 무려 1백50일이 지났지만 습관탓인지 지하철만 타면 예전에 근무했던 학교 근처 동대문역에 내리기 일쑤고, 밤마다 수업하는 꿈만 꾼다는 李교사는 누가 보아도 ‘천생 교사’다. 그런데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정치교사가 되고 말았다”고 씁쓸하게 웃는다.
 지난 7월1일 문교부의 ‘전교조 가입교사 일괄 해직’ 방침이 선 이래, 끝내 탈퇴서를 내지 않아 쫓겨난 교사들은 전국의 초 · 중고교에서 모두 1천5백19명. 전교조 사태로 구속된 집행부 교사만도 64명에 달했다. 당초 해직 방침이 공표될 때만 해도 ‘3~4백명선의 시범적인 해직’ 정도에 그칠 것으로 생각했던 전교조로서는 예상치 못했던 대대적인 ‘숙청사태’였다.

현직교사들의 후원금으로 생계 해결
 해직교사들이 가장 먼저 부딪힌 것이 생계문제였다. 그러나 전교조쪽에서는 ‘후원회’제도를 마련해 현장에 남아 있는 교사들이나 사회인사들로부터 지회별로 후원금을 받기 시작했다. 전교조 李守浩사무처장은 “최근 전국지회를 통해 들어오는 후원금은 한달에 4~5억원에 이른다”며 “부양 가족수, 생활형편에 따라 모든 해직교사들에게 적게는 12만원, 가장 많은 경우엔 30만원 정도의 생계비를 지급한다”고 밝힌다.

 4가족의 가장인 金英國(34 · 전 성심여고)교사는 지난달에 자신이 속한 중서부지회에서는 가장 많은 29만5천원을 받았다. 그는 이 돈으로 “그럭저럭 생활은 꾸려나가지만 매달 붓던 적금과 보험을 해약하고 국민학교에 다니는 큰아이의 웅변학원과 둘째딸의 유치원을 그만두게 했다”고 털어놓는다. 그러나 점차 상황이 ‘장기화’하자 이런 감량작전만으로 견딜수 없는 교사들은 부업전선에 나서거나 부인들이 일자리를 찾아나서고 있다

 지난 11월초 盧雄熙(34 · 전 공항고)교사는 집을 비운 사이에 고등학교 1학년 여학생들이 살짜기 놓고 간 ‘쌀’ 한말 때문에 눈물을 쏟을 뻔했다. 그 쌀봉지에는 예쁜 리번으로 묶은 쪽지가 매달려 있었다. “선생님 힘내세요”. 노웅희교사의 아들이 유치원을 다니다가 그만둔 데다 부인이 아동용 도서 외판일을 하느라 모습을 보이지 않자 ‘부인이 살기가 힘들어 도망갔다’는 소문이 이웃에 퍼졌고 이를 전해 들은 여학생들이 우선 쌀 한홉씩을 거둔 것이었다.

 남편이 전도사여서 생활에 쪼달리는 崔모교사는 한달전부터 우유 배달에 나섰다. 그러나 지난 11일 명동집회 때 경찰서에 연행되는 바람에 아침배달을 걸러 보급소측으로부터 ‘안 좋은 소리’를 들었다며 崔교사는 “이 일도 오래 못할 것같다”고 걱정한다.

 한편 현직교사들이 전교조 후원금을 낸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지난 11월부터 문교부 노조대책반과 일부 일선학교에서는 ‘전교조 후원금’을 내는 현직교사들의 명단을 파악해 징계하려는 움직임을 보여 해직교사들의 분노를 샀다. 심지어 서울의 ㄷ 여중에서는 ‘전교조 휴지’를 판매하던 여학생이 담임선생님에게 매를 맞기도 했다. 한 해직교사는 “동료간, 사제간의 자연스런 정마저도 앗으려는 태도야말로 비교육적인 것이 아닌가”고 되묻는다.

 한 해직교사는 담임을 맞았던 국민학교 3학년 여학생으로부터 해직이후 童詩 편지를 받았다. “선생님, 우리 선생님 학교에서 쫓겨나서 우시나, 선생님, 오늘은 공부하시나” 하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실제로 해직교사들은 바빠서 울 틈도 없다고 말한다.

 7,8월의 대량해직과 집행부 구속, 현직교사들의 대거 탈퇴이후 한동안은 ‘전교조 사수’에 급급했던 해직교사들이 본격적인 ‘전교조 복원’에 나선 것은 지난 9월부터.
 9월24일에 ‘전교조 탄압 철폐를 위한 제2차 국민대회’를 개최한 데 이어 10월18일에는 야댱당사에서 전국 동시 철야농성을 가졌다. 그 열흘 뒤인 10월28일에는 2만여명이 참가하는 ‘참교육을 위한 국민걷기 대회’를 ‘조용하게’ 끝내 전교조의 유연성을 과시하기도 했다.

 그런 한쪽에서는 ‘전교조 민족문학의 밤’ ‘자살 학생 위령제’ ‘시낭송의 밤’등 일련의 문화행사를 여는 한편, 학생들의 편지를 모은 《선생님 힘내세요》, 교육현장의 모순을 지적한 무크지 《교육현장》을 펴내는 등 활발한 출판 · 문화 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그런 탓에 李敦執(27 · 전 성서중학교)교사는 “매일 밤 10시가 넘어서야 집에 들어가는 등 학교에 있을 때보다 오히려 더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고 말한다.

 이런 정지작업을 바탕으로 전교조측은 12월10일 인천제일감리교회에서 기습적인 제2차 임시대의원대회을 열었으며, ‘이제 학교에 남은 전교조 교사는 없다’고 장담해온 문교당국을 깜짝 놀라게 했다. 지난 6월 제1차 대의원 대회를 치르면서 조합원 명단을 공개해 대량해직의 찬서리를 맞았던 전교조는 현직교사들이 참여하는 이 대회를 철저히 비밀에 붙여 진행시켰다. 대회 암호명은 ‘월동대책’. 현직교사 출신 대의원은 ‘배추’로, 해직교사 대의원은 ‘무우’, 참가 내빈은 ‘연탄’, 대회장소로 안내하는 일은 ‘연탄수송’이라 명명했다.

대의원대회 암호명은 ‘월동대책’
 이날 오후2시. 첩보작전을 방불케 하는 비밀 작전 끝에 대의원 4백57명 가운데 ‘배추’ 대의원 3백10명과 ‘무우’ 대의원 1백47명이 참가해, 감옥에 있는 尹永圭위원장을 대신해 李富榮수석부위원장(43)을 위원장 권한대행으로 선출함으로써, 전교조측은 1시간만에 ‘김장 담그기’(대의원대회)를 끝냈다. 경찰과 문교부를 깜쪽같이 따돌린 채 기자들만 참관시킨 기습대회였다.

 전교조측은 특히 현직대의원들의 피해를 막기 위해 회의장 2층에 따로 모이게 하고 대회 직후에는 미리 빠져나가게 하는 등 철저하게 보호했다. 이 대회에 참가한 한 현직대의원은 이름을 밝히지 말아달라면서 “전교조 가입 후에 부모의 성화에 못이겨 탈퇴했는데 얼마전에 재가입했다”고 털어놓았다.

 대의원대회에서 전교조측이 밝힌 전체 조합원수는 현직교사 1만2천명에 1천6백여 해직교사와 4백여명의 대학교수를 합쳐 모두 1만4천명. 이 주장에 따르면 전교조는 출범 당시 조합원수의 80%를 확보한 셈이 된다. 대회를 치른 이후 전교조측은 “이제 당국도 전교조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낙관론을 펴고 있다.

 더우기 대의원회 대회가 끝난 지 열이틀만인 지난 12월22일, 이런 전교조측의 낙관론을 더욱 높이는 일이 발생했다. 해직교사로서는 처음으로 윤태웅(25 · 경남 대성고), 배은미(30 · 거창상고)교사가 학교재단을 상대로 낸 ‘해임 무효확인소송’에서 승소해 다시 교단에 서게 된 것이다.

 그러나 전교조 문제와 대의원대회를 바라보는 문교부측의 시각은 전혀 다르다. 문교부 노조대책반의 김덕환 장학관은 “대회장에 참석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 숫자를 믿을 수 없다”면서 “대회 이후 일선학교를 통해 알아봤지만 현직 교사로 다시 노조에 재가입한 교사는 공식적으로 단 1명도 없다”고 전교조의 주장을 부인하고 있다. 또한 전교조가 주장하는 교육개혁조치는 추진할 방침이지만 ‘법외노조’인 전교조만은 인정할 수 없다는 문교부의 원칙도 여전히 변함없다.

 어떻든 세밑의 대의원대회를 계기로 89년 한해를 ‘참교육’ 논쟁으로 들끓게 했던 ‘전교조 파문’의 불씨는 재연되어 새해의 숙제로 넘겨지게 되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