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동적 폭동'누명 벗고 재평가 받아야
  • 파리.진철수 유럽지국장 ()
  • 승인 1991.06.06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반체제 망명지도자 嚴家其

  “천안문사태의 중신평가(重新評價)."이것은 2년 전 천안문 대학살 직후 파리로 망명한 중국 민주화 운동 이론가 엄가기(48)의 중국 장래에 대한 기본적인 생각이다. 89년 천안문사태는 앞으로 '몇 해 안에' 재평가돼 중국에서 언론자유와 결사의 자유가 꽃피게 될 것이라는 것이 그의 전망이다. 중국 안에서 천안문사태는 '반동적인 폭동'으로 규정되어 규탄받고 있지만, 국내외의 압력 때문에 중국은 민주화될 수 밖에 없다고 그는 확신하고 있는 것이다.

  파리 시내 ‘민주중국진선'(한국식으로 번역하면 '민주 중국을 위한 연맹')의 본부에서 만난 엄씨의 자세는 놀라울 만큼 자신에 차있었다. 이 단체는 천안문사태 후 해외로 망명한 학생지도자, 해외 유학생, 화교들이 모여 만든 국제기구이다. 외국 정부와 언론 기관을 대상으로 홍보활동을 펴고 있는데 파리에 본부를 두고 미국 영국 독일 일본등 8개국에 지부를 가지고 있다. 회원은 2천여명이며, 본부 사무실은 시내 개선문에서 멀지 않은 조용한 주택가의 한 아파트에 자리잡고 있다.

  중국의 사하로프로 불리는 방려지와 함께 진보적 지식인을 규합, 정치개혁론을 펴다 결국 파리로 망명한 엄가는 89년 9월 이 단체의 창립은 선도하고 1년간 의장으로 일했으며, 지금은 실무를 떠나 이사로 물러앉아 연구와 집필에 전념하고 있다.

  중국 정권은 요즈음 인권 문제로 미국과 프랑스의 압력을 받고 있다. 미국 의회는 중국의 대미 수출에 큰 도움이 되고 있는 최혜국 대우를 계속해주는 대가로 천안문사태로 구속된 인사들의 석방 등 인권상황의 개선을 중국에 요구하도록 부시 정부에 압력을 넣고 있다. 프랑스의 롤랑 뒤마 외무장관은 최근 북경을 방문했을 때 인권상황의 개선을 중국 정부에게 요청했다고 기자들에게 밝혔으며, 그후 중국은 5명으로 구성될 프랑스의 인권조사사절단의 방문에 응하기로 했다.

  중국 정부 요인들은 반체제인사 석방을 요구하는 외국인들의 입을 막지는 않았지만, 그러한 사실은 언론에 일체 보도되지 않는다. 이러한 사실에 대대 논평을 요구하자, 그는 “李鵬 정권의 권력을 굳히려는 우민정책이며, 전제정치하의 이러한 현상은 종래에 도 마찬가지였다"고 말했다.

  외국의 동향에 관해 논평하면서 엄가기는 중국의 민주화에 대한 일본의 ‘무성의'를 비판했다. 지난 3월 미국의 경제주간지인《비즈니스위크》에 따르면, 일본은 중국과의 합작투자를 적극 확대하고 있다. 90년 1월부터 9월 사이의 합작투자는 2백18건, 3억7천5백만달러에 달했다(미국의 2배 가량), 이것은 일본 기업들이 한국이나 태국보다 생산비가 덜 드는 중국으로 시설을 옮기려는 추세와, 일본 상품의 대중국 수출부진을 극복할 필요성 등 경제적 요인 때문인 것으로 풀이되기도 한다. 그러한 일본이 중국의 민주화에 큰 관심을 쏟지 않는 것은 "무의식적으로 중국이 (민주화되어)강해지는 것을 바라지 않기 때문인지 모른다"라고 엄가기는 분석했다.

  그가 망명한 후 중국에 남은 가족이나 친척들이 불리한 처지에 놓이게 되지는 않았느냐고 물었다. 그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고 말했다. 그의 아들(18)은 천안문사태 후 약 1년만에 중국을 떠나 파리의 부모 곁으로 왔는데 그에 의하면 학교에서 선생이나 학생들이 망명한 아버지의 아들이라 해서 오히려 아껴주고 위해주더라는 것이다.

  엄가기는 동유럽과 소련에서 생긴 변화가 중국에 끼친 영향을 결정적이었다고 보고 있다. “중국 사람들은 공산당을 전혀 신임하지 않게 되었다"고 그는 말했다. 또 한가지의 민주화 요인은 경제성장이라고 그는 보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에 생활수준이 어느 정도 향상된 것이 사실??이라고 평가한 그는 중국은 앞으로 "시장경제를 지향하는 방향으로 나감으로써 근대화를 추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천안문사태 때 정치개혁을 요구한 시민과 학생들의 운동이 어디까지나 평화적이었음을 특히 강조하면서 “폭력은 새로운 재난과 전제를 낳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1911년 신해혁명 때도 그랬지만 역사적으로 폭력적인 정권을 엎기 위해 폭력이 사용된 것이 사실이지만 ??20세기말에 와서는 평화적인 방법을 통해서 변혁이 촉진된다"고 그는 말했다.

  최근에 있었던 이붕 총리의 북한방문에 대해서는 “예전에는 김일성과 차우세스쿠가 친구였는데 지금은 김일성만 남지 않았느냐"고 논평했다. 그는 중국이 앞으로 다당제들 도입하여 공산체제에서 탈피하게 되면, 북한에도 곧 변화가 올 수밖에 없을 것 이라고 내다 보기도 했다.

  해외에서 정치활동을 하면서 일신장의 위험을 느끼지는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위험은 전혀 없으며, 그 이유는 “만약 일신상에 무슨 문제가 생긴다면 크게 손해볼 사람들이 누구라는 것이 너무나  분명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문화혁명 10년사》라는 책을 함께 쓴 부인과 함께 급히 홍콩으로 탈출했지만, 어디로 갈 것인지 막막했다 한다. 여러 나라를 타진해봤지만, 받아주겠다고 선뜻 나선 나라는 프랑스뿐이었다. 파리 동북부의 조촐한 아파트에서 허술하기 짝이 없는 가구를 놓고 사는 그는 언제나 귀국할 수 있을까“아마 가까운 장래가 될 것입니다??3년, 5년? 그것은 너무 멀고…" 그는 맑게, 그러나 약간 서글프게 웃어보였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