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득권 버리고 ‘개편’아닌 ‘재편’을
  • 정종욱 (서울대교수·정치학) ()
  • 승인 1990.01.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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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쳐 모여’ 또는 짝짓기식 단순 구조변화는 국민여망에 위배

새해에 들어 집중적으로 거론되고 있는 정계재편의 논의는 원칙적으로 바람직한 일이다. 우리의 정치현실에 비추어보면 정계재편이 오히려 때늦은 감이 없지 않다. 동구를 휩쓸고 있는 정치변혁의 바람이 이땅에도 벌써 불어닥쳐야 했지만 그래도 경제성장이 가져온 물질적 풍요로움이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남북분단의 지속이라는 외적 조건 때문에 정치민주화에로의 대수술을 연기한 채 어정쩡한 상태로 시간을 끌어올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더이상의 우물쭈물이나 미지근한 태도가 통할 수 없게 되었다. 6?29선언 이후 2년반 동안 민주화 과정을 경험해오면서 정치계의 구조적 변화가 수반되지 않은 표피적 현상만으로서의 민주화가 얼마나 무의미한 것인지를 우리 모두가 실감했기 때문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해 지금의 與小野大의 4당체제는 민주정치를 조장하기는 커녕 오히려 이를 방해하는 역작용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제도적 걸림돌을 바꾸지 않을 수 없는 필연의 요구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해방 이루 한번도 재편다운 재편이 정치계에서 시도된 적이 없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이번의 정계재편이 일시적 불편을 해소하려는 근시안적 입장이나 정권유지나 쟁취의 정략적 술수라는 차원을 초월하여 다음 세대와 다음 세기를 생각하며 민족사적 시각에 입각하는 기본철학에 바탕해야 할 것이다.

정계재편의 기본원칙과 방향은 무엇보다도 권력집단의 이합집산이라는 측면을 배격하고 정치이념과 정강정책의 차이에 따라야 한다는 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 제도권 정치를 형성하는 4당은 근본적으로 성격의 차이가 없는 보수정당으로 규정지을 수 있다. 민주와 반민주의 구별이나 5공과 6공의 구별이 가능하다 하더라도 이는 어디까지나 보수노선이라는 큰 테두리안에서 행해지는 도토리 키재기에 불과하다.

따라서 이들간의 재편은 그것이 민주?공화와 민정?평민의 두 세력으로 나누어지는 것이든 민정?공화와 민주?평민으로 갈라지는 것이든간에 어디까지나 같은 보수세력내에서 이루어지는 合從連衡일 뿐 우리가 말하는 정치의 진정한 재편은 아니다. 自救의 필요성이 얼마나 절박하든간에 ‘헤쳐 모여’ 또는 짝짓기 식의 재편은 건전한 정당정치의 정착을 바라는 국민의 여망을 거슬리는 마키아벨리적인 행위에 불과하다.

물론 근본적인 정치판의 재구성을 위해서는 현재의 정치세력들이 그 기득권을 포기해야 하는 일이 우선되어야 하며, 이러한 일의 순서를 생각하면 현 제도권 정당의 헤쳐 모임이 불가피한 하나의 과정으로 이해될 수도 있다.

참신한 새정당 출현 없는 개편은 ‘改惡’
그러나 이 헤쳐 모임이 진정한 정계재편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새로 만들어지는 정당이 그 정강정책과 정치이념을 분명히 제시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헤치는 이유가 설명될 뿐 아니라 다시 모이는 재편의 명분이 정당화될 수 있다.

헤쳐 모임을 함에 있어서 또 하나 잊어서는 안 될 중요한 고려사항은 보수정당의 개편과 동시에, 보다 진보적이며 혁신적인 개혁지향 세력이 정당으로 출현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보수세력의 개편과 개혁세력의 출현이 합쳐질 때 비로소 의미있는 정계재편이 가능해진다. 새것의 출현 없는 옛것의 개편은 어디까지나 개편이고 개악이지 재편은 아니다. 재편이 기존세력만을 대상으로 해서는 아무런 가치없는 일이며 참신한 새세력이 하나의 들러리나 장식물이 아닌 정치의 주역으로 나타날 때 비로소 참된 의미를 갖는다.

90년대에는 많은 변화가 예상되고 있다. 지자제의 실시는 전국 각지에서 선거열풍을 일으킬 것이며 이 열기를 타고 92년에는 국회의원 선거와 93년에는 대통령선거를 치르게 되어 있다. 그래서 90년대 초반은 온통 ‘선거의 계절’이 될 전망이다. 뿐만 아니라 이 시기에는 남북한 관계에서도 상당히 빠른 변화가 밀려와 분단의 벽을 넘는 교류와 접촉이 본격화될 것이다. 이러한 사태발전을 고려하면 정치재편은 민주와 반민주, 보수와 개혁의 차이를 넘어 진보적인 사회주의이념까지도 수용할 수 있는 폭넓은 선택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정치재편을 권력구조와 직접 연계시키는 것이 반드시 바람직하지는 않다. 내각책임제로 헌법을 고쳐 다양한 정치집단 사이에 갈라먹기식의 자리분배가 가능하게 하려는 유혹이 강할 것이다. 전직 대통령이 국회 청문회에 나와야 했던 쓰라린 기억을 갖고 있는 우리로서는 대통령중심제가 최선의 선택은 아니다.

그러나 내각책임제는 정파간에 얽어매기식 제휴를 위한 수단이 아니라 代議民主主義를 실현하는 가장 효과적 방법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내각책임제는 정치를 투쟁이 아닌 책임있는 타협과 포용으로 이해하는 두개 이상의 진정한 국민 정당들의 존재를 전제하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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