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는 소유권 대상 아니다.
  • 김영청 (동국대교수 경제학) ()
  • 승인 1990.01.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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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와 빈곤》 헨리 조지 지음 金潤相 옮김 도서출판 무실 펴냄

 빈곤은 과연 숙명적인가? 사회가 발전하여 ‘물질적 진보’가 이루어지면 빈곤은 끝내 소멸할 것으로 보았으나, 상상을 초월하는 현대의 생산력과 부(富)의 축적에도 불구하고 빈곤은 여전히 존재한다. 그렇다면 ‘물질적 진보’는 그 자체에 빈곤을 배태하고 다니는가? 이런 수수께끼에 답하려는 것이 이 책이다.

이 고전의 핵심적인 명제 몇가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①토지의 사용없이 이루어지는 생산은 없다. 그러나 토지는 원래 인간의 노력이나 인간과 무관하게 주어진 자연이고, 자본과 노동으로 사회적 부를 생산할 원천이다. ②개인적인 부라도 사회적 부가 아닌 것이 있다. 노예의 주인이 얻는 부는 노예가 잃은 부와 같으므로 사회적 부는 아니다. 마찬가지로 토지가격의 상승은 지주 개인에게는 부가 되지만, 토지 임차인이나 매수인에게는 손실이 되기 때문에 사회적 부는 아니다. 사회적 부가 되자면 반드시 노동생산물이어야 한다. ③노동생산물은 노동과 자본, 그리고 지주에게 임금?이자 및 지대로 분배된다. 이윤은 임금이나 이자 중의 하나일 것이다. 그런데 자본(생산수단 등)은 그 자체가 노동생산물이고 마르크스의 소위 ‘대상화된 노동’이므로, 결국 노동 생산물은 임금과 지대로 분배된다고 볼 수 있다. ④여기서 지대는 리카도의 지대법칙으로 결정되고, 토지가격은 이 지대를 자본화한 금액이다.

그런데 경제적 진보가 급속도로 진전되고 있음에도 노동자는 왜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도의 임금으로 항상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가? 토지가격이 상승하면 노동생산물 중지대 분배분이 상대적으로 크게 증가한다. 그 결과 임금은 노동생산물 중에서 이 지대를 공제하고 남는 잔여로 결정된다. 그리하여 아무리 노동생산성이 높아도 지대가 그것보다 더 크게 상승하면 지대를 지불하고 남는 임금으로는 빈곤을 면치 못한다. 저임금은 아니더라도 노동자가 비싼 값으로 주택을 살 때는 저임금을 받은 결과와 같게 된다.

지가상승의 원인은 급격한 인구증가에 의한 경작한계의 확장과 도시화와 개발로 인한 토지생산성의 폭발적인 증대, 그리고 미래의 지가상승을 기대하는 투기라는 것이다. 이러한 지가상승은 마침내 노동의 투입과 생산을 저해하게 된다. 생산자가 지가상승으로 토지사용을 거부하게 되면 그 부분에서 생산이 중단되고, 그것이 다른 부분으로 파급되면 마침내 불황과 경제위기를 맞게 된다.

헨리 조지는 이러한 원인분석을 한 후에 그 해결책으로 조세수단을 들고 나온다. 그는 자본주의체제를 지키면서 불로소득인 지대에 100% 과세하자고 한다. 지대는 생산에 어떠한 도움도 주지 않으며, 단지 토지 사유제도에 기인하여 노동생산물을 무상으로 착취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어 정의와 자연법을 들어 토지는 소유권의 정당한 대상이 아님을 역설하고 귀납적인 결론 몇가지를 다음과 같이 덧붙이고 있다.

부의 분배가 평등한 사회에서는 정부가 민주화될수록 사회도 개선된다. 그러나 분배가 불평등한 사회에서는 정부가 민주화될수록 사회는 오히려 더 악화된다. 그리고 지가가 싼 나라에는 큰 부자도 없고 동시에 거지도 없다. 사치스러움도 없으나 절대빈곤도 없다. 그러나 지가가 비싼 나라에는 굉장한 풍요 속에 빈곤이 널리 존재한다. 1백년전의 헨리 조지가 어쩌면 오늘날의 우리 사회와 비슷한 현실을 이렇게도 훌륭하게 예언하였을까? 참으로 신기하다.

그러나 빈곤의 원인이 지대상승 때문이라는 결론은 보편적인 법칙은 아니다. 그 원인은 인간의 이기심을 무시한 생산수단의 사회적 공유일 수도 있고, 자본주의의 운동법칙일 수도 있다. 특히 진보와 빈곤을 분석하면서 자본과 노동간의 관계를 무시한 것은 이 고전의 흠결이라면 흠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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