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만에 조직역량 급성장”
  • 오민수 기자 ()
  • 승인 1991.06.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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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기 의장단이 보는 오늘의 전대협/“큰 몸집에 걸맞는 새 옷 입어야 할 때”

 87년 6월항쟁의 부산물인 전대협 5년의 ‘역사’는 전대협의 탄생을 지켜본 87년 신입생들이 벌써 사회인이 되어 있을 만큼 결코 짧지 않은 기간이다. 당시 전대협을 태동시킨 학생운동 주역들의 눈에 비친 오늘의 전대협은 어떤 모습일까.

 “이제까지 한국의 학생운동사에서 5년 이상 공안당국의 폭압을 이겨낸 조직은 전대협밖에 없습니다.” 제1기 전대협의장 李仁榮씨(27·당시 고려대 총학생회장·현 전민련 정책위원)는 이제 전대협은 학생대중에 완전히 ‘뿌리를 내렸다’고 보고 있다. 삼민투 민민투 자민투 애학투 등 숱한 화제와 사건을 일으키면서 결성·해체를 거듭했던 이전의 조직은 ‘의장과 몇몇 활동가만 잡혀가면’ 와해됐지만 전대협은 계속되는 ‘의장의 감옥행’을 겪으면서도 조직적으로 더욱 단단해졌다는 것이다.

 87년 9월 대구에서 열린 ‘지역감정 타파와 군부독재 종식을 위한 영·호남 시민학생 결의대회’에서 전대협 의장 자격으로 참석한 이씨는 10만 인파의 시위를 주도했었다. 그러나 그는 많은 ‘호위군중’ 속에서도 경찰에 붙잡히고 말았다. 당시 전대협의 조직역량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이와는 정반대의 사례가 지난 6월5일 한양대에서 벌여졌다. 이날 경찰은 김종식 전대협의장이 한양대에서 정원식 총리서리 폭행사건에 대해 기자회견을 한다는 정보를 입수, 김군을 연행하기 위해 학내에 경찰력을 투입했다. 그러나 ‘의장님을 사수하는’ 5백여명의 학생들에게 밀려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10만명과 5백명의 단순비교는 둘째치고, ‘의장님’을 지키려는 학생들의 ‘충정’이 87년 당시와는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전대협을 이처럼 강력하게 만든 요인은 무엇인가. 제1기 전대협 부의장 寓相虎(30·당시 연세대 총학생회장·현 연세대 민주동문회 사무국장)는 “지하에서 몇몇 뛰어난 이론가들이 모여 조직을 만들고 발족식을 치르는 방법이 아니라 학생들의 자발적 참여를 유도하는 대중노선을 채택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학생운동의 조건이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좋아졌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다. 전대협 1기 세대는 스스로를 ‘5분대기조 세대’였다고 말한다. 숨막히는 5공시절이라 언제 어디서 발생할지 모르는 돌발사태에 대비해 늘 마음의 긴장을 풀지않았다. 그런 까닭에 어느 정도는 스스로 학생대중과 격리된 생활을 했었다. 반면에 전대협 5기세대는 운동권의 배타적 습성에서 벗어나 학생대중과 ‘아래로부터의 결합’에 어려움을 겪지 않는다고 한다.

“정치적 영향력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
 전대협이 처음 발족한 때는 정확히 87년 8월19일. 6월항쟁을 겪으면서 학생운동 내부에서 전국적이고 통일적인 투쟁의 필요성이 대두되었기 때문이다. 이한열군 장례식과 관련, 연세대에서 열렸던 전국 각 지역 총학생회장 연석회의에서 연세대 총학생회가 장례일정을 떠맡고, 나머지 대학 총학생회장들은 전적으로 ‘조직사업’에 전념하기로 합의를 보았다. “제1기 전대협은 낮은 차원의 결합이었습니다. 단순히 원자화되어 있던 각 총학생회가 지역별로 상시적 교류의 ‘물꼬’를 튼다는 정도였습니다.” 제1기 부의장 우상호씨의 말이다. 그런 때문인지 후배들도 제1기 전대협의 조직에 대해서는 높은 점수를 주지 않고 있다.

 “당시엔 비합법 투쟁조직의 분위기에 젖어 있던 사람들이 출범시켰기 때문에 대통령선거과정에서 분열상을 보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88~89년을 거치면서 공개적 대중사업에 힘쓰고 조직을 강화해왔기 때문에 지금의 전대협은 수준이 다릅니다.” 현재 전대협 사무국에서 활동하는 한 학생(86학번)의 말이다. 선배들의 투쟁을 높이 사기는 하겠지만, 전대협 조직 발전에 관한 한 분명한 선을 긋겠다는 뜻이다.

 이들은 학생운동 전 세대의 유산인 전대협이 이제는 ‘새로운 조직’으로 환골탈태해야 할 때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현 전대협은 이런 조직발전의 여세를 몰아 한층 강화된 조직인 ‘전총련’(전국총학생회연합) 건설을 당면과제로 설정하고 있다. 이제는 단순히 총학생회장들이 모여 투쟁사업을 하는 ‘협의체’ 수준이 아니라 하부조직간 (예를 들면 전국대학신문기자연합 전국노래패연합 등)의 연대를 강화하는 ‘연합체’로 탈바꿈 하겠다는 것이다.

 이인영씨도 “내가 활동할 당시와 비교해서 현재의 전대협은 학생들에 대한 정치적 영향력에서 비교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이제는 몸집이 커진 만큼 새 옷을 입어야 할 때입니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새 옷에 걸맞는 신사고, 새로운 진보의 논리를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 학생운동의 건전한 발전을 기대하는 많은 사람들의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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