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단독회담, 3金해석 제각각
  • 박준웅 편집위원대우 ()
  • 승인 1990.01.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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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색깔 다른 미소’ 보내 … 북한방문 · 정계개편 등 정치구상 본격화될 듯

 청와대에 개별 영수회담에서는 무슨 얘기들이 얼마나 깊숙이 오갔을까. 盧泰愚대통령과 金大中평민 · 金泳三민주 · 金鍾泌공화당총재 중 어느 한사람이나 두사람, 또는 각자와 어떤 ‘밀약’이라도 있었던 것은 아닐까.

 3야총재들의 노대통령과의 단독대좌가 이례적으로 장시간 계속된 데다 정국을 초긴장 상태로 몰아가고 있는 정계개편문제가 화제의 초점이 되었음직한데도 발표문이 이러한 궁금증을 제대로 풀어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의문은 더욱 커지고 있다. 회담을 마친 뒤 3김총재 모두가 ‘소득이 있었다’며 흡족한 표정을 지었고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재삼 강조한 것도 관심을 끄는 대목이다. 이번 연쇄회담에서 적지 않은 정치적 수확을 거둔 쪽은 아무래도 노대통령일 것이다. 그동안 여소야대의 상황에서 ‘共助의 묘수’를 과시해오던 3야는 이제 급격히 분열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고 새롭게 형성돼가는 ‘與小野小’의 상황과 함께 경우에 따라서는 노대통령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노대통령은 3야가 각각 다른 목소리로 외쳐대는 정계개편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면서 조금씩 색채가 다른 미소를 보내는 것만으로도 정치적 우위를 차지할 수 있게 됐다. 3야총재와의 개별회담이 끝난 뒤 청와대측이 “이제 정말 ‘큰 정치’를 할 수 있게 됐다. 소모적 경쟁의 시대는 지나고 대화와 타협의 정치가 열리게 됐다”고 강조한 것도 자신들이 먼저 고지에 올라섰다고 확신하는 ‘느긋함’에서 나온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물론 노대통령과 야당총재들 사이에 이견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2월 임시 국회에서 다뤄야 할 국가보안법 · 안기부법개폐 등 법적청산과 지자제선거법, 광주보상법, 5공청산의 마무리절차 등이 남아 있다. 그러나 이런 문제들은 정계개편이라는 큰 테두리 안에서 야당측와의 타협이 가능하므로 앞으로의 정국에 큰 변수가 되지는 않을 것 같다. 그런 점에서 노대통령의 입지와 선택의 폭은 그만큼 넓어졌다고 할 수 있다.


노대통령, 정계개편에 ‘원칙적 답변’ 일관
 정계개편에 대해 노대통령은 “나라와 민주발전의 장래를 위해 대단히 중요한 문제인 만큼 국민 각계각층과 각 정당의 의견을 들어서 신중히 검토 판단하겠다”는 원칙론의 답변으로 일관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편 金大中평민당총재는 회담이 끝난 뒤 민정당의 朴浚圭전대표가 구상했던 보수대연합을 통해 평민당을 고립시키려한다면 정국에 중대한 파란이 올 것임을 지적했다고 공개한 바 있다.

 김총재는 이와 함께 민주당과 공화당의 두 김총재 구상하고 있는 ‘4당구조의 타파’를 평민당의 고립화로 받아들이고 이러한 구상의 위험성과 비현실성을 강조했을 것으로 보인다. 김총재는 또 민정 · 평민당을 축으로 한 4당체제의 현상유지를 바탕으로 정국안정의 프로그램과 새 정치모델을 제시하면서 남북관계 · 경제안정 · 민생문제 등에 대한 적극적인 뒷받침을 확약하는 대가로 북한측과 교류가능성의 언질을 받은 것으로 풀이된다.

 金泳三민주당총재와의 대화에서는 다른 두 김총재와의 회담 때보다 정계개편에 관한 논의가 보다 폭넓고 깊숙하게 오갔을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김총재가 새해초부터 조기 정계개편론을 들고나와 정계를 긴장시켰을 뿐 아니라 김총재의 구상이 민정당까지를 포함하는 보수대연합으로 알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청와대쪽과 김총재쪽은 모두 “김총재가 자신의 구상을 상세히 설명했고 노대통령은 ‘국민 각계각층과 정당의 의견을 들어 신중히 검토하겠다’는 원칙적인 답변만 한 채 주로 듣는 입장이었다”고 발표했을 뿐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치 않고 있다. 金鍾泌공화당 총재와의 회담에서는 앞서 있은 평민 · 민주당의 두 김총재 때보다 더욱 폭넓고 긴밀한 공감대의 확인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자리에서 김총재는 “동유럽의 변화 등 급변하는 국제정세에 대응하고 통일정책을 혼란없이 추진해나가며 통일후의 시대까지 대비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30년은 계속 집권할 수 있는 정치안정세력이 있어야 한다”며 개편불가피론을 편 것으로 전해졌다.

 여러모로 보아 이번 청와대 회담은 노대통령의 주도로 진행됐다는 풀이가 가능하다. 노대통령으로서는 3야당 총재의 상반된 주장에 각각 귀를 기울이다가 부분적으로나마 골고루 공감을 표시하면서 각자 유리한 해석을 내릴 수 있는 ‘언질’을 줌으로써 결국 자신이 정국의 구심점이라는 점을 확인시킨 셈이다. 자신의 의중은 덮어둔 채 3김총재의 흉중을 투시해보는 계기로 활용한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노대통령은 당분간 3김총재와 각각 별도의 대화창구를 통해 3김을 견제조종하면서 정국을 주도해나갈 것으로 보인다.

 반면에 야당은 야당대로 노대통령과의 의중탐색전에서 얻어진 결과를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면서 각자의 정치구상을 본격 · 구체화해 나갈 것으로 보여 신년정국은 벽두부터 급박한 움직임이 예상된다. 평민당의 북한방문 시도와 구정 이후 국정보고회 개최, 민주 · 공화 양 김총재의 재접촉 및 김민주당총재의 신당창당계획, 이를 관망하면서 대처방안을 모색하는 민정당의 향배 등이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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