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 파수꾼’ 세계 의료인들
  • 조효제 (치과의사·국제앰네스티 한국회원) ()
  • 승인 1991.06.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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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년 2월25일 엘살바도르 보안대원들은 마리오 리베라 형제를 체포했다. 그후 군당국은 이들 형제가 정부군과 교전중 사살됐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마을 주민들은 이들이 불타는 들판위를 맨발로 걷도록 강요당한 후 군인들에 의해 칼로 살해되었다는 사실을 제보했다. 하지만 물증이 부족했다. 5월말경 덴마크의 한 법의학자가 초빙되어와 시신발굴과 부검이 실시되었다. 결과는 “사지절단 후 총상에 의한 사망.” 두아르테 정권의 부도덕성이 백일하에 드러난 사건이었다. 70~80년대 아르헨티나의 반정부인사 소탕정책(일명 ‘추악한 전쟁’)의 잔학성을 밝히는 데에도 의료인들은 크게 한몫을 했다.

 수백구씩 암매장된 학살시신을 발굴해 법치의학자들은 신원확인을, 일반 법의학 자들은 주로 사인규명과 가혹행위 판별을 해냈던 일은 법의학사상 고전적 사례에 속한다. 구미 의료인들의 특징은 각자가 직업정신에 투철해 소위 진보적인 의사와 보수적인 의사간의 단절이 크제 않다는 점이다. 이념이나 정치를 떠나 과학도의 객관성과 윤리에만 충실해도 인권향상에 크게 기여할 수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의학협회의 공식 기관지에서 고문증후군에 관한 특집을 다루기도 하고 《란세트》같은 세계적인 전문지에도 고문이나 사형에 관한 논문이 심심찮게 실리곤 한다.

 “右手 사용자인 본 환자가 자해로써 형성하기엔 불가능한 다수의 創傷瘢痕이 本體 및 四肢에서 관찰됨”과 같은 딱딱한 학문적 서술이 주는 메시지는 그 어떤 웅변보다 강력한 것일 수 있다. 고문에 대한 의사들의 대응은 놀라우리만치 집요하다. 방대한 문헌발간은 물론이고 고문이라는 특수병인에 의한 갖가지 질환을 진단, 치료하는 일정한 양식과 과정을 체계화시켜놓았다. 코펜하겐에 설립된 ‘고문피해자를 위한 국제재활센터’에서는 고문으로 앉은뱅이가 된 폐인을 일어서게 하는 ‘기적’을 일으키고 있다. 앳된 얼굴의 여성 물리치료사가 매일 초저녁 시간을 할애해 고문으로 철추를 다친 13세의 쿠르드족 소년을 운동시키는 광경은 방문객의 가슴을 흔들어놓는다.

 앰네스티에 속한 각국 의료인들도 고문추방에 열성적이긴 마찬가지. 영국의 앰네스티 의료인 그룹은 특히 영국의학협회와 긴밀히 협조하고 있다. 의학협회 산하에 고문폐지기구가 상설되어 있을 정도이다. 한국의 의학단체에 고문폐지분과 위원회가 있다고 상상해보라. 인권침해에 맞서 싸우는 의료인들간의 연대가 강조되고 있는 점도 지적되어야 하겠다.

 스스로를 보건직 전문인(Health Pro-fessionals)이라고 즐겨 부르는 이들 가운데는 의사뿐 아니라 간호사 약사 심리상담가 물리치료사 의료기사 체육교사까지 망라된다. 그들이 축적한 전문지식과 역량은 이른바 ‘인권의학’이라고 불릴수 있는 의학의 한 분야가 생겨날 만큼 거대한 운동으로 발전해왔다. 보건전문가로서 직업윤리에 따리 행동한 것이 결과적으로 인권옹호에 큰 역할을 하게 된 사실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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