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 조성환 (정치학박사 · 정치사상) ()
  • 승인 1990.02.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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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희망 건 혁명가

《반역아 미하일 바쿠닌》 E. H. 카 지음 박순식 옮김
 19세기 러시아의 급진지식인에게 있어서 ‘혁명’이란 그들의 조국이 근대 세계로 변천하는 가장 본질적인 역사의 계기처럼 보였다. 미하일 바쿠닌(1828~1876)의 생애란 바로 이 역사의 혁명적 변화에 그의 실존적 희망과 실천을 실었던 무정부주의 혁명가像이었다. 우리에게 20세기 진보적 역사가로 정평이 나있는 E . H카에 의해 1937년 출간된(역자는 1975판을 번역) 바쿠닌의 전기는 진부한 것이라기보다는 아직도 생생함을 더해준다.

 짜르의 폭정에 대항하는 러시아 인텔리겐치아의 결집과 저항, 프랑스에서의 사회주의의 흥기와 1848년 2월혁명, 폴란드의 反슬라브 민족주의 운동과 폭동, 이탈리아 ·스페인에서의 급진사회주의 태동 등 거의 모든 급진적인 사회변화의 움직임 속에 바쿠닌의 혁명 열정은 실재하고 있었다.

 바쿠닌에 있어서 혁명이란 그 본질에서부터 자유롭고 긍정적인 개인으로서의 인간의 해방을 의미했던바, 근대 유럽사회에 대한 과학적 분석에서 프롤레타리아 계급혁명을 절대시한 마르크스와의 논쟁은 필연적이었다. E . H. 카가 바쿠닌의 전기를 서술하면서 던진 질문은 다음 세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먼저 바쿠닌에 있어서 헤겔주의적 혁명관에 대한 해명, 다음으로 러시아 인텔리겐치아에겐 生來的인 슬라브 민족주의의 小我가 선진 유럽이 요구하는 진보적이고 국제주의적 혁명위상에 여하히 엇물려 가고 있느냐 하는 것이고, 끝으로 바쿠닌의 집산주의적 무정부주의와 마르크스의 과학적 사회주의와의 관계를 여하히 설정하느냐의 문제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바쿠닌의 전 생애를 통해 피할 수 없는 본질적 문제였을 뿐만 아니라 19세기 유럽의 급진혁명론의 중심문제였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1837년 모스크바의 헤겔철학사가 스탄케비치의 영향하에서 바쿠닌이 헤겔철학에 입문하게 된 것은 1842년, 그가 베를린에 도착하자마자부터였다. 헤겔좌파의 변증법적 혁명, 즉 현실적인 것은 전부 이성적이고, ‘이성과 혁명은 함께 화해하여 승리한다’는 것을 확신하면서였다. 그에게는 더 이상 철학적 사색의 음영이 불필요하게 되었고 이성과 혁명의 승리를 위한 정치적 실천이 자명해진 것이다, 쉬타일 교수의 소개로 접한 생 시몽, 푸리에, 프루동의 프랑스 사회주의는 바쿠닌의 정치실천의 具體였고 1848년 마르크스와의 첫 해후에서 근대혁명의 두가지 축, 즉 사회혁명과 민족해방의 동태를 인식할 수 있게 했다. 바쿠닌의 혁명 편력의 후반부(1860년까지 바쿠닌은 수감과 시베리아 유형을 받았음)는 국제홍보단의 결성(1866년 나폴리)으로 국제사회주의 혁명전선의 한 전선을 맡게 되나 (1869년)이는 사실상 마르크스와의 이론 및 헤게모니 쟁탈을 위한 전주에 불과했다. 두 거물은 ‘파괴의 정열은 또한 창조의 정열이다“라는 급진적 정치인식에서 출발, 사회혁명이론에 이르게 되었으나 혁명에서의 ’권력(국가)‘이라는 문제에 봉착, 이 둘은 더 이상의 제휴가 불가능해졌다. 마르크스의 ’계급혁명론‘과 바쿠닌의 ’본능적 혁명론‘은 국가문제에 대한 근본적으로 상이한 입장 때문에 더이상의 타협의 여지가 없어진 것이다. 바쿠닌에게 있어서 ’혁명‘은 사회적어야 했기 때문에 혁명촉진의 수단으로서 정치적 행동을 거부했고 그는 마르크스의 ’국가소멸론‘을 혁명의 결과로 보았지 혁명 그 자체로는 볼 수 없었다.  

 바쿠닌파의 패배는 마르크스주의에 내재된 근본적 모순(계급적 증오를 수단으로 하여 보편적 사랑을 창출하고자 했었던)이 과학주의가 꽃피기엔 너무나도 척박한 러시아에서의 사회주의혁명이 국가주의(권력주의)에 의해 은폐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최초의 경고였다고 볼 수 있다.

 사실 마르크스의 계급혁명과 바쿠닌의 본능적 혁명론이 러시아적 토양에 만났을 때 레닌의 혁명역랑이 도출되는 것이다. E . H.카의 바쿠닌 전기를 보며 생각하게 되는 것은 바로 볼셰비키혁명은 바쿠닌의 무정부주의적 · 본능적 혁명론에서 잉태될 수 있었고 이어 마르크스의 계급적 비전에 의해 출산된 것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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